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사이, 흔들리되 쓰러지지 않는 언어의 힘

임서원 시인
임서원 시인

 

임서원 시인의 시집 어제는 사랑했고 오늘은 모르겠다가 출간됐다. 이 작품은 20회 지리산문학상 수상작으로, “세계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감각의 지도라는 평가와 함께 선정됐다.

임 시인은 2015서정시학으로 등단해 일상과 감각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시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번 시집은 어제와 오늘이라는 시간의 간극 속에서 몸·사물·날씨·기억이 서로의 자리를 교차하는 순간들을 시어로 빚어낸다.

그는 서정의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고, 대신 아욱의 쓴맛과 풋내”, “이가 막대사탕과 부딪히는 소리”, “메타세쿼이아가 줄지어 오는 기류같은 촉각과 미각의 언어를 전면에 배치한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임서원은 상처를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겹겹의 은유로 감싸 안음으로써, 슬픔의 원천을 언어의 기법으로 전환해낸다그의 시집은 검은 상처의 블루스라고 평했다.

이번 시집은 1나의 어제를 알고 있는 너는에서 타로’, ‘어제처럼’, ‘연습 중등이 실려 있어 일상의 작은 움직임 속에서 시간의 변조를 읽어낸다. 2낯선 것들은 모두 양 떼처럼 닮아 있어빈집’, ‘촛불 연습’, ‘229같은 작품들이 삶의 임계 순간을 질적 시간(카이로스)의 장면으로 포착한다. 3캄캄한 구멍 속으로 달아나 혼자 고백할 때에서는 일기예보 알고리즘’, ‘종이 인형’, ‘주관적인 저녁 바다가 감각의 틈을 확장하고, 4나를 부를 때 다른 이름을 불러도 내가 대답했다에서는 사각’, ‘늦가을’, ‘잘 지내요등이 상실과 회귀의 정서를 변주한다.

표제작 촛불 연습은 시집의 정수를 보여준다. “어제 잠든 너를 어제에 머물러 있게 깨우지 않았다 / 어제는 사랑했고 오늘은 모르겠다라는 구절은, 어제와 오늘 사이를 오가는 시인의 시간 의식을 압축한다. 사랑을 붙들려는 회귀가 아니라, 타자의 부재를 견디는 내공의 연습이라는 점에서 이 시집의 제목과 핵심 정조가 드러난다.

허연 시인은 추천사에서 임서원의 시는 잘 고독한자에게 주어지는 성찰의 힘으로 가득하다. 그는 나직하게 읊조리며 혼자 크는 것이 피곤하진 않다고 말한다고 평했다.

이현호 시인은 임서원의 시는 적당한 어른으로 살기 어려운 우리의 삶을 붙잡는다. 어제는 사랑이었지만 오늘은 알 수 없는 마음을, 흔들리되 쓰러지지 않는 언어로 노래한다고 말했다.

임서원은 2024년 아르코 문학 창작산실 발표지원금을 받으며 창작의 동력을 이어왔고, 이번 수상으로 한국 현대시의 또 다른 결을 각인시켰다. 독자는 그의 시집에서 이해보다 먼저 감응하고, 설명보다 먼저 도착하는 시의 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번 출간은 시가 여전히 삶의 결을 기록하고, 불안정한 오늘을 언어로 붙잡는 도구임을 환기한다. 어제는 사랑했고 오늘은 모르겠다는 어제와 오늘 사이에서 흔들리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 오래 남는 누름돌이 될 것이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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