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는 평화 통일의 열망을 담은 작품들이 실제 많이 실려 있다. 하지만 교실에서 아이들과 해당 작품을 통해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이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2010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매우 필요하다.’고 인식한 청소년은 23.3%에, ‘통일이 불필요한 이유’로 경제적 부담을 꼽은 청소년이 25.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비단 추상적인 수치상의 개념만은 아니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청소년들 중 대부분이 통일을 다룬 작품을 가르치며 통일에 대한 생각을 물으면 대부분이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로 인식하거나 ‘우리가 왜 못사는 나라인 북한과 통일을 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이 땅의 청소년들이 통일을 단순히 추상적인 정치 구호로 인식하고 있으며, 나아가 남한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단정짓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안타까웠다. 매년 돌아오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학생들과 실제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고 싶었다. ‘하루, 한 시간 쯤은 잠시 교과서를 덮어도 괜찮겠지’하는 생각으로 수업시간에 1인 1표어 만들기 활동을 해보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어하고 어려워하던 학생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번뜩이는 재치로 주옥같은 표어들이 쏟아냈다. ‘하나되는 남북통일. 우리부터 시작하자’와 같은 다소 진부할 수 있는 표어가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이후 ‘갈림길의 남북관계, 지름길은 평화통일’과 같은 현재 대치 국면의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가면 갈수록 이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설적으로 대화이자, 평화라는 해법을 제시하는 표어가 제시되었다. 또한 ‘평화라는 휴지로 민족의 한 풀어보세’와 같은 그동안 쌓여온 민족의 한을 이제는 평화라는 방법을 통해 시원하게 풀어보자는 취지를 약간의 재치를 발휘한 표어도 제시되었다.
이후로도 다양한 생각을 담은 여러 표어들이 제시되었고, 우리는 1시간 동안 오로지 통일에 대해서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학생들 모두 통일에 대해 이렇게 오랜 시간 고민해보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까 반문해본다.
그렇다면 통일에 대해 이렇듯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왜 23%뿐만이 통일에 찬성한다는 불명예를 안아야만 하는 것일까.
해답은 학교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통일 교육의 면모를 살펴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재 학교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통일 교육은 당위적인 층위에서 정치, 역사적 개념 위주의 추상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형태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통일을 구체적인 생활 개념으로서 인식할 수 없도록 하였고 나아가 실질적인 관심을 제고하지 못하였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통일에 대해 단순하고 고리타분한 정치, 역사적 감수성에 기대어 ‘민족사적 과제’, ‘한민족’, ‘안보’ 등의 거대 담론 위주의 단어들만 나열하고 있으니 청소년들의 공감대 형성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거대 담론 위주의 이러한 논리 전개는 계산적이고, 실리적이며 다분히 개인주의적인 청소년들에게 있어 당연히 수용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앞서 언급한 청소년의 통일에 대한 인식 또한 더 이상 놀라운 일로 다가오지 않는다.
청소년들의 통일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역설적으로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통일 교육이 중요하고도 시급함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통일 교육을 위해서는 기존의 통일에 대한 교육 방향이 어째서 거대 담론위주로 설정되었는지부터 고민해보아야 한다. 통일이 당장 ‘내일, 6개월 뒤, 1년 뒤’에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거대 담론 위주로 추상적 논의를 진행시킬 수 있었을까.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현재 학교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거대 담론 위주의 통일 논의에는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중요하고도 당연한 전제가 결여되어 있다.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통일을 성실하고 차분하게 준비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통일을 추상적인 정치 구호가 아닌 구체적인 현실 개념으로써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통일 편익’을 바르게 인지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 정치, 경제, 사회적인 측면에서 통일로 인한 편익을 다각도로 조명함을 통해 청소년들의 실질적인 관심을 높이고, 통일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역량을 길러주어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통일된 대한민국에서 통일로 인한 다양한 혜택을 실질적으로 누리며 살게 될 이 땅의 청소년들이 오히려 통일에 대해 무관심하고,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 현실의 문제에 있어 모두들 본인의 위치에서 자기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봐야할 문제이다.
기성 세대가 통일이라는 것을 어려운 것으로, 힘든 것으로,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해온 세월이 벌써 반세기가 지나버렸다. 통일을 나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인식하고 자신의 소소한 소망을 드러내며, 통일을 어렵지 않은 것으로, 힘들지 않은 것으로,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 한 학생의 표어를 통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미래를 꿈꿔본다.
쓰고 싶다. 평양발 와이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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