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순 옥
청주 운호고 교사
변덕스런 일기 속에 좀처럼 오지 않을 것 같은 봄날은 어느덧 오는 듯이 가버리고, 여기 저기 향기로운 연초록의 물결이 장미와 함께 성큼 다가와 있다. 싱그러운 6월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발령지인 충북 영동의 한 작은 중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교사(校舍) 뒤편으로 금강 줄기의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고, 그 위로는 노란 개나리가 도란도란 모여 앉은 아기자기한 곳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신발을 벗고 개울에 들어가 선생님 학생 할 것 없이 나와 물장구를 치며 물고기를 잡던 그리운 곳이다.
지난 스승의 날 학교에 출근해보니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제자 정OO 올림. 이라고 적힌 연분홍색 카네이션 꽃바구니가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20여년 전 영동에서 처음 만난 제자의 이름이었다. 눈이 유난히 초롱초롱 빛났고, 착한 심성의 학생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키워 온 나의 간절한 꿈이 시작된 곳이어서 그런지 그 곳의 학생들, 가정환경, 교복, 작은 풀꽃 하나도 생생히 기억되어 언제나 잔잔한 그리움이 된다.
그 시절 만난 제자들과는 지금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깊은 정을 쌓아 오고 있다.
지난해 가을 정OO의 결혼식 날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는 데, 나의 손을 꼭 잡으시며, ‘우리 딸이 한의대를 가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선생님께서 아침 조회시간마다 해주신 말씀을 듣고 날마다 마음을 다잡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며 고맙다고 하셨다. 뜻밖의 말씀에 놀랍고 오히려 내가 더 감사했다.
그날 집에 돌아와 많은 생각을 했다.
초임 시절 나는 ‘부족함 투성이었지만, 사명감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구나!
학생보다 먼저 교실에 가서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으며, 등교하는 한 명, 한 명에게 먼저 말을 걸었구나!
조회 시간 할 말을 미리 생각해서 교무 수첩에 적어두었다가 꼬박 꼬박 마음을 다해 전해 주었구나!
청소 시간마다 하루에 두세 명 씩 일부러 다가가 칭찬을 해 주었구나!
성적표를 보내는 날이면 일일이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격려의 말씀을 당부했었구나!
잘못을 했을 때, 화 먼저 내지 않고 이유를 부드러운 말씨로 물어보았구나!
학생이 마음을 열고 다가와 집안 사정을 얘기할 때면 같이 부둥켜안고 울었구나!
수업 시간에 질문을 많이 하도록 배려했었구나!’
이 모든 것이 사범대학 시절 내내 교수님들께 배운 것을 실천하고자 노력한 것이었고, 그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어서 그리 칭찬받을 만한 일도 아니었으며,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 또한 많았다.
교직 생활 20여년! 오늘의 나는 어떤가를 되돌아본다. ‘단순히 지식만을 가르치는 교사는 아닌지, 학생 사안이 발생했을 때, 나에게 돌아올 책임을 먼저 생각하고 학생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은 뒷전이 아닌지, 학생에게 내가 상처받을까봐 그릇된 행동을 보고도 지도를 포기한 적은 없었는지, 질문이 유난히 많은 학생을 귀찮아하진 않았는지, 학생들이 나에게 마음의 문을 닫게 한 적은 없는지.’
요즘은 학교 교육의 위기니, 교실의 붕괴니 스승은 없고 선생만 남았느니, 등등의 말들이 하루가 멀다하게 교육현장을 찾아든다.
주위에서는 고등학교에 근무한다고 하면 ‘얼마나 어려우신가’를 물으며 위로의 말을 한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빚은 결과라고만 생각하기에는 ‘교육자’이기에 먼저 머리가 숙여진다.
학생들은 어른이 아니다. 얼마든지 잘못할 수 있고, 철없이 행동할 수 있다.
인생을 조금 더 살아온 선배로서, 그들의 교육을 책임지고자 사명감으로 선택한 사도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 번 더 힘을 내 우리의 학생들을 자식처럼 보듬어 안아볼 일이다.
초록의 나무들과 색색의 장미가 어우러진 싱그러운 계절! 분홍색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보며 초심을 잃지 않으리라 생각해 본다. 교정의 일상을 감동으로 일궈나가길 다짐해본다.
 
-1962년 충남 아산 출생
-운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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