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주)청강 대표·서원대 융복합대학 교수

▲ 이재영 (주)청강 대표·서원대 융복합대학 교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이것은 어린이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아우르며 누구나 한 번쯤 흥얼거려본 노래 가사다.
푸른 초원, 한적한 곳에 집을 짓고,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며 살아가는 삶, 이보다 더 평화롭고 낭만적인 장면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얼마 전 이 가사와 비슷한 내용이 도시계획 심의 현장에서 있었다.
최근 한 지자체의 도시계획위원회 회의에서였다.
한 사업자가 호숫가 근처의 경관이 매우 수려한 지역에 근린생활시설 건립을 신청했다.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풍경속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담소를 나누면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 누구나 한 번쯤은 ‘저런 곳에 가고 싶다’라고 생각할 만한 곳이었다.
도시계획가인 나 역시 처음엔 잠시 그 경치 좋은 곳을 떠올리며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한다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주중의 바쁜 일상 속에서 잠간 동안이나마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과 호숫가를 드라이브하다가 마침 식사 시간이 되었는데 경치 좋고 전망 좋은 식당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곳에 여유롭게 주차해 전망이 제일 좋은 창가 쪽에 자리 잡고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 공간은 누군가의 일상 속 ‘작은 낭만’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런 공간은 도시 속에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도시의 여유와 풍요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그러나 도시계획위원회의 시선은 달랐다. 그 부지는 매우 가파른 경사면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진입도로는 좁고 경사지고 커브가 심했다. 특히 차량 진·출입 시 접속되는 도로를 달리는 차량의 시야 확보가 어려워 교통사고 위험이 컸다. 그리고, 주변의 기존 카페는 이미 주말마다 불법주정차 차량으로 인해 혼잡을 빚고 있었고, 새로운 시설이 들어선다면 교통 혼잡과 안전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었다. 환경적인 문제도 컸다. 그 지역은 생태자연도 등급이 높은 산림지대로, 산을 깎고 옹벽을 병풍처럼 지어야 하는 개발 계획은 경관 훼손이 불가피했다. 자연의 수려함을 이용해 ‘그림 같은 공간’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아름다움을 해치는 일이 될 수도 있는 터였다. 회의실 안에서 여러 위원들의 의견이 분분했지만, 그중 한 위원의 이야기가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공간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곳으로 인해 도시의 질서를 흔든다면 그건 낭만이 아니라 불균형이고 무질서입니다.”
그 말을 들으며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꿈꾸는 ‘그림 같은 도시’는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개인의 낭만과 이익이 도시의 공공성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도시의 아름다움은 단지 풍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간을 만드는 질서, 그리고 책임감이 도시의 품격을 결정한다. 낭만이 머물 수 있는 도시는 결국, 누군가의 절제와 배려 위에 세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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