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세복 시인

▲배세복 시인
▲배세복 시인

오늘도 조회에 들어간다. 교직에 들어선 지 30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도 조회 전에는 머리를 매만지고 옷깃을 단정히 하고, 혹시나 얼굴에 뭐가 묻지는 않았는지 바지 지퍼는 열리지 않았는지 점검하고 교실에 들어서려 노력한다. 별것 아닐지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이것이 교직을 시작한 후 ‘처음처럼’이라는 필자의 마음가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조회(朝會)’의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면 ‘벼슬아치들이 정전(正殿)에 모여 임금에게 문안을 드리고 정사(政事)를 아뢰던 일’이라고 되어있다. 물론 필자가 임금은 아니지만, 요즘 고등학교에서의 조회는 반대로 임금이 신하, 즉 학생들에게 문안을 살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피곤함에 찌든 고등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 교사가 그들의 표정을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소위 ‘0교시’라는 것이 사라졌다. 한때, 8시 이전에 보충수업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 학생들은 밤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다가 하교하여 6시에 일어나 7시 반까지 등교하고 수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 학생들의 처지에서는 조회는 그야말로 새벽 ‘효(曉)’자를 쓴 ‘효회(曉會)’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요즘 학생들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학교에서의 야간자율학습 인원은 줄었지만, 하교 후 보습학원에 다닌다거나 스터디 카페를 가는 등 학교 밖에서의 학습량도 전혀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태양이 어두워지는 ‘일식(日食, 日蝕)’의 ‘식’자는 전자는 ‘먹다’, 후자는 ‘좀먹다’이니까 ‘食’이든 ‘蝕’이든 모두 태양이 무언가에 먹힌다는 의미이다. 지금이야 달이 태양을 가리는 천체 현상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지만, 옛날에는 절대자를 의미하는 태양이 무언가에 잡아먹힌다고 생각하니 진정 두려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일식이 일어나면 그 일식이 사라질 때까지 임금과 신하가 모여 함께 북을 두드리며 제를 지냈다고 한다. 쉽게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북을 두드리는 시간은 길었을 것이고 결국 일식은 그렇게 북을 두드린 결과 사라졌을 것이다. 달과 태양의 각도가 어긋나면 사라지는 것이 일식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때는 그런 걸 전혀 몰랐으니, 얼마나 애가 타는 일이면서 또한 전의(戰意)에 불타는 일이기도 했을까.

어느 해 조회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던 해이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점점 더워지는 시기였다. 고3 담임은 고3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고생을 많이 한다. 자율학습 지도 시간도 길고 보충수업도 더 많이 하고 논술 수업에 면접 준비까지, 그저 지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앞서 말한 대로 머리와 옷깃을 단정히 하고 지퍼도 점검하며 교실에 들어섰다.

그러나 이미 대부분 학생은 엎어져 있다. 그 옛날, 임금이 지나가면 백성들이 땅바닥에 모두 엎드리는 것처럼 책상에 읍(揖)하고 있다. 어떤 학생은 깨워도 일어나지 못하고, 간신히 일어나더라도 눈을 뜨지 못한 채 얼굴을 마구 구기고 있다. 담임으로서 10분간의 조회 중에서 그래도 전달 사항들을 읊어가며 조회를 5분 안에 빨리 마쳐 버린다. 학생들 얼굴은 아직도 일식(日蝕) 중이다. 피곤이 좀먹고 있다. “얘들아, 우리 둥둥 북을 치자”라는 말도 해 보고, “너희들 얼굴이 좀먹지 않게 두둥둥 북을 울리자”라고 외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5분이라도, 3분이라도, 아니 1분이라도 더 잘 수 있으면 그러라고 교실 문을 나선다. 드르륵 조용히 교실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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