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옥 시인

▲ 김미옥 시인
▲ 김미옥 시인

아침 공기가 묘하게 차갑고 말랐다. 김장을 부르는 날씨였다. 김장하는 날이면 늘 모이는 이웃들이 있다. 나는 성격에 따라 그들을 A, B, C, D라고 부른다. 그날, 108동 804호에 김장 바람이 일었다.

A는 배추를 둥둥 씻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501호 귀머거리 할머니 말이야, 강남 아들네 가셨다더라?” B는 쪽파를 다듬다 말았다. “아까 택시에서 내리시는 거 봤는데? 어디를 갔다 온 건지…” C는 무를 ‘착착’ 채 썰며 보탰다. “809호 할머니는 손주 보고 싶다며 아들네를 자주 가신다잖아.” B는 생강을 다지며 고개를 저었다. “아유, 그 아들 연락 끊겼대. 늙으면 자식이 부모 찾는 게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찾아다니는 거지.”

김장판은 배추보다 먼저 말이 절여지는 자리다. 구수한 말도 있지만, 묵은 서운함과 짠 기대, 씁쓸한 진실이 뒤섞인 말도 섞인다. 나는 함지박 깊숙이 손을 넣어 쪽파와 무, 마늘과 생강, 젓갈을 버무렸다. 양념 사이에 사람 냄새까지 뒤섞여 들어갔다.

내가 양념 묻힌 배추 한 잎을 B의 입에 쏙 넣어주며 물었다. “어때?” B가 혀를 날름 내밀었다. “어휴, 매워! 너무 맵다.” 나는 다시 간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아냐, 딱 맞아. 김장은 좀 매워야 익었을 때 제맛 나지.” 그러자 A가 웃으며 말했다. “맞아, 사람도 너무 싱거우면 오래 못 가.”

C가 젓갈통 뚜껑을 닫으며 투덜댔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김장 안 한다더라. 사 먹으면 된다고.” B는 바로 맞섰다. “먹을 땐 또 손맛 찾지” A는 배추 한 잎을 찢어 씹으며 말했다. “그러다가 김장 끊기면, 그땐 난리 날걸. 엄마 손맛 찾는다고.”

나는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말했다. “김장은 이렇게 모여서 해야 맛이 나.”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세대가 다르고 사는 방식이 달라도, 손을 함께 빨갛게 물들인 사람들 사이에는 익어가는 무언가가 있다.

TV에서는 동물원에서 탈출한 곰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C가 한숨을 쉬듯 말했다. 사람 사는 것도 동물 사는 거랑 다를 게 없어. “각자 살기 급급한 세상이지.” B는 고춧가루 봉지를 접어 넣으며 중얼거렸다. “부모 생각, 자식 생각… 다 마음의 그릇만큼이지 뭐.”

렌지 위에서는 찌개가 소문처럼 보글보글 끓고, 맵고 짭조름한 냄새가 아파트 복도까지 스멀스멀 퍼졌다. 뜨거운 말도 있었고, 양념처럼 은근히 스며드는 말도 있었다. 그날 함지박에 버무려진 것은 배추뿐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세대의 고집, 오해, 정, 그리고 조금의 이해까지 함께 버무려졌다.

젊은 세대는 바쁘다는 이유로 김장을 내려놓고, 나이 든 세대는 여전히 손끝으로 겨울을 준비한다. 서로를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속마음은 자주 엇갈린다. 한쪽은 ‘왜 굳이 해야 하느냐’고 묻고, 다른 쪽은 ‘이렇게라도 이어가야 한다’고 답한다. 세대의 틈은 배추 줄기처럼 굽어 있고, 그 틈 사이로 서운함이 천천히 스며든다. 그러나 겨울을 지나면 결국 익는 건 김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함지박 가장자리에는 아직 버무리지 못한 말들이 조용히 남아 있었고, 그 말들은 언젠가 익은 김치를 꺼내 먹을 때처럼 자연스레 다시 모습을 드러날 것이다. 세대가 다르다고 마음의 온도가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라는 걸,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손을 물들이는 순간에야 비로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겨울바람이 아무리 차갑게 불어도, 마주 앉던 이 시간만은 오래도록 집 안을 데우는 장작불 같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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