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검찰공무원 1호·여성법무사 1호’… 법과 함께 평생을 현역으로 살 터

 

류난순씨는…

 △1931년 충북 청주 출생 △청주여중-청주여고 졸(8회, 1951) △검찰공무원시험 합격(1953.2) △검찰공무원(1953.2.26~1979) △법무사사무소개소(1980) △민주평통자문위원(전) △충북유권자연맹회원(전) △한국여성법무사회 VIP상 수상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 1232 법무사 류난순 사무소 ☏ 043-213-5958. 213-5959

 오는 25일은 47회 ‘법의 날’이다.

우리나라 ‘법의 날’은 1964년 제정되었으며, 1963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법의 지배를 통한 세계평화대회’의 ‘법의 날’ 제정 권고를 받아들여 세계 여러 나라의 관례를 따라 5월1일을 ‘법의 날’로 정하였다. 2003년 이 ‘법의 날’은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사법제도를 도입하는 계기가 된 재판소구성법이 시행된 날인 4월25일로 변경되었다.

“권력의 횡포와 폭력의 지배를 배제하고 기본인권을 옹호하며 공공복지를 증진시키는, ‘법치’가 확립된 사회를 위하여, 그리고 국민에게 법의 존엄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된 ‘법의 날’의 의미는 사회가 세분화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는 요즘 사회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법의 날’을 앞두고 국내 최고령 여성법무사로 60년 가까운 세월을 ‘법’과 함께 살아온 법무사 류난순 소장(80·청주시 상당구 율량동 류난순 법무사사무소 소장, ☏213-5959)을 만났다. 자신을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사는 소외된 사람”이라며 인터뷰를 고사하던 류 소장을 설득 끝에 사무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요즘 바쁘신가 봅니다.

 “아, 나무를 좀 심느라고요. 땅이 조금 있는데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서 조경수를 좀 심고 있어요. 시간만 나면 달려가지요.”

 -80세 맞으시나요? 현역으로 일하신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올해로 58년째인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53년 2월 시험을 봐서 검찰공무원으로 들어갔지요. 79년 퇴직하고 80년 법무사 사무실을 열었으니 법무사 생활만 그새 30년이네요. 징그러워. 젊은이들이 보면 징그럽다고 할 거예요.”

 -원래 퇴직이나 은퇴라는 말은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생겨난 말이라고 합니다. 건강만 따라주면 생을 마칠 때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게 인간의 생리현상에 맞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전문직으로 이 연세에 현역에 계신다니 대단하십니다. 여성 법무사 1호, 그리고 전국 최고령 여성법무사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셈이지요. 법무사만 처음이 아니라 검찰공무원도 여성으로서는 처음일겁니다. 고등학교 졸업후 검찰 사무직시험을 봤지요. 합격통보를 받고 53년 2월 6일 검찰엘 갔더니 나를 포함해 2명의 여성이 합격을 했더라고요. 사무직 여성으로는 처음이었지요. 79년 검찰공무원직을 퇴직하고 법무사를 시작할 때도 여성은 전국적으로 2~3명 밖엔 없었어요. 지금은 300명 가까운 여성법무사가 있습니다만.”

 -여성검찰공무원 1호, 여성법무사 1호로 남이 안간 길을 가셨잖아요. 처음 길을 내는 입장에서 힘든 일도 많았을텐데요.

  “힘들다는 생각도 할 겨를이 없이 바쁘게 살아서 잘 모르겠어요. 나는 혼란기에 학교를 다녔습니다. 45년 해방이 되던 해 중학교에 입학을 해서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6.25가 터졌어요. 그래서 졸업식도 미뤄져서 51년 10월에 했지요. 나름대로 공부도 열심히 해서 여고졸업식에서는 지사상을 받기도 했어요. 검찰직 근무 때도 그랬지만 법무사라는 직업이 여성이라는 의식을 특별히 가질 필요가 없다보니 처음이라는 생각도 별로 없었어요.”

 -남들이 일을 정리할 시기인 50세에 법무사 사무소를 시작하셨는데요.

  “지금은 법무사 자격시험이 별도로 생겼지만 예전엔 법원 검찰 출신들이 퇴직할 때 자격증을 줬어요. 이런저런 생각할 틈도 없이 당연히 일해야 하는 걸로 알고 바로 개업을 했지요. 나는 그래요. 놀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평생을 법과 함께 사셨는데 ‘법’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법은 우리 사회의 의식과 행동의 기준입니다. 법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원칙에 맞게 살고 있는가를 측정하는 기본이지요. 사람들은 ‘법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길 바라지만 세상은 법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한번 보세요. 별 사람들 다 있잖아요. 인간이 동물만도 못한 사람도 많잖아요. 그런 나쁜 사람들을 법으로 규제하지 않으면 선량한 사람들이 다치거나 손해를 봐요. 법은 바르게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잘못된 생활을 규제하기위해 만들어진 것이지요. 크게 나눈다면 ‘형법’은 무엇이 범죄이고 그 범죄에 대해 어떠한 벌을 줄 것인가를 규정하는 법률이고, ‘민법’은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할 일에 대한 사법적인 규제를 말하는 것이지요.”

