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수 국립청주박물관장

▲ 이양수 국립청주박물관장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야마나시 현립 박물관에서 여러 권의 책을 보내왔다. 그중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머리가 두 개 달린 까마귀 그림이었다. 『이치가와 마을 콜레라 유행 일기』에 실린 그림으로, 흰색과 검은색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기묘한 새였다.

2020년 야마나시 현립 박물관은 이 새를 ‘예언의 새’라는 이름으로 SNS에 소개했는데, 전염병으로부터 인간을 지켜주는 신비로운 존재라는 설정이 대중의 관심을 끌며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이 새 덕분인지 몰라도 우리는 무사히 코로나 팬데믹을 넘길 수 있었다.
국립청주박물관에서 현재 개최 중인 특별전 「후지산에 오르다, 야마나시山梨」의 출발점이 바로 이 그림이었다.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진정된 2023년, 국립청주박물관은 잠시 중단됐던 야마나시 현립 박물관과의 교류를 재개했고, 2025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전’을 공동 개최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대여하고 싶은 전시품으로 이 머리 둘 달린 까마귀 그림을 선택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전염병은 인간에게 두려운 재앙이었다. 천연두·홍역처럼 주기적으로 유행하는 풍토병도 있었지만, 더 무서운 것은 한 지역에서 발생해 국경을 넘어 퍼지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전염병—흑사병처럼 인류의 삶을 뒤흔든 병들이었다.
1858년경 일본에서는 콜레라가 대대적으로 창궐했다. 콜레라는 원래 인도 동부의 풍토병이었지만,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의 상선과 군함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1820년 중국 광둥성에서 처음 확인된 뒤, 이듬해 베이징을 거쳐 조선의 평양까지 전해졌다.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일성록』 등에는 날씨가 따뜻해지면 감염자가 늘고, 서늘해지면 병세가 잦아든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오늘날의 콜레라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그림이 그려져 있는 『이치가와 마을 콜레라 유행 일기』는 이치가와무라(市川村)에서 행정을 맡았던 나누시(名主) 기자에몬(喜左衛門)이 콜레라가 극심했던 안세이 5년(1858)의 상황을 기록한 개인적인 일기이다. 7월 중국발 미국 군함이 나가사키에 입항하면서 일본에 콜레라가 퍼졌고, 불과 50일 만에 26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야마나시에서도 그달 말 첫 사망자가 보고되었으니, 일본 서쪽의 나가사키에서 후지산이 있는 야마나시까지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병이 확산된 셈이다.
콜레라는 오염된 물이나 음식으로 감염되며, 급격한 설사와 탈수를 일으켜 짧은 시간에 생명을 앗아간다. 병의 진행이 빠르고 감염력이 강해 단기간에 많은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사망하는 것이 특징이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던 당시 사람들은 결국 신성한 존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일기에는 1857년 12월, 검은 머리와 흰 머리를 가진 두 개의 머리 달린 까마귀가 나타나 “내년에는 콜레라가 크게 유행해 열 명 중 아홉이 죽을 것이다. 나를 아침저녁으로 모시면 그 환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예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죽음을 앞둔 절박한 심정으로 이 까마귀를 경배했을 것이고, 어딘가에서는 실제로 그 덕에 살았다는 이야기도 돌았을 것이다.
에도 시대에는 콜레라뿐 아니라 여러 전염병이 반복적으로 유행했고, 판화 제작자들은 질병을 예방하거나 퇴치하는 방법을 나열해 ‘하시카에(はしか絵)’라는 판화를 만들어 유통시켰다. 당시 홍역 같은 풍토병에 대해 병을 피하는 방법, 금기 음식, 특효약 등 다양한 실용 정보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도 전염병이 극성을 부리면 결국 왕실 주도로 초자연적 존재에게 제사를 지내는 방식에 의존하기도 했다.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이러한 믿음은 미신이기보다 생존을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시실의 마지막 공간을 지키고 있는 이 그림은 화려한 우키요에처럼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는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시대의 공포를 알고 보면 더없이 흥미로우며, 이번 전시에서 필자가 가장 애정을 갖고 소개하는 전시품이기도 하다.
이번 주말에는 이 특별한 ‘예언의 새’를 직접 만나러 박물관을 찾아와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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