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순 동화작가
‘안온’ 작가가 쓴 <일인칭 가난>이라는 책을 읽었다.
1996년생인 작가가 알코올 중독자인 아빠와 일용직으로 일하는 엄마랑 같이 가난을 이겨내며 살아온 자전적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 속에는 어른들의 무심한 행동이 ‘국민기초생활 수급자’로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기도 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다행히 ‘안온’ 작가는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가난이란 굴레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고 글 속에 적었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10년도 훨씬 전에 ‘조손가정 아이들 돌봄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어린이들을 떠올렸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공부하는 걸 도와주었는데 그 애들도 ‘국민기초생활 수급자’였다. 그들 중에는 학교 공부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 그 애들을 만나는 동안에 책 읽는 즐거움과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려주기 위해 나름 노력하긴 했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쯤은 성인이 되었을 그 아이들이 풍족한 삶을 누리며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문득, 지난번에 있었던 지인과의 전화 통화가 생각난다. 나의 신간 출간을 축하해주기 위해 걸려 온 전화였다. 그는 대화 중에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그렇게 힘들게 글을 쓰는데 인세도 적고…….”
그분은 그다음 말을 얼버무렸는데, 나도 모르게 뚱딴지같은 말을 해 버렸다.
“각자가 원하는 삶은 다릅니다. 그 삶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면 행복한 거지요.”
그때 나는, 그분이 나에게 ‘돈을 많이 못 번다.’라고 말할까 봐 허둥지둥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순전히 나의 기우였다.
‘국민기초생활 수급자’의 기준은 한 가정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과 월수입을 따져 결정한다. 그러기에 정부에서는 그들에게 교육비와 의료비, 생활비 등을 지원해주고 있는 거다. 객관적으로 가난하다는 걸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누군가의 주관에 의해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다. 내가 이만큼 갖고 있는데 너는 그렇지 못하니 너는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러니 자신이 가난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비싼 옷을 입어야 하고 비싼 가방을 들어야만 하는 거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죽을 때까지 받을 수 있는 연금이 얼마나 많은지 소리 높여 말해야 한다. 역시 ‘가난’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은 불편하게 만든다.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진짜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1997년부터 우리나라에 들이닥친 외환위기 때였는데,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우리 집에는 꽤 오랫동안 수입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우리 집 둘째를 내가 보내고 싶은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그 유치원 앞에서 밤새 줄을 섰다. 그 유치원은 보내고자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줄 선 순서대로 입학을 시켰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제적 관념이 없던 철부지 시절 같기도 하지만, 그때 나는 힘든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살았던 거다. 그랬기에 그 힘든 고빗길을 무사히 건너온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에게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다. 지금 잘살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잘 살 거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최근 공개한 보고를 보면 나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진다. 2020년 기준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 인구 소득 빈곤율은 40.4%로 OECD 평균 14.4%보다 세 배가량 높다는 거다.
이제는 무지갯빛 꿈만 꾸지 말고 나의 통장 잔액을 확인하며 살아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