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아내가 장독을 내놓았다.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는데 베란다가 비좁아 이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아내는 장독을 계속 닦고 쓰다듬으며 안타까워한다. 어떻게 버려야 하나. 생각이 많아 보인다. 어떻게 버리든지 ‘버림’인 것이다.
신혼살림을 시작할 때였다. 어머니는 우리 아파트에 오시면 예쁜 단지를 사오셨다. 살림을 장만해 주시는 것이다. 좁은 열세 평짜리 아파트 베란다에 장독이 서너 개나 들어앉았다. 부자가 된 듯했다.
이른 봄이 되면 잘 띄운 메주를 가지고 오셔서 장을 담그셨다. 소금을 풀어 계란을 띄워서 농도를 가늠하는 것부터 아내는 신기한 듯 전수 받았다. 몇 해를 두고 아내는 어머니께 장 담그는 법을 배워 손에 익히게 되었다.
단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도 장독은 가지고 갔다. 타향에서 몇 번이나 이사를 하면서도 장독은 신주처럼 모시고 다녔다. 아내는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솜씨로 해마다 된장을 담갔다. 고추장도 물론 담갔다.
다시 청주로 돌아왔을 때는 단독주택 옥상에 그럴 듯한 장독대를 마련했다. 옥상에서 볕을 짱짱하게 받은 된장 고추장은 어머니의 장맛 그대로였다. 이사를 할 때마다 장독은 꼭 모시고 다녔다. 어머니가 이승의 강을 건너실 때도 막내아들 된장 걱정을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독립하니 두 식구만 남았다. 된장 고추장 양식도 많이 줄었다. 그래도 아내는 된장 담그는 일은 그만 두지 않았다. 어머니가 하시던 대로 정월 보름께 꼭 말날을 택하여 담갔다. 말날에 장을 담그면 부정을 타지 않고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지만 그건 따질 필요가 없다. 어머니가 그리 하셨으니 그리 하는 것이다.
식구가 줄어든 만큼 빈 단지는 하나둘 늘었다. 빈 단지는 소금 항아리로 썼다. 그런데 이제 소금 항아리도 필요 없게 되었단다. 에어컨 실외기도 놓아야 하고 화분도 몇 개 놓아야 한다. 자리를 차지하는 단지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소중했던 단지가 시대를 따라 변하는 가치에 따라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단지가 품은 정이 문명에 의해 쫓겨나게 되었다. 아내는 어머니 정이 담긴 단지를 차마 어찌할 줄 몰라 한다. 베란다에 놓고 닦고 또 닦는다. 닦을수록 자애로운 정은 더 반짝반짝 윤이 난다. 단지가 속을 비운 채 덩그러니 베란다 가운데 앉아있다. 나까지 고민이 생겼다.
그냥 확 버리자. 그때 문득 증평에 있는 ‘이동우미술관’이 떠올랐다. 미술관 주인 현산 선생에게 미술관에 가면 어떨까 의견을 물었다. 좋단다. 더구나 감사히 받겠단다. 감사한 건 내가 먼저다. 미술관에 가면 장독이 예술이 된다. 어머니의 장독이 아름다운 이동우미술관 정원에서 예술품으로 자리할 것이다. 귀퉁이가 깨진 그릇도 버리지 않고 아름답게 다시 탄생시키는 예술가의 품으로 간다.
어머니의 장독을 싣고 이동우미술관으로 향했다. 금방 정원에 자리를 잡았다. 귀인을 만나 예술이 되었다. 영생(永生)을 얻은 것이다. 베란다 구석에서 민망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장독이 선(善)한 임자를 만났다. 어머니가 그리우면 이동우미술관으로 달려가면 된다. 나도 가끔 기특한 생각을 해내는 내게 감동한다.
장독을 모셔 놓고 차에 오르다가 다시 돌아보았다. 정원에 서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뒤에서 엄마가 웃고 있었다. 행주치마로 거친 손을 감싸 안으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