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주)청강 대표·서원대 융복합대학 교수

▲ 이재영 (주)청강 대표·서원대 융복합대학 교수

도시계획 심의 현장은 때때로 ‘낭만’과 ‘현실’이 맞부딪히는 공간이다.
최근 한 사업시행자가 전망 좋고 경치 좋은 호숫가 인근의 경사면에 카페와 식당을 짓겠다는 계획을 제출했을 때도 그랬다.
우리는 누구나 그런 곳을 상상할 수 있다.
탁 트인 호수와 전망, 산과 물이 어우러진 풍경, 그리고 그 속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며 보내는 일을 말이다.
하지만 도시계획가들의 눈에는 그 ‘그림 같은 풍경’의 이면을 먼저 보게 된다.
그 곳이 지닌 문제는 단순히 ‘보기 좋은 곳’이 아니라, ‘지켜야 할 곳’이었기 때문이다.
해당 부지는 특별관리형 지역으로서 신청인이 제출한 대상지의 경사도는 기준 한계치에 가까웠고, 개발 시 대규모 절토공사와 옹벽 설치가 불가피했다.
이 과정에서 부지 전체에 생태자연도 등급이 높은, 양호한 산림이 대부분 훼손돼야 했고, 사면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워야 했다. 결국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이라는 명분 아래 자연은 파괴되고, 호수의 수려한 경관은 인공의 구조물로 둘러싸이게 되는 셈이었다.
교통 문제는 더 심각했다. 해당 지역의 진입로는 좁고 경사지며 굽은 커브 구간으로 형성돼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사업부지에서 진출 시 유턴하듯 우회전하며 기존 도로에 접속하게 계획이 되어 달리는 차량이 보이지 않은데다 내리막경사로 이뤄져 있어 사랑하는 연인과 즐겁게 식사하고 나오는 길에 사고를 당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또한, 식당이나 카페가 들어서면 주말마다 차량이 몰려들어 불법주정차와 교통 혼잡이 극심할 것이 분명했다. 주차장 용량도 문제였다. 법정 주차대수 요건은 맞추어 계획되었으나, 이미 인근의 비교적 완만한 곳에 위치한 다른 카페에서는 도로에 불법주차한 차량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으며 민원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는 결국 잠시의 낭만을 위해 그 일대의 안전과 질서를 위협하며 많은 시민이 불편하게 만드는 도시개발은
‘그림 같은 도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불안하고 불편한 도시’를 만드는 일이 되는 것이었다.
결국 이 사업은 부결됐다. 위원들의 판단은 명확했다.
“개인의 낭만을 위해 도시와 시민 전체가 감당해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도시는 특정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는 공간일 수 있으나 이보다 먼저, 도시는 수많은 시민이 함께 사용하는 공공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도시계획은 개발을 막기 위한 절차나 행정이 아니다.
조화로운 공간을 설계하고, 환경과 안전, 그리고 공익의 균형을 지키는 일인 것이다.
때로는 낭만적이고 기발하고 기가 막히며 매력적인 아이디어나 계획을 거절해야 할 때도 있다.
이는 ‘도시를 위한 낭만’이 ‘도시를 해치는 낭만’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방파제와 같은 책임과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이 노래의 가사처럼 우리 모두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을 꿈꾼다.
그러나 도시 속의 ‘그림 같은 집’은 초원 위가 아니라, 누군가의 배려와 절제, 그리고 책임 위에서 세워져야 한다.
그때 비로소 낭만은 현실이 되고, 도시는 지속가능한 품격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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