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구 할매가 들려주는 증평의 숨은 이야기들





청주와 청원, 증평의 가장 ‘핫’한 여행지를 한 데 묶은 ‘세종대왕 힐링로드 100리길’은 문화와 예술, 생태환경을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된 ‘힐링’ 길이다. 내년 말까지 상당산성~운보의집~초정약수~증평 율리를 연결하는 문화콘텐츠 개발 사업이 추진된다.
걷기 운동의 기본 인프라를 갖춘 길에 생명을 불어 넣어 줄 소프트웨어 개발이 한창이다. 미리 만나보는 세종대왕 힐링로드 100리길 아홉 번째는 ‘좌구 할매가 들려주는 증평의 숨은 사연들’이다.
좌구 할매는 좌구산에 사는 얘기를 좋아하는 할머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지역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문 여행 가이드’라 할 수 있다. 증평의 동화작가 오미경씨는 좌구 할매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생태환경이 살아 숨 쉬는 들길’ 증평 남하·율리권의 숨은 사연들을 들려준다. 스토리텔링 북이 나오기 앞서 좌구 할매의 이야기를 미리 만나보자.

●세조 피해 온 봉씨의 보금자리 ‘율리 봉천이 마을’
증평에서 청안을 거쳐 청천 쪽으로 가다보면 칠보산과 좌구산의 중간쯤 되는 곳에 고개가 질마재여. 질마재를 넘어 조금 가면 봉천이 마을이 있어. 봉씨가 난을 피해 살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여.
아주 오랜 옛날(1106년, 고려 예종 1년), 경기도 강화군 하음산 산기슭 연못가에 상서로운 광채가 비쳤어. 물 길러 왔던 한 노파가 이상하게 여기고 연못가로 갔어. 그런데 연못 물 위에 돌로 만든 상자가 둥둥 떠 있는 겨. 속을 살펴봤더니 글쎄, 그 안에 사내아이가 들어 있지 뭐여.
노파는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해 아이를 궁중에 바쳤어. 왕은 아이를 왕실에서 키우도록 했지. 노파가 아기를 봉헌했다 해서 성을 봉(奉)이라 하구, 장래에 국가를 도울 인재라 해서 이름을 우(佑)라구 붙여줬어. 세월이 흘러 봉우는 나라의 재목이 될 정도로 훌륭하게 장성해 왕은 봉우에게 벼슬을 내려줬지.
봉우를 시조로 하는 하음 봉씨들의 후손들은 훌륭한 사람들이 많었어. 그 뒤 인재로 많이 등용됐지.
세월이 아주 많이 흘러 고려가 망하고 조선 초,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구 왕위에 올랐어. 그러자 성삼문, 박팽년 같은 사람들이 단종 복위를 도모했어. 그런데 동료인 김질의 배신으로 발각돼 저 세상으로 갔지.
이 소식을 듣고 박팽년의 매부 봉여해란 사람이 세조를 죽이려고 칼을 차고 어전으로 들어갔어. 궁중요리를 검사하는 사옹원별좌라는 벼슬을 하구 있어 쉽게 들어갈 수가 있었지. 그런데 도중에 의금부에 붙잡혀 화를 당했어. 
봉여해가 세조를 죽이려다 실패하자 그 후손들은 목숨을 건지려 전국 방방곡곡으로 흩어졌어. 그 중 일부가 이곳까지 와서 숨어 살게 됐던 겨.
봉천이 마을 서쪽으로 좌구산의 망탑봉이 있는데, 이곳에 올라가면 멀리 미호평야까지 한 눈에 볼 수 있어. 이들은 이곳에 자주 올라 고향 강화도 쪽을 바라보면서 향수를 달랬어. 한양에서 자기들을 잡으러 오는 관리들이 없나 감시하기도 하면서 말이여.
봉천이 마을은 바깥봉천이랑 안봉천이로 나뉘었어. 질마재로 넘어가는 바깥쪽에 있는 게 바깥봉천이구, 안쪽에 있는 게 안봉천이여.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하늘만 빼꼼히 보이는 아주 조그만 동네여. 그런 곳에 동네가 있나싶을 정도 아주 깊은 산골짜기에 있어. 목숨을 건지려 멀리 피해 온 사람이 숨어 살기 딱 맞춤한 곳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여. 산으로 나무하러 오는 사람이나 마주치면 모를까, 하루 온 종일 다람쥐나 노루 같은 산 짐승들하구나 벗하면서 지내야 했을 겨.
어뗘? 봉천이 마을이 생긴 내력을 들어보니 좀 짠하지?

