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 충북교육청 성평등위원장
페미니즘이나 성평등 정책에 대한 반격이 우리 사회에 상당한 것처럼 언론에 보도된다. 하지만 일부의 주장을 전체인 양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통계청의 2021년 양성평등실태조사에서, “가족생계는 주로 남성의 책임”이라거나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자녀에 대한 주된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는 등의 전통적인 남녀 일 구분에 관한 질문에 대한 응답에서 여성의 “반대”가 약간 더 많지만, 남녀 모두 “반대”가 70퍼센트를 넘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는 19세에서 29세의 연령층, 소위 이대남들의 의식이 30대 남성들보다 더 성평등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 간의 차이는 성차별에 대한 주관적 의식에서 뚜렷했는데, 여성의 경우 “여성들에게 불평등”하다는 응답률이 65퍼센트, “남녀평등”하다는 응답률은 약 28퍼센트인 반면, 남성의 경우에는 “여성에게 불평등”과 “남녀 평등” 응답이 각각 40퍼센트 정도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남성에게 불평등” 응답이 남성에게서 약 17퍼센트인데 20대 남성들은 24퍼센트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20대 남성들의 경우에도 “여성에게 불평등”하다는 응답률이 훨씬 높았다.
이를 근거로 유추하면, 페미니즘이나 성평등정책에 대한 반대는 성평등이 이미 달성되어 국가적 노력은 더 이상 불필요하다는 의식이라고 이해된다. 대입, 군대, 첫취업이 일어나는 연령대의 남성들이 여성들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교육기회에서 성차별이 거의 사라진 사회에서 젠더로서의 삶을 남녀가 서로 이해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오늘날 여성들이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성차별 문제는 디지털 성폭력과 성착취, 데이트 폭력, 여성혐오 범죄 등 젠더 폭력이다. 앞의 조사에서 “여성에 대한 각종 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심각하다”는 응답은 여성들은 90퍼센트가 넘고, 남성들은 약 80퍼센트로 나타났다. 남녀 모두 절대다수가 심각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 비율이 가장 낮은 20대 남성들의 “심각” 응답도 약 67퍼센트였다. 여성들의 폭력피해에 대한 공포는 과장이거나 피해의식, 또는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이라는 세간의 주장은 다수가 아니라 일부의 선동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여성임에도 성차별을 부인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은 여자라고 해서 차별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자기의 경험을 일반화한다. 이런 생각은 성차별을 개인적으로 피하거나 당하는, 개인적 사건처럼 오해한 것이다. 성차별은 사회구조적인 차원의 문제여서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렵기도 하고, 대부분 특정 집단이나 주체가 차별할 의도를 가지고 행하는 것도 아니다.
여성들에게 성폭력 피해 위험이 있는 사회는 직접 피해를 입지 않은 여성의 삶에도 영향을 준다. 직접 피해 경험이 없는 여성의 삶에서도 성폭력은 현실인 것이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의 위험은 직장생활, 사회활동, 인간관계, 자아개념 등에까지 영향을 준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귀가시간, 여행, 집구하기 등을 할 때 자기도 모르게 성폭력의 위험을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야근, 지방출장, 남성이 다수인 사업장이나 주로 남성을 상대하는 직무 등이 더 나은 처우와 승진기회와 연관되더라도, 피하기도 한다. 혼자 산다면, 집에 남자 신발을 두거나 남자 빨래를 걸어두어, 나를 보호할 남성이 있으니 공격할 생각은 접어두라는 표시를 한다. 공격당하거나 보호받아야 하는 몸을 가진 존재라는 자아개념은 여성들의 독립된 주체로서의 자긍심을 불안하게 한다. 거나한 술판이 되는 회식자리도 같은 이유에서 꺼린다. 이런 태도 때문에 직장생활에 소극적이라는 평판을 받거나 주요정보 네트워크에 끼어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낮은 평가를 그냥 수용하고 내면화해 버릴 수도 있다. 여성이 이런 두려움을 떨쳐내고 자유롭게 살 수도 있지만 그런다고 젠더 폭력의 위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피해를 당할 경우 더 큰 피해자 비난에 맞닥뜨리게 될 뿐이다.
사회 변화에 따라 젠더 관계는 재구성된다. 남녀의 삶이 달라졌고 성평등 문화도 많이 확산되었다. 과거의 성차별은 약화되었을지라도 새로운 양태의 성차별적 젠더 관계가 나타나고 있다. 페미니즘과 성평등정책에 대한 반감은 이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지기 전의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보고 싶다. 젠더 관계의 재구성을 설명하고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사회적 노력에 힘이 더 실리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