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용 충청북도교육감

올해로 벌써 예순 몇 번의 새해를 맞았습니다.

한 해 한 해 해가 갈수록 시간이, 세월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맞이하는 새해 아침에, 마음 한 자락 어디쯤에 조용한 사유의 방 하나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허둥대며 살아온 지친 마음을 잠시 쉬라는 배려일까요? 잠시 무념무상의 여유를 부리는 호사(豪奢)를 새해 아침에 덤으로 얻었습니다.

서설(瑞雪) 펑펑 내리는 양력 정월 초하루의 새벽에 잠시 길을 나서 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 얼굴을 스치는 서늘한 공기의 촉감, 발밑에 내려 쌓인 흰 눈의 그 포근한 느낌이 이렇게 경이롭고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햇살 한 줌도, 바람 한 자락도, 저렇듯 아름답게 내려 쌓이는 눈 한 송이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인데, 오늘 아침 문득 만물을 지으신 이의 놀라운 솜씨에 그만 눈시울 뜨거워집니다.

이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고 올 한 해를 살아 보려고 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그 어떤 고급이론도, 세상에 회자되는 명언도 면회사절입니다. 그저 오롯이, 이 감사함에 저 자신을 맡기고 세상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빈 마음에 문득 시 한 구절이 스며듭니다.

“감사만이 / 꽃길입니다 / 누구도 다치지 않고 / 걸어가는 / 향기 나는 길입니다 / 감사만이 / 보석입니다 / 슬프고 힘들 때도 / 감사할 수 있으면 / 삶은 어느 순간 / 보석으로 빛납니다 / 감사만이 / 기도입니다 / 기도 한 줄 외우지 못해도 / 그저 / 고맙다 고맙다 / 되풀이하다 보면 / 어느 날 / 삶 자체가 / 기도의 강으로 흘러 / 가만히 눈물 흘리는 자신을 / 보며 감동하게 됩니다” (이해인, 「감사 예찬」전문)

“감사만이 누구도 다치지 않고 걸어가는 향기 나는 길”이라는 구절에 오래도록 눈길이 머뭅니다.

눈만 뜨면 사람 사는 세상에 갈등과 미움이 악의 꽃처럼 피어납니다. 집단이기주의와 사리사욕이 원칙과 약속의 언어들을 짓밟으며 공공의 질서를 앞질러 달려갑니다. 내 편 아닌 것은 모두 적이라는 이분법적 흑백논리로 무장한 이들의 범박하고 허술한 주장을 보면서,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에 앞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관용일는지요?

내가 옳으면 남도 옳은 것입니다. 한 걸음만 비껴서 생각해 보면 혼자만 옳다고 뭐 그리 큰소리 내면서 살 일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향하여, 무엇인가를 향하여 비난의 화살을 날려대는 그 사람 자신도 최소한 절반 이상(경우에 따라서는 전부)은 자신의 주장은 틀린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숨기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홀로된 시간에 곰곰 되새겨 보면 스스로에게 참으로 부끄럽기도 하련만, 그런 사람일수록 되새김의 시간을 갖지 않는 것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저 또한 달리 어찌해 볼 수 없는 군상(群像) 중의 하나이니 이 모순들에서 비껴서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참회를 해 봅니다.

새해에는 좀더 목소리를 낮출 일입니다. 조근조근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서로를 다독일 일입니다. 하루에 한 번쯤은, 경이롭게 펼쳐지는 하늘과 그 아래 우뚝 선 나무들을 바라볼 일입니다. 반목과 갈등으로 서로를 헐뜯기에는 인생은 유한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도 짧다는 것을 뼈아프게 느낄 일입니다. 사람에 감사하고, 불어오는 바람에 감사하고, 여름과 가을, 겨울 지나 봄, 그 창연한 계절의 빛깔 앞에 겸손히 머리 조아릴 일입니다.

새해에는 그렇게 감사하며 “향기롭게” 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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