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는 30일부터 권희돈 청주대 명예교수(문학테라피스트)의 칼럼 ‘문학을 통한 치유와 소통’을 연재한다. 이 분야에서 독보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권 교수는 독자들에게 문학을 통해 정신적인 상처를 극복하고 마음을 치유해 근원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편집자>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이다. 희망이 없으면 생로병사의 고통스런 과정을 견딜 수 없다. 희망을 잃으면 영혼이 시들고, 영혼이 시들면 죽는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뜻을 거역하고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신들의 신 제우스는 그 죄가로 인간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마음 먹었다. 얼마 후 에피메테우스(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의 부인 판도라에게 상자 하나가 배달된다. 발신인은 제우스였으며, 상자 맨 위에는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경고가 붙어 있다. 그 경고 문구를 보자 허영심과 교활함이 가득한 판도라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상자 뚜껑을 살짝 열어 본다. 상자 속에서 질병, 분노, 증오, 질투, 시기, 고통, 가난, 굶주림, 노화 등 인간이 겪게 될 온갖 재앙이 쏟아져 나온다. 판도라는 겁에 질려 상자 뚜껑을 닫는다. 이미 재앙들은 인간 사이로 퍼져나갔다. 그런데 상자 속에서 무언가 소리친다. “너 누구야?” 판도라가 묻는다. “저 희망이예요.” 판도라는 희망이 나오지 못하도록 상자 뚜껑을 꼭꼭 묶어 놓는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온갖 재앙에 시달리면서도 희망만은 고이고이 간직하며 살게 되었다. (이 내용은 여러 이본을 참고하여 다시 각색한 것임.)

사람에게 있어서 희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판도라 상자 이야기는 감동적으로 들려준다. 프로메테우스 같은 영리한 인간의 교만, 에피메테우스처럼 무지몽매한 인간의 어리석음, 판도라처럼 교활한 인간의 허영심을 경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재앙 가운데 슬몃 희망을 끼워놓는 자비를 베푼다.

이를 두고 김현승 시인은 ‘우리에게 한 번 주어버린 것을/오오, 우리의 신(神)도 뉘우치고 있을/너와 나의 희망!/우리의 희망!(시 ‘희망’ 중)’이라며 두 개의 느낌표로 시의 끝을 맺는다.

사람이 사는 이야기는 <노인과 바다>(헤밍웨이)의 이야기같이 험난하다. 샌디에고 노인은 상어떼 이글거리는 바다 한 가운데서 큰 물고기와 싸운다.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운 끝에 승리하지만, 죽은 물고기를 지키기 위하여 다시 싸워야 한다. 상어 떼와 사투를 벌이면서 노인이 중얼거린다.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

샌디에고 노인이 죽은 물고기를 끌고 부두에 다다랐다. 물고기의 살점은 모두 상어 떼에게 뜯겼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물고기를 보면서 노인은 또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실패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기에 노인은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

 

약력

△1946년 충남 아산 출생. △청주대 국어국문과 교수, 충북민예총 지회장, 한국문예비평학회 부회장 역임. △한국국어교육학회 명예회장. △저서 ‘소설의 빈자리 채워 읽기’, ‘한국현대소설 속의 독자체험’, 시집 ‘하늘눈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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