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기상청장
“농사는 하늘이 절반, 사람의 정성이 절반이다.”
옛 조상들이 남긴 이 말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이 짧은 문장에는 ‘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먹거리를 얻기 위한 농업은, 날씨라는 변수에 순응하면서도 지혜와 정성을 더해야만 풍요로운 수확이 가능하다’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실제로 날씨는 농사에 많은 영향을 주며 특히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 시기의 갑작스러운 추위와 서리는 수확량에 영향을 미친다. 수확량 감소는 농민들의 수익 감소는 물론이고 갑작스러운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우리 밥상 물가를 위협하기에 이맘때에는 날씨에 대해 더욱 슬기롭게 대비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11월이면 대륙성 고기압의 확장으로 북서풍이 강해지며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밤이 되면 구름 없이 맑아지고, 바람이 잦아들면서 지표면의 열이 빠르게 빠져나가는 강한 복사냉각이 발생해 첫서리와 첫얼음이 관측되기도 한다. 또 따뜻한 날이 이어지다가 갑작스레 기습 한파가 찾아오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어 우리의 건강과 농산물 생산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늦가을 추위는 농업 현장에 치명적이다. 김장철을 앞둔 배추와 무는 바깥쪽의 잎인 외엽이 얼어 무름병이 발생하고 뿌리 손상으로 저장성이 크게 떨어진다. 파종을 마친 마늘과 양파는 뿌리를 충분히 내리기 전에 추위를 맞으면 냉해를 입고 보리와 밀은 줄기가 갈라져 생육이 저하된다. 월동채소 역시 어린 잎과 생장점이 얼면서 수확량이 줄어든다. 이처럼 불과 며칠의 추위가 한 해 농사의 결실을 위태롭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이 있다. 바로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서리 예측정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이 정보는 위성지도에 마을 단위로 내일과 글피까지의 서리 발생 가능성을 확률 예측정보로 제공함으로써, 농민들이 새벽 서리에 대비하여 보온 조치나 시설하우스 난방 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파 영향예보’도 도움이 된다. 한파 영향예보는 단순히 ‘추워진다’는 정보를 넘어, 농촌진흥청 자료를 기반으로 기온 하강에 따른 작물별 민감도를 종합해 예상되는 한파 영향에 따른 대응요령을 제공한다. 이를 바탕으로 농가에서는 보리류나 채소류, 과수류에 대한 적절한 보온 대책을 마련하고, 온실 보온 자재를 점검하는 등 구체적인 대응을 할 수 있다.
기상청은 앞으로도 서리 예측정보와 한파 영향예보를 비롯해 다양한 맞춤형 서비스를 활성화해 농업인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기상재해에 흔들리지 않도록 도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상정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세이다. 하늘을 과학으로 읽어내는 기상청의 기상정보와 이를 지혜롭게 활용하는 국민들의 행동이 만날 때, 우리는 늦가을 서리와 한파 속에서도 건강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이러한 자세로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면, 큰 피해를 줄이고 기후변화 시대를 현명하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