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성 변호사
교회에서 아는 집사님이 얼마 전 종영된 법정 드라마를 언급하면서 실제 법정에서도 그렇게 진행되는지 물었다. 구두 상표로만 알고 있었던 그 드라마를 나는 보지 못했다. 몇 년 전 우영우 열풍이 불 때도 뒤늦게 몇 편을 보기는 했으나 솔직히 법정 드라마가 나를 확 끌어당기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드라마의 내용이 현실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법정에서는 판사가 "피고인에게 징역 ○○년을 선고한다"고 말한 뒤 판사봉을 '탕탕탕' 두드리지 않는다. 판사봉이 없다. 그냥 말로 선고하고 끝이다. 형사사건의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도 변호사가 마치 탐정처럼 관련자들의 뒷조사를 한다거나 사건 현장을 탐방하여 경찰도 찾지 못한 증거를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당사자로부터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증거기록을 검토하여 수사과정의 적법성이나 관련자의 진술에서 모순점 내지 신빙성을 다투기 위해 증인신문과 같은 별도의 증거조사를 진행한다. 물론 당사자가 보관하고 있던 물적 증거도 필요한 경우에는 제출할 수 있는데 당사자가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는 변호사의 조력이 필요하다. 증인신문 절차와 관련해서 변호사가 재판부의 증인채택도 받지 않고 당일 즉흥적으로 아무개를 증인으로 출석시켜 증인신문을 진행하는 것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또 변호사가 중요한 증인을 출석시키기 위해서 증인을 직접 찾아가서 출석해달라고 부탁하거나 어떤 내용의 증언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칫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거나 위증교사로 오인될 수 있어서 현실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증인의 성명, 주소 등 인적 사항과 증인신문의 필요성을 기재한 증인신청서를 재판부에 제출하여 채택이 되면 법원에서 증인에게 등기우편으로 증인소환장을 발송하고 그 증인이 소환장을 받았음에도 아무런 사유없이 불출석하면 과태료를 부과하는데 그 뒤 증인이 출석하면 종전에 선고된 과태료 결정은 재판부에서 직권으로 취소한다.
어떤 드라마에서는 형사사건의 피고인을 ‘피고’라고 호칭한 경우도 있었는데, 피고는 민사, 가사, 행정 사건에서 소송을 제기한 원고의 상대방을 지칭하는 표현이고, 형사사건에서는 범죄 혐의로 기소된 당사자를 ‘피고인’이라고 한다. 나도 법대에 입학하고 나서 한동안은 이 구분이 익숙하지 않았다. 민사 법정에서 원고석과 피고석은 나란히 붙어 있는데 판사석을 바라보는 왼쪽이 원고석, 오른쪽이 피고석이다. 반면 형사 법정에서는 판사석을 바라볼 때 왼쪽이 검사석, 오른쪽이 변호인석이고 피고인은 변호인의 옆자리에 앉는데 검사와 변호인은 서로 마주보도록 배치되어 있다(참고로 변호사는 형사사건에는 ‘변호인’이라고 하고, 그 외의 사건에서는 ‘소송대리인’이라고 한다). 드라마에서는 간혹 이와 다르게 법정을 배치하는데 시청자에게 극적인 몰입감을 주기 위한 의도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어찌보면 법정은 선과 악이 구분되어 긴장감과 함께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로 결말을 매듭짓기 좋은 세트장이고 극의 흐름에 맞게 세트장을 구성하는 것은 연출가의 권한이니까.
나도 대학생 때 법정 드라마나 영화를 종종 보았다. 책으로만 공부했던 소송의 진행과정과 법정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면서 내가 아는 부분을 확인하는 재미도 있었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주인공의 모습과 드라마틱한 전개에 나의 장래희망을 꿈꾼 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선과 악의 분명한 대립 속에 돈과 권력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면서 약자를 대변하는 법조인의 이상적인 모습에서 동경심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현실에서 법조인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나. 그렇게 비춰지도록 어떻게 행동해 왔나. 나는 의뢰인을 위해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았나. 국선으로 맡게 된 피고인을 변론하는 과정에서 그를 존중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나. “어떤 경우에라도 친절한 자세를 흩뜨리지 않도록, 어떤 경우에도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진 자의 우월감을 나타내거나 상대방을 위축시키거나 비굴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다른 것은 다 못하더라도 이것만 해낼 수 있다면 더 이상 좋은 수가 없겠다”고 한 故 조영래 변호사님의 일기를 새삼 떠올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