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이방주 수필가
▲이방주 수필가

청주공예비엔날레가 끝난 지 근 한달이 되어 간다. 하지만 큰 은혜를 입은 나에겐 여전히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폐막을 이틀 앞두고 성파선예전 명명백백에 연계하여 ‘우리 하나 되어 明明白白’ 스페셜 이벤트가 있다고 들었다. 선착순 100명만 참여를 허락한다기에 어렵게 신청했다.

‘우리 하나 되어 明明白白’은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이신 성파 큰스님의 작품 안에 들어가서 시, 춤, 음악으로 작품 의미를 다시 표현하고, 큰스님의 법문과 명상을 통해 ‘하나가 되어’보는 감상과 체험을 하나로 하는 행사로 정리할 수 있다.

11월 1일 오후 2시, 폭 3미터 길이 100미터의 한지로 둘러싼 안에 우주를 본뜬 조형물, 하늘과 땅이 만나 하나 되어 明하고 白한 그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유영선 작가의 진행으로 명상, 연주, 무용, 공연, 낭송이 이어졌다. 진행자의 잔잔한 음성은 홀기를 읽어나가듯 분위기가 따뜻하고 고요하게 만들었다. 男과 女, 韓과 洋, 白과 黑, 天과 地, 어둠과 빛이 하나 되는 순간을 큰스님께서 미분과 적분으로 법문을 열어 깨우쳤다. 닥나무의 섬세한 섬유질이 올과 결로 만나 엮이고 통섭하여 100미터 한줄기로 맺어져 온 우주로 발현되는 것이 바로 그 ‘하나’이다. 작은 것이 큰것으로 모여서 하나가 되고, 찰나가 영원이 되고, 점이 실이 되고, 실이 면이 되고, 면이 모여 우주가 된다. 우주는 하나 하나 별로 나뉘고 별은 다시 점이 된다. 하나는 영원이 되고 영원은 하나가 되는 깨우침을 한국인의 정서 ‘보다’로 밝히는 법문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리게 했다. 그러나 가슴은 따뜻했다.

우리 내외도 하나 되고, 나와 남이 하나 되고, 여기 모인 100명이 하나가 되고, 여기와 우주가 하나 되는 순간이었다. 조계종 불자인 우리 내외는 종정이신 성파 큰스님과 하나가 되었다. 시인 섬동의 시가 땅에서 하늘로 이어져 하나가 되는 詩의 말씀으로 ‘하나’된 우주에 전해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 변광섭 대표께서 ‘차 한 잔 하고 가라’며 이끌어서 사양했다. 그런데 성파스님이 함께 한다고 한 마디 더 권한다. 순간 가욕(可欲)인지 사욕(私欲)인지가 발동하여 서슴지 않고 따라갔다. 물론 아내도 함께 갔다. 그런데 성파 큰스님, 이범석 시장,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 유영선 작가, 섬동 시인, 무용가, 연주자 등 공연에 참여한 분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나는 있을 자리가 아니라 나오려했지만 이미 시간이 지났다. 조금 민망했지만 변광섭 대표께서 큰스님께 ‘수필가’라며 간단히 나를 소개했다. 그 어른과 두 번째 악수를 했다.

차를 마시면서 앞자리에 앉은 섬동 시인께서 우리는 다 인연으로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이라고 한 말씀 해주었다. 그렇구나. 인연으로 하나가 되었다. 明인지 白인지 모르지만 이미 지은 복이 있어 큰스님과 한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큰스님께서 당신의 작품이 담긴 스카프를 손수 목에 걸어주었다. 인연은 이미 몸에 걸렸다. 공연에서 모든 출연진들이 모두 하나 되었듯이 우리는 모두 하나 되어 차를 마셨다. 그것은 모두 이미 정해진 인연이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큰스님께서 통도사로 돌아가시는 길을 따라가 배웅했다. 세 번째 악수를 했다. 선물 받은 스카프를 끝까지 목에 두르고 더듬더듬 집으로 돌아왔다. 예술로 받은 가피에 부들부들 떨리던 온몸이 안정을 찾고 가슴은 점점 더 따뜻해졌다.

이제 행사는 끝났다. 어느 해보다 빛난 행사 덕분으로 청주시가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UCCN) ‘공예와 민속예술’ 분야 정회원으로 최종 선정됐다고 한다. 행사는 끝났지만 여운은 내년 이맘때가 되어도 식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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