●느티나무와 샘이 지켜주는 ‘남하리 솔모루 마을’
솔모루 마을은 염실로 들어가는 첫 머리에 있는 마을이여. 예전엔 금반리(金盤里)라고도 했어. 지금 마을회관이 있는 곳에서 남동쪽으로 800미터 쯤 떨어진 곳에 논이 있는데, 이 논 가운데 넓적한 마당바위가 있어. 바위 모양이 쟁반처럼 생긴데다, 옛날에 이 마당바위 뒤쪽에 안동 김씨들이 많이 살었다 해서 금반리라 했어.
그런데 지금은 경지정리가 돼서 안동 김씨들이 살던 집들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마을 이름도 ‘솔모루’로 바뀌었어. ‘소나무가 많은 산모퉁이’에 있는 마을이라서 붙은 이름이여.
이곳 솔모루 마을엔 250년 된 느티나무가 있어. 느티나무는 아주 오래 살기도 하구 귀신을 쫓는다구 해서 관아나 마을 입구, 고갯마루에 신목으로 많이 심었어. 그래서 어느 시골 동네든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씩은 서 있지. 이 느티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쉼터도 돼주고, 마을을 지켜주는 든든한 수호신이 돼주기도 해서 마을 사람들은 느티나무를 조상님 위하듯이 위하고 떠받들지.
솔모루 마을 사람들은 특히나 마을을 지키고 서 있는 느티나무를 아꼈어.
이 나무는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특별히 아주 신령스러운 나무거든. 글쎄 이 느티나무는 신통하게도 나라에 난리가 날 때마다 울었다는 겨.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합병을 했을 때도 구슬피 울었고,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울었다구 ‘햐~’.
나무가 어떻게 우는지 그 울음소리가 궁금하지 않어? 황소개구리 울음소리 마냥 웅웅 하구 울지, 아니면 꺽꺽거리면서 울지, 나도 들어보진 않아 모르겄네.
어떻게 울든지 간에 그 덩치 큰 나무가 운다구 한 번 생각해봐. 눈보라 비바람 다 맞아가면서 몇 백 년을 살아 온 나무가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우는 모습을. 그러니께 느티나무는 몇 백 년을 그냥 서 있기만 했던 게 아녀. 오랜 세월 모진 풍파를 마을 사람들이랑 같이 견뎌내면서 한 몸 한 맘이 됐던 거지. 그래서 난리가 나기 전에 먼저 알구 울어 동고동락을 같이 한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 준 겨. 그러니 그 나무를 잔가지 하나라도 어떻게 함부로 할 수 있었겄어?
솔모루 마을은 참 복 받은 마을이여. 왜냐하면 이 느티나무 말구도 아주 특별나구 신비한 보물이 또 하나 있으니께 말이여. 그게 뭐냐면 사람들 맘이 혼탁한지 깨끗한지 구분할 수 있는 아주 영험한 샘이여. 그 샘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할게. 암튼 나라에 난리가 나면 신령스러운 나무가 울어 알려주지, 영험한 샘물이 부정한 사람 가까이 못 오게 지켜주지, 솔모루에 사는 사람들은 참 든든했을 겨.




 

