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총 한국예술문화명인 인증
단학 극복… 무대미술계의 거장으로 성장
최고의 무대, 후학양성 힘쓸 계획
사람의 손은 나무의 나이테와 같다. 나무를 가로로 잘랐을 때 동심원 모양의 테를 통해 나무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손은 그 모양을 통해 지난 세월을, 현재의 모습을 모두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예총)에서 지난달 27일 한국예술문화명인 인증을 받은 무대미술가 민병구(47·청원군 내수읍 입동리 150-62·☏010-9566-2253) 중부무대미술연구소 대표의 손은 온통 페인트 투성이다. 못이 찔리고 나무에 긁혀 상처도 많다.
민 대표의 진가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가 청하는 악수에 선뜻 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손은 언제나 작업 현장에 있다. 연극은 물론 무용과 뮤지컬, 악극 등 무대 공연의 배경막부터 작은 소품 하나하나까지 직접 그리고 만들 수 있어 한 공간에서 완벽한 무대가 완성되는 마술 같은 일이 벌어지지만, 덕분에 재주 많은 손은 쉴 틈이 없다.
한국예총에서 예술문화 명인들의 새로운 평가와 동기부여를 위해 명인 자격을 부여하는 2회 한국예술문화명인 무대예술 부문에 민씨가 선정됐다.
한국화가이기도 한 민 대표는 1989년 극단 새벽의 연극 ‘오셀로’ 무대제작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연극과 무용, 오페라, 방송 등 1600여회에 걸쳐 무대제작을 한 점이 높이 평가 받았다.
“앞으로 무대미술가로서 이뤄야 할 것이 많은데 명인 인증을 받아 기쁘기도 하지만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제가 만든 무대를 통해 연극과 무용 등의 공연이 관객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더욱 완벽한 무대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무대 제작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한 해 평균 140여개의 무대를 만드는 이름난 무대미술가로 성장하기까지 신뢰와 부지런함, 꼼꼼한 실력으로 견뎌온 그의 20년은 길고 외로운 시간이었다. 지금은 대학 강의까지 나갈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고졸이라는 학력은 그에게 늘 걸림돌이었다. 한국화가로, 무대미술가로 그림과 무대가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전문예술가로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 견뎌야 했다.
“대학에서 그림과 공연에 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이유로 작품 자체에 관해 평가받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돌이켜보면 밤샘 작업해야 하는 몸의 고단함보다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이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명약은 쓰다고 했던가. 세상의 인정을 받기까지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오랜 시간 힘들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일에 열중했다. 그림과 서예는 물론이고 목공과 주물 등 무대미술을 위해 필요한 모든 기술을 다 배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손으로 완벽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단학이 늘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 때문에 실력을 키우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며칠 밤을 지세며 무대를 제작하고 전국을 누비며 무대를 세우면서 느꼈던 보람과 기쁨을 후배들도 느낄 수 있도록 후학 양성에도 애쓰겠습니다.”
1967년 청주에서 출생한 그는 조치원고(현 세종고)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본격적으로 무대미술가로 활동했다. 서울미술제특별상과 대전전국연극제·광주전국연극제 무대미술상, 충북연극제 특별상, 충북우수예술인상, 청주예총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충북예총 기획위원, 청주문화원 운영위원, 한국무대미술가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사진·김재옥
동양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