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경 속리초등학교 교장
가을은 등산과 캠핑의 계절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과 취미가 많은 나에게 산에서의 캠핑은 무척 매력적인 활동이다. 특히 지리산을 좋아해, 운이 좋게 대피소 예약이 되면 1박 2일 산행을 즐기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 7박 8일 동안 산에 머무는 특별한 기회가 주어졌다. 대학원 교수님께서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에 함께 가자고 제안하신 것이다. 자신 없어 하던 나에게 교수님은 "우리나라 산처럼 빨리 올라갔다 내려오는 산이 아니니 충분히 할 수 있다"라고 격려해 주셨고, 덕분에 지난 2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킬리만자로’는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이라는 뜻이며, 최고봉인 우후루 피크(Uhuru Peak)는 해발 5895m로, 특별한 장비 없이 인간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산이다. 우리는 여러 루트 중에서 가장 긴 ‘노던 서킷(Northern Circuit)’을 선택했다. 이 루트는 고소 적응에 유리해 성공률이 높은 대신, 긴 일정과 체력이 요구된다.
인천공항에서 17명의 참가자와 2명의 인솔자가 만나 에티오피아를 경유해 탄자니아에 도착했다. 긴 비행시간과 대기시간이 있었지만, ‘킬리만자로’라는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설레는 시간이었다. 숙소에서 멀리 보이는, 하얀 눈으로 덮인 킬리만자로는 설렘을 더욱 자극했다.
산행 첫날에는 비를 맞으며 열대우림 지대를 지나, 고사리 군락과 거대한 나무들을 통과해 음브웨 캠프(Mbwge Camp)에 도착했다. 고도를 올리며 오랜 시간 산행을 한 우리에게, 현지 크루들은 텐트와 식사, 따뜻한 차까지 준비해 주었다. 19명의 한국 참가자와 함께한 현지 크루는 안내원, 요리사, 포터 등을 포함해 무려 77명에 달했다. 우리의 짐, 텐트, 식재료를 나르고, 심지어 압력밥솥을 가져와 숭늉까지 준비해 주는 그들의 정성에 감탄했다. 해발 2850m에서 텐트 앞에 가져다준 따뜻한 세숫물은 처음엔 감동이었지만, 나중에는 냇가에서 직접 물을 길어다 준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둘째 날부터는 고도를 4000m 이상으로 올린 뒤, 그 부근에서 이틀간 머물며 고소에 적응했다. 킬리만자로의 독특한 식생과 고도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봉우리를 중심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면서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서는 길만스 포인트(Gilman’s Point·5681m)와 스텔라 포인트(Stella Point·5757m)를 지나, 마침내 우후루 피크(5895m)에 도달했다. 산행 경험이 부족한‘왕초보’였던 내가 마침내 정상에 오른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정상 가까이에서 눈길을 걷는 중 잠시 기억이 끊긴 적도 있다. 아마 무의식중에 앞사람 발자국만 따라갔던 것 같다. 정상 200m 앞에서는 구토로 인해 잠시 쉬기도 했다. 하지만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 우리 팀 17명 중 16명이 정상을 밟은 것은 뛰어난 팀워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깜깜한 밤, 앞사람의 발자국만 따라 걷던 킬리만자로의 길, 멀리서 빛나던 하얀 산, 구름 한 점 없이 짙푸르던 하늘, 정상에서 기쁨을 나누던 사람들, 짐을 옮기고 식사와 잠자리를 챙겨준 크루들. 이 모든 기억이 지금도 문득문득 사진처럼 떠오른다. 이 아름다운 킬리만자로의 모습이 앞으로도 잘 보존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