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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 포석 조명희를 찾아서<13>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 포석 조명희를 찾아서<13>
  • 김명기 기자
  • 승인 2015.01.04 2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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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는 우리 가족사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 답사단이 하바로프스크 중국음식점 ‘공부’에서 이장호(왼쪽서 두번째) 하바로프스크 한인회장과 저녁만찬을 갖고 있다. 러시아 진출 한인 초창기 멤버였던 이 회장은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입는 등 위기도 있었지만, 한국인의 꿋꿋한 생존력으로 버텨내 이젠 사업이 괜찮은 편이라고 한다. 이 회장은 답사단이 하바로프스크에 머무는 동안 많은 도움을 주었다.

 

(동양일보 김명기 기자) 여행이란 것이 사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 그것은 마치 사람마다 다른 마음처럼, ‘길 위에 선 자’가 느낄 ‘그 길’이 모두에게 같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을 한가지 공통분모는 ‘낯선 세상과의 만남’이다.

그 ‘낯선 세상’은 떠나는 길 위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여행지가 될 수도 있고, 떠나는 길 위에 같이 서 있는 동행인이 될 수도 있고, 떠나는 길 위에 서 있는 스스로일 수도 있다. 낯선 세상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들과 만나며 과거를 반추하고 현재를 되짚으며 미래를 꿈꾸곤 한다.

그런 까닭에 떠남의 공간에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빠듯한 일정에 쫓겨, 덧씌워진 책무에 쫓겨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일이다. 한국을 떠날 때 9박 10일간의 러시아 답사일정을 ‘일’로 규정한 것은 필자에게 맡겨진 책무들이 잡다하게 여기저기 널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떠남의 공간을 일로 규정하는 것과 여행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 출발부터 결과까지 다르다. 그런데 이번 답사길은 일과 여행의 중간 정도로 여길 수 있을만큼 생각보다 여유로웠다. 그 여유로움은 ‘스스로 일이랑 스스로 하자’로 똘똘 뭉친 연세 드신 단원들의 ‘자립심’ 때문이었고, 동영상 촬영장비 삼각대를 도맡아 챙겨주고 필자의 일을 알아서 나누어 맡아주던 젊은 단원들의 배려 덕분이었다.

 

허투루 돈을 쓰면 안 된다는 조 단장의 말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일부 단원들이 ‘작은 반란’을 일으켰다.

“단장님, 오늘 점심 한 끼 만큼은 호사 한 번 누려보는 게 어때요? 구리 료헤이 ‘우동 한 그릇’의 기쁨을 마음껏 누려보고 싶습니다.”

“만인이 원한다면야… 그렇게 하든가. 오늘 한 번 호사 누려 봅시다. 매년 셋이 먹던 우동 한 그릇을 인생에서 가장 사치스런 계획인 세 그릇으로 14년만에 시켰던 시로도, 쥰 형제 모자처럼.”

오랜만에 답사단은 먹고 싶었던 한식을 마음껏 시켜 먹었다. 1인당 2만원 내외 한 끼가 무어 그리 큰 호사라 여기느냐 할 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검소하게’ 식사했던 답사단에게 그 한 끼는 ‘북해정’에서 우동 세 그릇을 시켜먹은 시로도 형제처럼 충분히 사치스런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조성화 열린기획 대표가 하바로프스크 한인회 회장을 찾아보았다.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에서의 답사 일정은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서 일정부분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그나마 수월했는데, 하바로프스크에서는 미리 연결해 놓은 인맥이 없었다.

이곳의 한인회장이 이장호씨라는 답변이 나왔다. 한인회에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일정으로 답사단이 하바로프스크에 왔으며, 하바로프스크에서 조명희 선생과 관련된 정보를 얻을 만한 사람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일단 자신이 답사단이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멀리서 오신 손님을 전화로만 응대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호텔로 찾아온 이장호 회장의 인상은 날이 약간 선 얼굴에 강해 보였다. 나이는 쉰 일곱, 경상도 출신.

그는 답사단에 본론부터 이야기했다.

“저는 죄송스럽게도 조명희 선생님에 대해 잘 알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바로프스크 한인회장으로서 여러분의 답사일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지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하바로프스크를 찾아주신 답사단을 위해 만찬을 마련하겠습니다.”

답사단은 박수로 고마움을 표한 뒤, 저녁 만찬은 우리 쪽에서 지불하는 것으로 하겠다고 했다. 서로 내겠다는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답사단이 내는 것으로 결론냈다.

