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는 국토의 얼굴, 백제의 숨결 속에서 역사를 다시 본다”

▲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유물전의 의미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사진 도복희 기자>

문화재와 미술, 그리고 역사에 대한 깊은 애정을 삶의 중심에 두어온 유홍준(76·사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부여에서 마지막 기증 유물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그가 지난 10여 년간 연구하고 기증해 온 자료 가운데 ‘지도’를 주제로 구성됐다. 단순한 유물전이 아니라, 한 연구자의 평생 신념과 문화유산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자리다.
유 관장은 20여 년 전 부여 내산면에 휴휴당(休休堂)을 짓고 ‘5도 2촌’의 삶을 이어왔다. “삶의 터를 역사 속에 두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고도(古都) 부여는 연구와 휴식, 그리고 문화의 실험 공간이 됐다. 그는 부여군에 수 차례 유물을 기증하며 ‘기증 유물전’을 이어왔고, 이번이 그 마지막이다.
유 관장은 “제가 부여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역사와 문화유산을 공부하고 기록하며, 이를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 마음 때문”이라고 밝혔다. 경주 등 다른 역사 도시에 비해 백제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부여가 가진 역사적 의미를 살리고자 한 결정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부여의 풍경과 백제의 정취를 담은 작품들을 부여군에 기증하며, 단순한 미술품 기증을 넘어 지역 역사와 문화의 교육적 자산으로 활용되기를 바랐다.
유 관장의 관심은 지도와 천문에도 이어졌다. 그는 대동여지도와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비롯해 조선시대와 서양에서 제작된 한국 관련 지도들을 연구하고 수집해왔다.
그는 “대동여지도와 같은 지도는 단순한 지리 정보를 넘어, 국토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심어주는 교육 자료”라며 “우리 국민들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정확한 조선시대 지도인 대동여지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원본과 복제본, 채색본 등 다양한 지도 자료가 전시됐다. 특히 대동여지도의 목판과 채색본은 높이 8m, 폭 5m에 달하는 대형 전시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 관장은 “지도는 단순히 길을 알려주는 도구가 아니다. 지도 속에는 땅의 형태, 강줄기, 산맥, 천문과 지리 지식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이 우리 국토의 가치를 이해하고 자부심을 갖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양 지도와 아시아 지도 수집 과정도 소개했다. “서양에서는 제국주의적 목적 아래 한국 지도를 제작했다. 하멜 이후 유럽에서 코리아로 표기된 지도들이 존재하고, 그 변천 과정을 보면 한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인식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유홍준 관장은 부여 기증 유물전을 “지도와 민속, 예술이 결합된 교육적 공간”으로 정의하며, 앞으로 건립 예정인 부여 군립미술관이 전국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특색 있는 미술관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또, 이번 전시를 통해 중앙박물관 등 다른 박물관에도 지도 전시의 필요성을 알리고, 국민들에게 국토와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불러일으키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지도와 문화유산을 사랑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모든 경험을 이번 전시를 통해 공유하고 싶었다”며 “지도와 유물을 통해 국민들이 역사를 체험하고, 향토와 국토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소회를 밝혔다.
부여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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