●굽이굽이 인생길 노래로 넘어가세 ‘증평 민요’
민요는 노랫말을 만든 사람도 따로 없고, 곡을 만든 사람도 따로 없이, 그저 거친 밥 먹고 거친 일 하며 잡초처럼 사는 민초들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불러 생겨난 노래여.
따로 형식이 있는 것도 아녀. 그냥 그들의 인생살이가 노랫말이 되고 가락이 되는 거지. 자연스럽게 생각이나 감정, 생활이 노래로 배어나와 만들어진 겨. 그래서 민요엔 민초들의 삶의 애환이 그대로 담겨져 있어. 때로는 민초들의 넋두리가 그대로 노래가 되기도 하지. 옛날에 할머니들을 떠올려봐. 혼자 대청마루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서, 지나온 굽이굽이 한 많은 인생을 넋두리 하는 모습을 한번쯤 봤을 겨. 그 길고 긴 넋두리엔 은근한 가락이 붙게 마련이여.
요즘이야 살아가는 모양새가 집집마다 다 다르지만, 옛날엔 여자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부엌에 들어가 밥 하구, 들로 나가 들일도 하구, 남은 시간엔 빨래하구, 틈틈이 베틀에 앉아 베 짜구, 집집마다 사는 모양새가 비슷했어. 그러니 넋두리도 비슷비슷했지. 누군가 입담 좋은 사람이 한 서린 넋두리를 걸쭉하게 가래떡 뽑듯이 한바탕 뽑아내면, 다른 사람들이 ‘맞어 맞어’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었겄지. 네 얘기가 내 얘기고, 옆집 얘기가 우리 집 얘기고, 사는 게 다 비슷비슷했으니 말이여.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서로 동변상련의 정을 느끼기도 했을 거구. 그렇게 청하거니 받거니 하면서 몇 번 듣다보면 노랫말이 익숙해져 따라 부르게 됐을 거구 말이여. 민요란 건 뭐, 그렇게 저렇게 만들어진 겨. 그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노래 부를 때 기분에 따라, 또 노래 부르는 사람의 개성에 따라 조금씩 보태지구 바뀌면서 전해진 거지.
그러니 민요는 민초들의 생활모습이나, 감정이나, 생각 등이 담긴 보물창고나 마찬가지여. 그런데 요즘은 현대 가요에 밀려 점점 사라지구 있어. 전문 소리꾼들한테나 전해지지거나, 아니면 책 속에 생명도 없이 죽은 채로 누워 있든지 그런 신세가 돼버렸어.
그럼 좌구산 자락에서 얘기를 시작해서 삼기천을 따라 얘기가 흘러갔으니께, 이쪽 언저리에서 불렸던 노래 몇 자락 들어 볼 테여?
오늘 찌는 못자리는 뭉치세 뭉치세 / 한 섬지기 못자린데 뭉치세 뭉치세 /  양팔이 감아 돌려 뭉치세 뭉치세 / 세주먹자리로 감아주오 뭉치세 뭉치세 / 새이참이 되기 전에 뭉치세 뭉치세 /  빨리빨리나 묶어주오 뭉치세 뭉치세 / 오늘 해도 중천에 가고 뭉치세 뭉치세 / 못자리판이 다 되어가는데 뭉치세 뭉치세 /  새이그릇은 보이지 않구 뭉치세 뭉치세 / 솥단지가 깨졌나 뭉치세 뭉치세 /  새이그릇은 보이지 않네 뭉치세 뭉치세 <모찌는 소리>.
나물을 뜯으면서도 입에서는 노래가 절로 나왔지. 
뚝뚝뜯어 꽃다지 쏙쏙뽑아 나생이 / 질로가면 질갱이 대로가면 대사리 / 골로가면 고사리 오용조용 물래쟁이 <나물 뜯는 노래>.
내 얘기는 여기서 끝이여. 내 얘기는 여기서 끝이 났지만, 원래 얘기란 건 끝이라는 게 없는 겨. 아직도 천지사방에 묻혀 있는 얘기들이 많고, 또 지금 이 시간에도 얘기는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거니께 말이여.

●길섶에 숨은 이야기 도란도란…‘스토리텔링’ 한창
이처럼 최근 여행의 트렌드는 ‘이야기’다. 역사와 전설, 문화 등 이야기를 찾아 여행지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뜻.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한 마케팅과 관련된 상품을 기획·홍보하는 작업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수박 겉핥기식 여행에서 속을 맛보는 여행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최근 개별·자유여행객 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그들은 단기간에 최대한 많은 지역을 다니며 사진을 찍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며 “같은 기간이라도 여행지에서 많은 것을 보고 체험하며 느끼고 싶어 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청주와 청원, 증평을 잇는 ‘세종대왕 힐링로드 100리길’도 역사와 문화, 삶이 녹아든 스토리텔링으로 다시 태어난다.
청주시문화재단은 힐링로드의 역사문화를 재조명하는 스토리텔링을 추진하고 있다. 권역 별로 문인과 화가, 사진작가 등이 1팀이 돼 글과 그림, 사진을 한데 엮어 책을 펴내는 것이다.
상당산성권은 연규상(소설가·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강호생(수묵담채화가)·송봉화(사진작가)씨가, 초정약수권은 연지민(수필가)·손순옥(화가)·문상욱(사진작가)씨가, 증평 율리권은 오미경(동화작가)·손부남(화가)·정광의(사진작가)씨가 맡고 있다.
길을 찾는 관광객들은 이 같은 스토리텔링 북을 활용해 손쉽게 힐링로드길에 숨어있는 일상을 만날 수 있게 된다. 또 구전으로만 전해져 내려온 독특하고 재미난 지역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어 여행자들에게 색다른 경험과 이야깃거리도 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단은 또 청주만의 차별화된 문화원형을 찾기 위한 학술연구사업도 벌인다.
고려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청주, 청원, 증평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대표 문인, 민족운동가, 학자 등을 조사 연구하고, 이들 지역의 주요 성씨를 조사 연구하는 등의 뿌리를 찾는 사업이다.
이 밖에 세종대왕의 행궁 발자취도 찾아 나서고 있다. 세종대왕이 1444년 2차례에 걸쳐 초정에 행궁을 짓고 117일간 머물면서 다양한 정책을 펼친 내용 등을 관련 자료조사를 통해 찾아낼 예정이다.
힐링로드 100리길 내 특히 세종대왕이 행궁생활 중 즐겨 먹었던 음식을 찾아내는 음식문화도 발굴한다. 세종대왕 밥상, 세종대왕 비빔밥 등을 상품화하는 등 대표음식으로 발전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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