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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봄날, 포석 조명희를 추억하다
중앙아시아의 봄날, 포석 조명희를 추억하다
  • 동양일보
  • 승인 2013.02.1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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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소설가·명지전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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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우주베키스탄 타슈켄트 한국학센터에서 열린 포석 조명희 선생을 기념하는 고려인 모임 후 포석회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은 왼쪽이 필자, 뒷줄 왼쪽 두 번째가 포석회 회장인 박엘리야씨, 뒷줄 왼쪽 네 번째가 포석의 외손자인 김안드레이씨.

 

 













이역만리 떨어진 중앙아시아의 한복판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 이곳의 절기는 한창 봄을 향해 진군 중이다. 하늘은 청명한데, 한국의 하늘빛과 달리 짙푸른 빛이며, 멀리 천산산맥의 설산이 신기루처럼 떠 있다.

타슈켄트 중심에 자리한 한국어센터 1층에 마련된 포석회(회장 박 엘리야) 간담회 장소에 들어서자 비교적 수수하게 차려 입은 고려인들이 반겨 맞는다. 한결같이 러시아 말이다. 동행한 김 안드레이가 대강 소개해 주었다.

약속 시간 11시가 되자 모두 15명이 모였다. 대부분 고려인들이 한국어를 몰라서 김 안드레이가 통역을 해야 한다. 오늘은 나 때문에 통역이 필요한 날이다.

포석회 회장 박 엘리야가 개회 선언 같은 인사말을 하였고, 포석 조명희의 고향에서 손님이 왔다는 멘트에 박수가 터져서 나는 등 떠밀리 듯 일어나 인사를 했다. 참고로, 나는 영동이 고향이다. 이 간담회는 정초에 서로 얼굴도 볼 겸 마련되는 모임이고, 본 행사는 매년 10월에 나보이 문학박물관에 마련된 조명희관에서 열린다고 했다. 고향에서 온 나를 위해 참석자들을 한 사람씩 일일이 소개해 주었다. 조명희의 외손자 김 안드레이, 김 블라디미르(소설가), 이 베체슬라브(시인), 리 류드밀라(타슈켄트시 고려인협회 회장), 임 미하일(전 지작주 부지사), 이 이노켄치(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문화협회 노인회 회장), 한 발렌찐(가수), 김 아나톨리(작곡가) 외에 모두 교사 출신 지식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 황금색 머리카락에 푸른 갈색 눈을 가진 여인 한 분이 유별하다. 러시아의 저명한 시인 파인베르그 알렉산더(Fain Berg Alexander)의 미망인 코왈 인나인데, 포석회 회원이란다. 시인 파인베르그 알렉산더가 생존해 있을 때 조명희의 시를 좋아하여 러시아어로 번역 출판하는 일에 앞장섰던 인연으로 포석회 회원이 되어 모임 때마다 참석한다고 했다.

다른 날 같으면 포석 조명희와 관련된 일화를 돌아가면서 들려주거나, 중간 중간에 포석을 추억하는 가곡을 아코디온에 맞춰 부른다.

오늘은 각별히 나의 전기적 행적을 중심으로 고찰한 조명희의 문학 세계요약 발표가 있었다. 먼저, 그동안 한국에서 진행된 조명희 문학행사들을 안내하고, 진천군 포석의 고향에 들어설 문학관 소개를 했다. 불행한 시대에 태어나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문학을 통해 민족혼을 불어넣겠다는 꿈을 안고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44세 비운의 생애를 마감한 조명희. 혁명가 혹은 사회주의 작가라기보다 민족주의 작가가 더 어울려 보인다. 그래서 한국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역만리 타슈켄트에서 그를 추억하는 문학 행사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끝에 나는 어느 시인의 조명희 추모시를 소개했다.

강물이 흐르고 / 인간의 마을에 / 불빛이 꺼지지 않는 한 / 이미 죽어 흙이 된 / 한 사내의 꿈속에도 / 여전히 꽃은 피고 진다

가수 한 발렌찐과 아코디언을 멘 작곡가 김 아나톨리가 등장하여 조명희의 시 누구를 찾아가곡을 불렀다. 러시아어로 번역한 가사인데, 15년 이상 이어온 전통이라고 했다. 시인 이 베체슬라브 작사하고 김 아나톨리가 작곡한 가곡 기억이 연이어 흘렀다. 조용한 작품 발표 자리였던 셈이다.

한 사람 씩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고 그냥 주저앉으니 서툰 고려말 질책이 따른다. “왜 노래 아이 부르는가?” 그러면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슬그머니 일어나 노래 한가락을 뽑고서야 앉는다. 여흥을 즐기는 모습들이 봄 들판을 거니는 노인의 발걸음처럼 유유자적하다. 그들이 내 손을 잡으면서 하나같이 말한다.

고향에 가시거든 안부 전해 주시오.”

여기에 주어가 빠져있다. 누구에게? 고향 산천에? 150여년이 흐른 지금 그들의 가슴에는 고국을 향한 그리움이 모닥불처럼 살아 있다.

도란도란 나누는 정담 중간 중간에 아코디언에 맞춘 애잔한 가곡 가락 속에 봄날 한낮이 까무룩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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