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영 시인

▲ 하재영 시인…

11월 달력 앞에 서 있습니다.
십일월은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런 시간과 마주하는 달입니다. 거리를 두고 쫓던 앞사람이 산등성이를 넘어가며 남기는 뒷모습. 역광의 그림자를 그리며 이내 산 저쪽으로 사라지는…. 바쁜 걸음으로 따라가지만 볼 수 없어 마냥 아쉬운….
십일월은 한 해의 끝자락이면서 가을을 마무리 짓는 달입니다.
계절의 의미는 눈으로 보는 바깥 풍경 이상으로 피부로 느끼는 감각의 느낌과 동일합니다. 하나의 계절을 맞고 보내는 이면에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가라는 실속의 의미를 따지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입니다. 젊은 시절엔 으레 목표 지향적인 일과에 쫓기는 생활이었습니다. 어떤 목표를 지향하면서 그것을 잠자리까지 끌고 가는 하루하루였습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젊은 시절과 많은 차이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20대엔 시속 20킬로미터로 달리다가 60대에는 60킬로미터로 세상의 시간 위에 걸터앉는다고 합니다.
‘왜 이리 시간이 안 가는 거야.’라고 생각했던 젊은 시절의 시간이 이제는 ‘왜 이리 시간이 빨리 가는 거야.’라고 말하는 나이가 되어 다시 십일월을 묵상의 대상으로 삼아봅니다.
시월이 추수로 바쁜 달이었다면 십일월은 그것들을 갈무리하는데 시간을 보냅니다. 텅 빈 들녘의 좁은 길 위로 가을 햇살은 차르르 미끄러지며 쌓이고 쌓입니다. 시월에 추수한 벼를 며칠 전 방앗간에서 빻았습니다. 아내는 그 햅쌀로 밥을 지었습니다. 묵은쌀로 밥을 지은 것과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밥그릇을 바라보는 그 맘에는 지난 시간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햅쌀밥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햇김치도 십일월 식탁엔 올라옵니다. 만날 수 없는 부모님도 떠올라 괜히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감사기도를 올리고 그것들을 입에 넣은 순간 정말 살아있음의 희열을 찾게 됩니다.
작은 일 같은 그런 의식이 우리의 일상을 충만하게 하는 일이라 믿습니다. 그 이면에는 땀 흘리며, 눈물 흘릴 정도로 열심히 살았기에 얻은 결과라 더욱 고마운 일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십일월엔 감사란 말을 더 자주 사용하겠다고 마음먹게 됩니다. 가까운 사람이든 거리가 있는 사람이든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연락이 오면 그것도 감사하고 문자라도 보내며 소통하고 싶은 달입니다.
그러면서 1과 1이 만나 11월이 되듯이 사람 하나와 사람 하나가 만나 공간을 공감하게 하는 십일월 하루하루를 만들고 싶습니다. 1월은 1이란 숫자 하나였지만 그것이 겹쳐지는 11월은 1월의 의미가 다층으로 겹쳐지는 달입니다.
인간의 삶 속에 십일월을 맞이했던 숫자는 그 사람이 살아왔던 생의 연륜과 비슷합니다. 예순 살 나이의 사람은 적어도 쉰아홉번 11월을 맞이하고 향유했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그런 것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으레 왔다가 사라지는 한 달이란 시간을 남의 일처럼 여길 따름입니다. 그렇기에 십일월은 바쁘게 달려온 지난 열 달을 되돌아보면서 다가올 한 해의 마지막 달 십이월을 맞이해야 하는 달입니다.
11월의 달력 앞에 서서 눈을 감아봅니다.
이제 십일월이란 시간을 보내면 첫눈도 내릴 십이월이 옵니다. 12월은 늘 그랬듯이 바쁜 시간이 몰려올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살아오며 한 해를 마무리 짓는 12월은 송년 모임이 잦고, 무엇인가 마무리 지으며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달이기 때문에 분주합니다.
그래서 십일월 달력 앞에서 나를 성찰하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내 옆에 보듬어 주는 즉 1과 1이 만나 11이란 숫자가 되듯 그런 마음으로 11월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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