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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없앤 청주 읍성 100년만에 옛 모습 되찾는다
일제가 없앤 청주 읍성 100년만에 옛 모습 되찾는다
  • 동양일보
  • 승인 2013.11.2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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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읍성 복원 현장을 찾아

일제강점기 때 훼손된 청주읍성이 100여년 만에 옛 모습을 되찾는다.
청주시가 청주의 역사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일제가 헐어 없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읍성에 대한 일부 복원에 나섰다.
24일 현재 성벽 쌓기와 여장(성벽 위에 덧쌓은 낮은 담) 쌓기를 완료하는 등 9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다음 달 초 인도포장과 주변정비, 경관조명 설치를 거쳐 중순께 모든 공사가 마무리된다.


●청주 읍성은
청주읍성 옛 서벽 35m 구간중 원래 위치인 청주중앙공원 서쪽에 높이 3.6m, 폭 4.6m의 원형으로 청주읍성이 복원된다. 청주시가 일제의 훼손으로 청주 곳곳에 흩어진 성돌 모으기 운동을 펼쳐 800여개의 성돌을 찾았으며, 이 가운데 650개가 복원에 활용됐다. 청주읍성은 다음달 중순께 모든 공사가 마무리돼 100년만에 일부구간 옛모습을 복원하게된다.                         <사진/ 임동빈>청주읍성은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북문로, 서문동 일대에 있는 석성이다. 청주 일대 지방 군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행정의 기능을 담당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 689년에 청주 지역에 ‘서원경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고려시대에 이곳이 청주의 중심 지역이었음을 보여주는 ‘용두사지 철당간’으로 미뤄 고려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와 조선의 각종 기록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청주읍성은 신라시대에 처음 축조된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에 몇 차례 중건된 것으로 중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곽은 고려시대에 홍수로 훼손된 것을 1487년(조선 성종 18년)에 석축으로 고쳐 쌓은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둘레가 3648척, 높이 8척으로 기록돼 있고, ‘성종실록(成宗實錄)’에는 둘레 5443척, 높이 13척으로 기록돼 있다. 이 같은 차이는 문입구 부분의 포함여부에 따른 차이로 대략 둘레 1640m, 높이 4m 정도로 추정된다.
읍성 안에는 조선시대 충청도에 속한 청주목의 관아와 병영, 객사, 공방, 창고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1년 도시정비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일제에 의해 4년에 걸쳐 파괴되고 사방 4개 성문과 성벽 터는 현재 차도와 인도로 쓰이고 있다.
청주읍성은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점령당하는 시련이 있었고, 의병군이 왜군을 탈환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청주시는 허물어진지 100년 만에 성돌찾기 운동을 펼쳐 800여개의 성돌을 모아 일부 구간이지만 청주읍성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성돌 무더기 발견
청주문화원과 문화사랑모임, 서원향토문화연구회, 충북문화유산연구회 등 4개 단체는 지난 3월 7일 ‘청주읍성 성돌 모으기 추진본부 발대식’을 갖고 청주읍성 복원을 위한 성돌 찾기 운동에 들어갔다.
이들은 100여년 전 해체된 청주읍성의 성돌이 주변 하수구 축대나 민가 건물축대, 정원석, 무심천 둑 조성 등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성돌 모으기 운동을 펼쳤다.
앞서 2011년부터 서문(청추문) 자리 등 3개 지점에서 36개, 옛 남궁병원 터 문화유적 시굴조사 현장에서 40여개 등 120여개가 발견됐다.
이 돌에는 ‘丙辰四月日 畢役(병진사월일 필역)’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병진년 사월에 공사를 마쳤다는 뜻이다.
발굴조사를 한 충북문화재연구원은 축성 기법상 조선후기 영조~순조 때 성돌로 추정했다.
그러나 순조 때는 병진년이 없어 영조(1736년)이나 정조(1796년) 때 쓰인 것으로 판단된다.
