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훈 <양업고 초대교장>

 

 

어느 겨울에 비길 수 없는 엄동인데, 송전탑 위에서 오래도록 단식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세상은 그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하지만, 그들은 이 길이 동료들에게 생명이 되는 길이라 믿고 선택한 것이다. 지금 당장은 그들의 요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는 그 희생의 대가가 동료들 모두의 요구를 실현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이 예수님을 닮았다.

그런데 자기들이 잘못해서 소외받고 살아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이 기가 막힌 엄동에서도 자신들의 생존권 때문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이 있다.

그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보금자리가 가시방석처럼 되어서 집과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음에도, 그들은 자신의 생존권을 외치는 송전탑을 생각도 못하고 안타깝게 지내고 있다. 그들이 송전탑 위에 놓인 가출과 등교거부를 선택할 때까지, 어른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관심과 배려를 했을까.

사람은 다양한 욕구에 따라 신체적으로 반응하고 느끼며 생각하고 행동한다. 반응, 느낌, 그리고 생각, 행동은 다 함께 연장선상에 있다. 전륜구동의 차량이라면 두 뒷바퀴는 앞바퀴에 따라 움직인다. 뒷바퀴는 반응과 느낌이다. 이들 바퀴는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반응과 느낌은 어떻게 드러나든 전혀 문제가 없다. 즉 윤리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왜 그렇게 반응하고 느끼는가를 따져서도 안 되고, 이유를 따진다면 어른이 성숙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따지는 사람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문제는 몸 전체를 움직이는 전륜구동인 앞바퀴가 문제이다. 앞바퀴 격인 두 요소, 즉 생각과 행동이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생겨나고 윤리성을 따지게 된다.

미성숙한 청소년들은 어른들처럼 전륜구동의 요소가 건강하지 못해 윤리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교육받는 것이다. 교육은 미성숙함을 성숙으로 이르게 하는 과정이며, 이를 제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돕는 모든 노력이다. 미성숙한 청소년들은 그 생각이 부족해 행동이 늘 부자연스럽다.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생각이 짧아서이다.

눈높이가 낮아서 동물적 인간학이 적용되어 힘의 논리로 자기를 내세우려는 마음이 가득하다. 그래서 멋 부리고, 우위의 힘을 자랑하며, 때로는 열등감으로 주눅이 들기도 한다.

청소년들의 특징은 현실에서 늘 좌측에 놓인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어른들이 볼 때 영 마음이 들지 않아, 어른들은 학생들을 교육한다고 하는데, 그 방법이 또한 미성숙하다. 지시명령, 통제 간섭, 훈화나 설교를 즐겨할 뿐 그들 수준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래서 기다려주지 못한다. 전혀 변화의 조짐이 없으면 어른도 힘으로 조절하려 한다. 언어적 폭력이나 물리적 폭력만이 약이라고 믿고 폭력을 행하면, 관계는 깨져 대책을 세워보지만 때는 늦었다. 또한 그 대책이 가히 폭력적이다.

청소년들이라고 왜 자기 운전대를 잡고 스스로 운전하고 싶지 않겠는가. 너희들이 운전대를 잡으면 위험하니, 말을 고분고분 들으라는 강요만을 하는 어른들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 자발성과 자기 주도성을 키워주지 않으면서, 어른이 교육한답시고 삶의 주체인 청소년들을 끊임없이 구속해 간다. 대학생활까지 어른들이 조정하려 하니, 이들에게 철학적인 사고가 커가겠는가. 청소년들이 현실 문제를 놓고 선택하는 행동은 어른에 비해 수준이하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교육하고서 청소년들이 가출하고 등교거부하면, 그리고 엄동의 세파인 송전탑 위로 내몰고는, 청소년들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어른들의 큰 잘못이다.

송전탑 위의 노동자들처럼 엄동에 내몰린 청소년들은 항변할 줄 모르지만 어른들이 관심을 두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

만일 청소년들이 세상을 밝게 살 생존권을 위해 들고 일어나 외친다면 그 때는 너무 늦었다. 어른들이 그들을 위해 빠르게 방법을 찾아주어야 한다. 더 나아가 청소년들이 외치기 전에 어른들 누군가가 그들을 대변해서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어른들이여,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춰 따뜻하고도 지속적인 관심을 갖도록 하자.

그래야 더 이상의 엄동에 떨고 있는 청소년들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 모두가 내 자식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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