만찬장은 중국음식점인 ‘공부(孔府)’였다.

먼저 조 블라디미르와 조철호 단장, 김왕규씨 부부 등 나이 드신 분들부터 차량에 태워 보내고, 젊은 단원들이 뒷차를 탔다.

뒷차량으로 뒤따라간 일행이 공부에 도착한 지 30분이 넘도록 앞선 차량에 탑승했던 분들이 오지 않았다. 전화 연결도 안 됐다.

이 한인회장이 앞 차량의 회사에 전화를 해서 그 차량의 운전자 휴대폰 번호를 입수한 뒤 전화연결을 다시 시도했다.

그쪽 대답이 “벌써부터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곳엔 분명 앞선 일행이 없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이 회장과 그쪽 차량 운전기사가 서로 통화를 주고 받더니 엇갈린 이유가 밝혀졌다. 하바로프스크엔 중국음식점 ‘공부’ 체인점이 두 곳 있는데, 앞 차량이 엉뚱한 곳으로 일행을 데려간 것이었다. 느긋하게 전혀 엉뚱한 곳에서 서로를 기다리던 일행이 합류하고 저녁 8시 30분 쯤 되어 만찬이 시작됐다.

만찬의 시작에서 조 블라디미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여기 계신 분들(답사단원)은 제 아버님의 길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제 아버님의 삶의 흔적을 찾아 이 도시까지 왔습니다. 이 도시는 제 아버님이 몇 년 동안 사신 곳입니다. 그리고 비극적으로 이 도시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잘은 모르지만, 아버님은 이곳 고려사범에서 가르쳤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스탈린의 소수민족 탄압 정책에 의해 아버님은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저도 이곳 하바로프스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곧바로 우리 가족의 큰 비극이 전개됐는데, 이 곳은 아버님의 마지막이 된 곳이기도 하고, 저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우리 전통에 따라 아버님을 추도하는 뜻으로 건배 제의를 하겠습니다. 포석 조명희를 위하여!”

 

▲ 하바로프스크에 있는 KGB 옛 건물. 포석 조명희 선생은 이곳으로 잡혀들어온 뒤 이 곳에서 사망했다. 포석의 수인 번호가 있는 명함판 사진도 유족들이 이곳에서 발견한 것이다.

블라디미르의 통역을 한 김 교수가 구 소련 백과사전에 조명희 선생의 이름이 나와있다고 말하자, 조 단장이 연변에서 중국 전역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석 청소년문학상을 시상하고 있는데 올해로 13회째를 맞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교수가 포석에 대해 첨언했다.

“고려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인물이 조명희입니다. 동판 만들고 명명식 갖고, 후손들 전부 초청하고 참석해 국립문학박물관에 ‘조명희실’을 마련했습니다. 동양작가로는 유일한 인물이죠. 동양인으로는 또 유일하게 포석은 소련작가연맹원으로 활동하신 분이기도 하고요.”

이장호(57) 하바로프스크 한인회장은 러시아 비즈니스의 초창기 멤버라고 한다.

사업도 괜찮았고 쏠쏠한 재미도 봤는데, 투자금 50억원 날리는 큰 위기도 있었다고 한다. 이젠 모든 사업이 순리대로 흘러간다고 한다. 욕심을 덜어내니 덜어낸 그만큼 삶이 더욱 여유로워지더라는 것이다.

“하바로프스크 한인 회장으로서 여러분의 말씀을 듣고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이곳 한인회장을 맡으면서도 조명희 선생님 같이 훌륭하신 분을 받들어 모시지 못한 점 사죄드립니다. 사실 저는 오늘 여러분들로부터 조명희의 함자를 두번째 듣게 됐습니다. 강남대 김필영 교수로부터 지난해 조명희 선생 관련 작품을 구할 수 있겠느냐는 문의가 왔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처음 선생님의 함자를 듣게 됐고요, 여기저기 도서관과 헌책방 등을 다녀봤지만 조명희 선생 관련 책자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더 많이 찾아봐야 됐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포석 선생에 대한 정보도 많지 않았고, 저는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가 아닌, 사업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들로부터 두번째로 조명희 선생님의 함자를 듣게 되자, 이게 저에겐 무슨 숙명이지 싶은 그런 마음까지 자못 비장하게 들게됩니다. 이제부터라도 저는 선언합니다. 조명희 선생과 관련된 무엇이라도 큰 관심을 갖고, 제 레이더에 포착되는 것이 있으면 여러분들께 제공하겠습니다.”

답사단은 큰 박수로 이 회장의 말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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