라경준 시 학예연구사는 “‘병진사월’이 적힌 성돌은 일종의 주춧돌인데 이는 큰 공사 때 놓는다”며 “따라서 ‘병진사월’은 천년의 위용을 뽐낸 청주읍성의 공사가 마무리된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국립청주박물관이 보관 중인 이 돌은 2개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일제가 청주읍성을 헐어 성돌로 하수구를 만들었다는 역사적 사실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자 청주읍성의 마지막 공사시기를 가리킨다.
일제가 1911년 도시정비사업을 이유로 청주읍성 철거를 자행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성을 남겨두고 개발해도 됐으나 훼손을 선택한 것은 우리의 역사적 산물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일각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조헌 등 의병과 관군, 승군이 왜군이 점령한 청주읍성을 되찾은 것을 두고 임진왜란 첫 읍성(도시) 탈환 전투로 기록된 것에 대한 보복 아니냐는 견해도 내 놓고 있다. 
일제는 당시 성돌로 하수구 축대를 쌓고 오늘날의 성안길을 만들었다. 공사시기가 적힌 중요한 성돌이 땅위가 아니라 땅속에 묻혀 있었던 것은 일제의 만행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성돌 찾기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첫 기증 사례가 나왔다.
지난 4월 25일 충북신재생에너지산업협회 부설 한국산업연수원이 2개의 성돌을 기증하면서 복원의 서막을 알렸다.
이 돌은 상당구 영동의 한국산업연수원 교육연구시설 증축 공사 과정에서 발견됐다.
성돌 모으기 운동본부는 1개월 동안 일제 조사를 벌여 시내 곳곳에서 200여개의 성돌을 확인했다.
1906~1932년 건립된 일신여고 내 ‘탑동양관’은 읍성 성돌을 기초석으로 쓴 것으로 확인됐으며, 상당구 남주동 한 민가에서도 성돌이 나왔다.
지난 7월 4일 우암산 삼일공원 인근에서 성돌 65개가 발견됐다.
우암산 순환도로에 오르는 계단과 주변 축대에 사용되고 있는 것을 장현석 전 청주문화원장이 발견, ‘청주읍성 성돌모으기 운동본부’에 제보한 것이다.
한쪽 면은 잘 다듬어진 벽돌 모양이고, 성벽 안쪽으로 들어가는 부분은 치아 모양(견치석)을 띄는 등 전형적인 성돌 형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운동본부는 이들 돌이 일제강점기 때 신사 건축자재로 활용됐다가 광복 이후 신사가 철거되면서 주변에 남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월 27일 청주읍성 성돌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상당구 수동의 대한불교수도원에서 성돌 539개를 찾았다. 성돌은 수도원 측이 1960년대 무심천 둑 조성 공사 과정에서 나온 것을 가져와 계단 등 용도로 활용한 것이다.
수도원 측은 청주읍성 복원 사업에 쓰라며 성돌을 흔쾌히 시에 기증했다.
이에 따라 시가 확보한 성돌은 650여개로 늘어났다.
●복원 공사 착공
일제가 헐어 없앤 청주읍성 복원사업이 지난 9월 7일 중앙공원 서쪽 출입구에서 축제 속에 시작됐다.
시는 전체 사업비 8억3200만원(발굴 2억원, 성벽 복원 6억3200만원)을 투입해 청주읍성 발굴 및 성벽 복원 사업을 착수했다.
지난 3월부터 오는 12월까지 청주읍성 동북·서북·서남 모서리 150m 발굴 작업을 비롯해 옛 서벽 35m 구간을 원래 위치에 높이 3.6m, 폭 4.6m의 원형으로 복원하는 사업이다.
시내 한 복판에 읍성 터가 있어 전체 복원은 사실상 어렵다. 시는 일단 성벽 일부 복원으로 청주의 정체성을 회복한 뒤 사대문의 하나를 복원하는 방안을 장기 과제로 추진할 계획이다.
