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한 번에 국가 전산시스템이 마비됐다. 지난 26일 밤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화재로 정부 업무시스템 647개가 동시에 먹통이 됐다.
대한민국 행정 시스템이 멈춰 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29일 낮 12시 기준 국정자원 화재로 멈췄던 647개 중 정부24와 우체국금융서비스 등 62개 서비스가 복구됐다고 밝혔다.
공무원 내부 업무용 온나라 시스템이 정상 작동되지 않는 등 본격 한 주가가 시작되는 월요일부터 혼란이 빚어졌다.
모바일 신분증 인증과 온라인 신용대출 등 금융 부동산 거래 등 실생활과 관련된 시스템이 먹통이 됐기 때문이다.
농협은행 등 주요 은행들의 경우 운전면허증이나 여권 등의 대체재를 이용한 신분 확인만 가능한 상태다. 비대면으로만 거래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은 일부 대출 신청 자체가 막혔다.
우체국은 입출금과 이체 등 금융서비스를 28일 오후 늦게 복구했지만, 택배와 우편 서브스 중단에 시민들 걱정이 많다.
충북도교육청의 나이스(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등 교육 관련 시스템 접속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충북교육청의 나이스와 K-에듀파인 시스템은 교육부 인증서를 기반으로 로그인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이번 화재로 인증서 검증 서비스가 제한되면서 로그인을 할 수 없어 교육청 관련 제증명 민원발급이 전면 중단됐다.
나이스는 17개 시도교육청과 전국 초·중·고교의 학생과 학부모, 교원이 성적과 생활기록부 등 교무·행정업무를 위해 사용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다.
K-에듀파인은 전국 시도교육청과 일선 학교에서 사용하던 에듀파인과 업무관리시스템을 통합해 만든 지방교육 행·재정 통합시스템이다.
행정안전부는 복구까지 최소 4주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구 민관협력 클라우드센터로 옮겨야 하며 자원 준비에 2주, 시스템 구축에 2주 등이다. 정부는 화재의 직접적 피해를 본 시스템 96개를 제외한 나머지 551개를 우선 복구하겠다는 방침이다.
충북도는 정부전자 시스템 전산망 마비에 대응하기 위해 28일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해 가동에 들어갔다.
도지사가 본부장, 행정부지사가 차장, 재난안전실장이 총괄조정관, 행정국장이 통제관, 정보통신과장이 담당관을 맡았다.
이번 조치에 따라 전산 업무가 불가능한 경우에도 수기 접수·처리, 처리기한 연장, 소급적용 등 도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대처했다.
이번 사태는 국가 전산망에 이상이 생겼을 때 보완하는 이중화(백업) 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고 한다. 역대 정부들이 하나같이 강조해 온 ‘디지털 정부’, ‘정보기술(IT) 강국’의 민낯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이 단 한 번의 화재에 얼마나 취약한 사회로 전락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말았다.
2년 전에도 국정자원의 네트워크 장비 이상으로 행정 전산망이 마비된 적이 있는데 땜질 처방만 하다가 사태를 키운 꼴이 됐다.
특히 복구가 오래 걸린다는 것은 국가 안보 측면에서도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낸 셈이다.
대형 재난에 대비해 국가 주요 시설을 이원화하지 않고 사고 대응 체계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인재(人災)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가 전산망 실태를 전면 재점검하고 최악의 상황까지 포함한 위기 대비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는 물론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만큼 극단적 위기 상황까지 고려한 전방위적 방지책과 다각적인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할 때다.
- 기자명 지영수 기자
- 입력 2025.09.2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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