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석 충북도선거관리위원회 지도과 주무관
우리나라 정서에는 ‘정(情)’이 깊게 스며있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면 우리는 자연스레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고, 감사의 마음을 선물로 표현한다. 가족과 이웃, 거래처와 동료에게 건네는 작은 나눔은 서로를 향한 배려이자 우리 사회의 온기를 지켜가는 따뜻한 전통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나눔’은 주의해야 한다. 선거를 앞둔 시기의 작은 선물 하나가 곧 법의 경계선을 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은 단순히 ‘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 아니라, 공정한 선거질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공직선거법은 정치인이나 정당관계자가 선거구민 등에게 금전·물품·향응 등을 제공하거나 그 의사를 표시하는 행위, 즉 기부행위를 극히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기부’와 공직선거법에서 말하는 ‘기부행위’는 전혀 다른 의미라는 것이다. 매년 명절을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가 반복해서 기부행위 금지를 알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표면상으로는 명절 인사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도가 숨어있을 수 있다. 즉, 단순한 인사나 감사의 표시라 할지라도, 지위나 정치적 영향력에 기반하거나 다음 선거의 표심에 따른 것이라면 법은 이를 엄격히 제한한다. ‘호의’가 곧 ‘의무감’으로, ‘감사’가 곧 ‘표심의 빚’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부행위 금지는 인간적인 정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과 감정이 공존하는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공정의 씨앗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정성은 따뜻한 정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닐 때가 있다. 선거는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공정한 환경 속에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리 정이 넘치는 사회라고 할지라도 선거의 공정성이 무너지면 신뢰가 흔들리고 민주주의의 기반마저 약해질 수 있다. 종종 사람들은 공정성의 문제를 선거 시기에만 신경쓰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공정은 일상 속에서 지켜질 때 빛을 발한다. 정치인이 법을 준수하고 스스로를 절제하는 모습은 국민에게 신뢰의 근거가 될 것이다. 그와 반대로 사소한 편의 제공이나 금전적 호의가 반복된다면 정치의 영역은 신뢰가 아닌 이해관계의 거래장으로 변질될 것이다. 결국 이러한 행태는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의 근간마저 흔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진정한 나눔은 의도를 담은 계산된 선물이 아니라, 평소 꾸준한 관심과 실천에서 비롯된다. 선거관리위원회가 강조하는 ‘기부행위 제한’은 나눔을 막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와 영향력으로부터 순수한 나눔을 보호하는 장치라고 이해해야한다.
매년 명절이 다가올 때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단 하나다. 선물의 크기가 아니라 그 마음이 민주주의의 공정성을 지키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점이다.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따뜻한 감정보다 먼저, 공정한 판단과 청렴한 태도다. 이는 단순한 예방이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한 표’를 지키기 위한 민주주의의 실천이다.
나눔의 정(情,) 이 안에서도 공정함을 지키는 마음이 함께할 때 비로소 따뜻함과 신뢰가 조화를 이루는 성숙한 민주주의가 완성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