청주 곳곳에 흩어진 성돌 모으기 운동을 펼쳐 800여개의 성돌을 찾았으며, 이 가운데 650개가 복원에 활용된다.
지난 9월 7일 열린 착공행사는 사물놀이, 달고질(터 다지기), 성돌쌓기 등 순으로 진행됐다. 성안길 일대에서는 이 사업과 청주성 탈환 421주년을 기념하는 청주읍성 큰잔치가 열렸다.
이날 시민 3000여명은 상당공원~도청사거리~남궁병원사거리~YMCA
~성안길 입구 등 읍성의 발자취를 따라 1.7km 구간을 걸었다.
또 서문 오거리에서는 1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청주성 탈환 재현 행사가 펼쳐졌다.
임진왜란 당시 조헌 등 의병과 관군, 승군이 왜군이 점령한 청주읍성을 되찾은 것이 임진왜란 당시 첫 내륙전투 승리(읍성 단위 이상)로 기록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장돌뱅이 행진과 토요예술난장, 달빛여행, 1968 성안길 전시모형 특별전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도 선보였다.
청주읍성 큰잔치는 청주읍성 및 청주성 탈환 등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9월 열리고 있다.
●내달 중순 완성
청주읍성 성벽 복원 공사가 순조롭게 이뤄져 다음 달 중순 마무리를 하고 일반에 공개된다.
지난 20일 현재 읍성 기초 보강 공사를 거쳐 성벽 쌓기까지 마쳤다.
지표 아래는 새로 구한 돌(화강암)을 사용해 5단으로 축성했고, 지표 위에 축성한 성돌은 시민의 성원 속에 모아진 성돌을 사용해 쌓았다.
청주시는 성벽 축조를 위해 2011년 옛 남궁병원 터에서 발굴한 성돌과 대한불교수도원 기증 성돌, 3.1공원 옆 산책로 성돌 등 650여개의 성돌을 읍성 복원 현장으로 옮겼다.
현재 9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으며 오는 29일까지 여장(성벽 위에 덧쌓은 낮은 담)쌓기를 한다.
이어 인도 포장과 주변정비, 경관 조명 설치 등 마무리 공사를 거쳐 다음 달 중순 완성될 예정이다.
나기수 청주시 문화관광과장은 “청주읍성 성벽 복원을 큰 문제없이 예정대로 진행해 9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며 “12월 중순이면 복원한 성벽을 시민이 관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진일지

2013. 1.18 : 발굴기관 선정(충북도문화재연구원)
2013. 2.28 : 매장문화재 발굴허가 완료(문화재청)
2013. 3.15 : 발굴 계약 및 착수
2013. 3.21 : 청주읍성 성돌 모으기 선포식 개최
2013. 3.27 : 청주읍성 발굴성과 및 성벽복원학술회의 개최
2013. 4.25 : 청주읍성 성돌 기증식 개최
2013. 5.29 : 청주읍성 성벽복원실시설계 계약(현석종합건축사)
2013. 5.31 : 청주읍성 성벽복원 실시설계 착공
2013. 6.21 : 3.1공원 근처 성동 65개 확인
2013. 6.26 : 성벽 발굴조사 완료(서남쪽 읍성 성벽 기초석 확인)
2013. 7.21 : 대한불교수도원 소장 성돌 539개 확인
2013. 7.22 : 대한불교수도원 소장 성돌 기증 요청 공문 발송
2013. 8.5 : 성벽 복원 실시설계 납품
2013. 8.21 : 성벽 복원 공사 시공업체 선정(찬중종합건설)
2013. 8.26 : 대한불교수도원 성돌 539개 기증
2013. 8.30 : 성벽 복원 공사 착공
2013. 9.7 : 청주읍성 복원 착공식
2013. 11.20 : 공정 90%(성벽 쌓기 완료)
2013. 11.29 : 여장(성벽 위에 덧쌓은 낮은 담) 쌓기
2013. 12월 상순 : 인도 포장 및 주변정비, 경관조명 설치
2013. 12월 중순 :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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