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윤 수필가

▲ 이호윤 수필가

모처럼의 오전 출근길이었다. 점심을 먹고 차 한 잔의 여유까지도 부리고 출근하는 일터다. 하지만 오늘은 내일 있을 행사 준비를 하기로 했다. ‘좋아요’를 표시해둔 음악 스트리밍 앱을 열고 자동차 스피커로 들으며 느긋하게 핸들을 조작한다. 고작해야 20km가 조금 넘는 거리에 군(郡) 단위를 넘어가는 한적하고 곧은 길이다. 그 길에서 오늘 또 죽음을 만났다. 아니 지나쳤다. 나는 시선을 멀리 두고 생각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그렇게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출퇴근길이 시골길이라 그런 것일까? 잊을만하면 로드킬(roadkill)을 만나곤 한다. 늦은 밤 퇴근길에 고라니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간 적도 있다. 그 밤 이후로는 훤한 가로등 아래 뻥 뚫린 길에서도 조심스레 달리게 되었다. 겨울 동안 뜸했던 로드킬이 봄이 되니 잦아진 느낌이다. 외면하려 애썼음에도 마음에 남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왜 그들은 위험한 도로를 건너가려 할까? 로드킬. 검색해보니 사전적 의미로는 동물이 도로에 나왔다가 자동차 등에 치여 죽는 일이라고 한다. 도로에 나와? 맙소사. 어디에서 도로로 나왔다는 말인가.
그들은 어리석게도 위험한 ‘도로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원래 이 땅이 온통 그들이 누비던 구역이었지 않나. 다람쥐도 고라니도 멧돼지도 모두 같은 시공간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그 공간에 낯선 틈이 생겼고 우리가 ‘위험한 도로’라고 부르는 바로 그곳에서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던 것이다. 아마 그날도 그들은 먹이활동을 위해, 짝을 찾기 위해 여느 때처럼 집을 나섰을 뿐이었으리라. 나의 출근길처럼.
공존을 거부하고 선을 그은 것은 오히려 인간이었다. 지극히 이기적인 우리가 마음대로 그들의 공간에 선을 긋고 금기된 곳으로 규정했던 것이다. “이곳은 우리 인간이 다니는 ‘도로’니 오늘부터 너희는 결코 발을 디디지 말라. 이를 어기는 자는 목숨을 잃으리라.”라고. 이것은 예고도 타협도 없는 경고요 폭력이다. 이 말도 안 되는 폭력에 나는 말없이 눈감아왔다. 폭력의 결과로 얻은 편리함을 마음껏 누리면서 말이다.
출근길에서의 남의 비극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조심스레 돌아온 퇴근길의 끝엔 펄쩍 뛰며 반기는 나의 반려견이 있다. 아주 작은 벌레 한 마리, 곤충 한 마리도 내 공간에 들어서기를 용납하지 않던 나였다. 그런 내가 딸 때문에 4kg가량의 털투성이 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불편할 때도 많고 비용도 많이 든다. 그런데 전에 없던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받는 기쁨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작은 녀석 때문에 나는 더욱 로드킬이 불편해진 듯하다.
오직 인간의 편의만을 생각하는 세상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종(種)의 생명을 아예 의식조차 못 하면서 우린 그들에게 잔혹해졌던 게 아닌지. 어느 산, 어느 들판이 아니라 이 넓은 지구를 통째로 우리는 함께 빌려 쓰고 있는데 그 존재조차 깨닫지 못하곤 하니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있나.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게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겠다. 그저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그럼에도 내일 나는 출근길, 도로에 나서야 한다.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도. 아마 다른 어떤 이도 출근길에 나설 것이다. 우리가 그 길에서 마주치지 않기를, 그 길 위에서 누구도 삶을 끝내는 일이 없기를. 내가 안락한 나의 집으로 돌아가듯이 그도 평안한 그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볼 수밖에 없는 나는 문득 우울하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