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영 유원대 교수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의 위기는 더 이상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228개 기초지자체 중 80% 이상이 인구감소 위험 단계에 들어섰다. 인구가 줄면 소비가 줄고, 지방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사회서비스 공급이 약화된다. 지역의 산업생태계는 무너지고, 교육과 의료 수준은 낮아지며, 청년들이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러한 흐름은 결국 국가 전체의 균형발전 기반을 뒤흔든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숫자상의 인구 회복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싶고 머물고 싶은 이유’를 가진 지역을 만드는 전환이다.
그동안의 인구 정책은 출산장려금, 귀향 지원, 전입 인센티브 등 단기적 대책에 치우쳤다. 하지만 외부 지원에 의존한 유입은 일시적 효과에 그칠 뿐, 지역의 자생력을 키우지 못한다. 지방소멸의 본질은 인구의 절대 규모보다 ‘지속 가능한 삶의 구조’가 붕괴된 데 있다. 이제는 인구정책을 복지의 하위 영역이 아니라 지역발전의 중심축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산업과 경제, 공간, 복지, 문화가 함께 작동해야 사람이 머물 수 있다. 인구 문제는 곧 생활의 문제이자 지역사회의 품질에 대한 문제다.
정부는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과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통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지만, 현장 체감은 여전히 낮다. 인구감소지역의 감소율은 비감소지역보다 여섯 배 이상 높고, 특히 20~30대 청년층의 유출이 심각하다. 충북만 봐도 옥천, 보은, 영동 등 남부권 지역은 고령화율이 35%를 넘어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고, 학교 통폐합과 의료공백, 교통불편 등으로 생활여건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살기 어렵다’는 인식이 곧 ‘떠나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형성된 것이다. 이를 멈추기 위해서는 산업, 생활, 인구 정책이 하나의 구조로 맞물린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
첫째, 지역산업과 연계된 고품질 정주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단순한 일자리보다 ‘지역에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만들어야 한다. 충북 영동군은 와인산업특구를 중심으로 귀농·귀촌 창업자들을 지원하고, 농촌 체험관광과 문화행사를 결합해 새로운 생활 기반을 조성하고 있다. 보은군 역시 대추가공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청년농과 지역기업을 연계한 식품산업 모델을 확장 중이다. 옥천군은 생태관광과 로컬문화 콘텐츠를 결합해 귀향청년의 창업을 돕는다. 이러한 사례들은 산업과 문화, 주거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청년이 머무는 지속적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 생활권의 확장과 공간 혁신이 필요하다. 낙후 지역일수록 인근 지자체와 연계한 초광역 생활권 구축이 필수다. 의료, 교육, 문화 서비스를 공동으로 운영해 규모의 한계를 보완하고, 지역 간 인프라 격차를 줄여야 한다. 충북 남부권의 영동·보은·옥천 3개 시군은 거점병원 공동이용, 농촌형 생활SOC 복합공간 조성 등 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생활권 통합은 개별 지자체의 한계를 넘는 실질적 생존전략이다. 또한 세컨드 홈 정책, 장기 체류형 농촌주택, 빈집 리모델링을 통한 청년주거 지원은 외부 인구와 지역을 잇는 새로운 연결 고리가 된다. 관계인구 확대는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숨은 자산이다.
셋째, 지역혁신 거점을 중심으로 청년 자립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지역별 특화 분야를 중심으로 혁신 클러스터를 형성해 청년이 배우고, 일하고, 정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청년 창업공간, 공공임대주택, 문화복합시설 등 생활 인프라를 함께 확충하면 청년이 떠나지 않는 토대를 갖출 수 있다. 결국 ‘청년이 머물면 지역이 살아난다’는 단순한 명제가 지역정책의 핵심 방향이 돼야 한다.
지방소멸은 인구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의 문제다. 사람이 머물 이유가 있는 지역이 늘어나야 국가가 지속 가능하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의 공동화는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바꿀 수 있는 구조적 문제다. 지역이 스스로 혁신해 경쟁력을 회복할 때, 지방소멸은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기회가 된다. 인구의 수보다 삶의 가치, 성장보다 행복, 공간보다 관계를 중시하는 변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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