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방송국 직원들과 저녁을 먹었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모 기자가 이번 행사에 다문화가정을 초대하지고 제안하였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5만원 씩만 내면 한 가정 초대할 수 있으니 그렇게 하지고 하였다.
그 캠프는 가족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알차게 짜인 가족캠프다. 방송에도 계속 나가고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고 있어 정말 다문화가정이 여기에 참여하면 좋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가족이 모두 참여하는 것이니 평소에 부부나 부자간에 서먹했던 것을 풀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수도 나오고 게임도 있어 함께 호흡을 맞추면 가족 간의 정이 풍성해질 것 같았다. 필자는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언론에서 이렇게 다문화가정에 신경 써 주니 다문화가족들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즐거운 저녁 식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너무 늦은 시간이라 문자만 보냈다. 우선 한 가족에게 보냈다. 신청자가 지나치게 많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해당 방송국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가정에 보낸 것이다. 다음날 오후에 답장이 왔다. 혹시 돈이 들어가는 것이냐고 물었다. 다시 가족만 가면 되니까 참석하라고 답장을 보냈다.
잠시 후 돌아온 답장은 “안녕하세요 교수님. 저는 00엄마예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바빠서 캠프 못가요. 교수님 죄송합니다” 였다. 그리고 이모티 콘으로 미소를 하나 보내주었다. 조금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좋은 기회가 있는데 참석할 수 없을 만큼 바쁘고, 가족관계보다 중한 것이 있던가 싶다. 사실 이 가족은 부부관계에 어려움이 많아서 특별 캠프를 만들어 이벤트까지 했고, 그 후 부부 관계가 나아진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몇 가정에 더 연락을 했다. 방송국의 배려도 고맙지만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카드(?)였기 때문이다. 가족관계를 중하게 생각하고 있어 부부 간에 갈등이 있던 가정부터 순서대로 전화를 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필리핀 여성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남편이 바빠서 안 된다고 한다. 식당에 다니는 재동(가명)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니 식당이 바빠서 안 된다고 한다. 어려운 가정은 갈수록 어려워지는가 보다. 모두 바쁘지 않으면 남편이 반대한다고 하니 어쩌란 말인가? 아직 희망을 갖고 찾아보고 있지만 가겠다는 가정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잘 살고 있는 가정을 보내는 것은 쉽다. 유미네 아버지나 수빈이 아버지한테 전화를 하면 고맙다고 얼른 달려올 것이다. 필자는 잘 살고 있는 집안보다는 힘들어하는 집안을 보내고 싶다. 아직 기간이 남아서 찾아보고는 있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바뀐 것이 별로 없어 안타깝다. 아이들은 벌써 나보다 더 키가 자란 녀석도 있다. 사내아이들은 목소리가 굵어지고, 계집애들은 이제 큰아빠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세월이 흐른 것인지 내가 늙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멀리서 보고 달려오는 녀석들이 있어 행복하다. 아이들은 이렇게 성장하고 있는데 부부관계는 왜 여전히 서먹해야 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이벤트도 해 보고 식사도 같이 해 보자고 하지만 대부분이 거절한다. 이제는 가슴을 열고 부부간에 화합할 때가 되었는데, 늘 똑같이 남편은 저만치 있다고 한다. (사실 돌아서 생각하면 남편만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아내들도 부부관계에 노력하려는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참으로 이상하다.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여성스러워진다고 했는데, 다문화가정은 남편들은 아직 남성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고 잇는 모양이다. 필자 또래도 많이 있다. 필자보다 더 나이 많은 사람도 제법 있다. 이들은 일상에서 은퇴할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도 5년 이내에 현장에서는 물러나야 할 것이고 농사를 짓는다 해도 육체의 한계가 곧 닥칠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의 중요함을 잘 알고 있을 것인데 아직도 서먹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모르겠다.
10년을 넘게 부부의 연으로 살아왔으면 언어도 잘 소통할 수 있고,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 수 잇을 때가 되었는데 아직도 어색한 사이가 계속 되고 있음은 참으로 모르겠다.
조금 더 양보하고 배려했으면 좋겠다. 사는 것이 궁핍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부부관계의 개선에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은 것인지 궁금하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할 것이고 그렇게 살 권리도 있는데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현실에 지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세파에 시달려 자신을 삶을 소홀히 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장맛비에 이들의 슬픔도 함께 떠내려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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