김현화 충북소방공무원 전문상담사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 음식거리의 해밀톤호텔 골목에 할로윈데이를 즐기려고 몰려던 수많은 인파가 압사 사고로 159명이 사망하고 195명이 부상을 당했다.
우리 사회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무안 항공기 사고도 우리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하지만 당시 구조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들의 활동은 조명 되지 않았다.
충격적인 현장에서 국민들을 구조하다 얻은 스트레스와 심리적 고통을 겪던 일부 소방관들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외면해 왔던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했다.바로 재난 현장의 영웅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보이지 않는 상처다.
구조를 위해 누구보다 먼저 현장에 뛰어든 소방관들은 생사를 가르는 순간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다.
그 순간은 단순한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 악몽처럼 되살아나고, 끝없는 자책과 죄책감으로 이어진다.
"내가 더 빨리 갔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까"라는 물음은, 그들의 일상을 좀먹는다.
이는 분명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심리적 상처가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참사 직후 일부 심리지원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여전히 많은 소방관들이 충분한 회복 없이 현장에 복귀한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데는 목숨을 걸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은 돌보지 못한 채 다시 출동 벨 소리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상담사로 활동하는 필자는 종종 묻지 않아도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듣는다.
그들의 고백은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라, 회복의 신호다. 그러나 그 울림은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크다. 더 이상 우리는 ‘참사 후 상담사 호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예방적이고 상시적인 심리지원 체계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두 가지 축이 있다. 바로 동료 상담사와 전문 상담사의 협력이다. 동료 상담사는 같은 현장을 겪었고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공감의 힘이 있다.
반면 전문 상담사는 심리학적 개입과 치료를 통해 그 경험을 건강하게 소화하도록 돕는다. 이 두 축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소방관의 진정한 심리 회복이 가능하다.
필자는 현장에서 즉각적 심리적 응급 처치를 제공하여 충격을 완화하고, 장기적인 외상으로 발전하는 것을 예방한다. 또한 동료 상담사와 협력하여 조직 내부의 심리 지원 체계를 강화하고, 필요 시 전문기관과 연계해 체계적인 치료와 회복을 돕는다.
재난은 눈에 보이는 피해를 넘어 보이지 않는 심리적 상처를 남긴다.
전문 상담사는 이 보이지 않은 두 번째 피해와 맞서 싸우는 조력자다.
소방 현장에서의 상담은 대원 개인의 회복을 넘어 조직 전체의 회복 탄력성을 높이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가 더 빨리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축이다.
반복되는 위험과 충격 속에서 그들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상처를 입는다.
살아 있는 사람이며, 지켜야 할 동료다. 이제 우리는 ‘구조’만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 회복까지 책임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회복과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
충북소방본부 역시 더 나은 심리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동료 상담사가 보다 효과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전문 상담사의 전문적인 지식과 기법, 수퍼비젼을 통해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도움을 주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즉, 소방관 개인의 심리적 고통은 조직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과제임을 다시 인식해야 한다. 소방관의 심리적 회복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상처까지 돌보는 것이 진정한 재난 대응의 완성이라는 점을 새롭게 각인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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