 -법무사가 하는 일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사법서사라고 했지요. 그러다가 1990년 법이 바뀌면서 법무사로 개칭되었어요. 법무사는 법원 검찰청에 제출하는 서류나 등기 기타 등록신청에 필요한 서류 등기·공탁사건의 신청대리 등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충북에서 활동하는 법무사는 얼마나 되나요?

  “충북에서 현재 활동하는 법무사는 통틀어 140명이고 청주에만 67명의 법무사가 있습니다. 그 중 여성이 청주에 6명, 충주와 진천에 각각 1명씩 해서 8명이 있네요. 충북은 여성법무사가 없는 편이지요. 1992년부터 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주고 있는데 시험이 꽤 어려워요. 요즘 젊은 여성법무사들은 참 똑똑해요. 그래서 그들과 교류도 하고 같이 모여서 법무사회도 가고 하지요. 지난 3월 22일 서울에서 여성법무사회 총회를 했을 때도 갔었어요. 원로라고 자리도 따로 마련해 대우도 해 주고 워크숍 때는 VIP 상도 주더라고요. 그렇지만 나는 교육 때도 빠지지 않아요. 젊은 후배들이랑 똑같이 밤 10시까지 다 참석하고 체육도 같이 하지요. 건강에 이상이 없으니까.”

 -오랫동안 일을 하시다보니 사회적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피부로 느끼실 것 같습니다. 사무실에 올라오면서 보니 현판에 ‘파산 개인회생’이라는 문구도 보이던데요.

  “그렇습니다. 법무사 일도 조금씩 변합니다. 파산이나 개인회생 같은 것들은 80년대는 없던 일이지요. 요즘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예전 사람들은 못살았지만 빚을 지는 것을 두려워했어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쉽게 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능력은 없으면서 카드를 긁어대요. 지금 중소기업이나 일손이 부족한 곳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일은 하지않고 힘든 데는 안가고 돈은 필요하다보니 카드빚을 지는 것이지요. 파산 신청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딱한 사람들도 있지만 잘못된 생각으로 카드빚을 진 젊은이들이 많은 것이 안타까워요. 미래를 위해 구제는 해줘야하지만 정신차려야지요.”

 -다양한 의뢰인들과 만나다보니 느끼시는 점이 많으시겠습니다.

  “지금은 나쁜 사람이 많아요.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사기꾼도 많고 성범죄도 많아. 사람도 죽이잖아요. 인간이 원래의 타고난 심성은 그렇지 않아요. 아픈 사람 보면 치료 해주고 싶은 게 본능인데, 지금은 사람이 본심 갖고 살수 없는 세상이 됐어요. 게다가 요새는 모든 것이 컴퓨터화 되면서 사람이 점점 필요없게 돼가고 있어요. 다 기계로 하잖아요. 사람 설 자리가 줄고 있어요. 나는 요즘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요. (그는 젊은 사람들에게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이야기가 나오자 끝이 없었다.) 젊은 사람들은 내 얘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아요. 몇 년전인가 유럽의 어느 총리가 “추우면 내의를 한 벌 더 껴입는다”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오늘 아침 기온이 내려가기에 나는 내의를 입고 나왔어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벌거벗고 다니면서 춥다고 히터를 켜놓고 여름엔 에어컨을 틀어놓고 춥다고 긴팔옷을 입지요. 힘들고 어려운 일은 배우려고도 안 해요. 책임감도 없어요. 우리는 이 나이가 돼도 할 일이 있으면 끝내야 잠을 자는데 지금 사람들은 달라요. 그래서 우리는 못 어울리는 소외된 사람이에요.”

 -법조인으로서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는 덕목 같은 게 있나요?

  “법조인은 사회 병리현상을 다루는 사람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도덕심이지요. 그리고 정직함입니다. 또 어느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아야 하는 균형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관리와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관리와 통제를 어떻게 하시는지요.

  “세상을 순리대로 살면 저절로 됩니다. 열심히 일하고 본연의 마음으로 순화시키며 살면 균형감과 도덕, 정직함이 몸에 배게 돼요. 내가 수곡동 법원을 다닐 적엔 법원이 남들 들판에 있었어요. 나는 내덕동에서부터 걸어다녔어요. 논둑길로 출퇴근을 할 때 벼 이삭이 나 있으면 그것이 떨어질까봐 조심조심 피해 다녔지요. 벼 이삭 하나라도 떨어졌으면 주웠고요. 그런 마음을 요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물론이지요. 자기관리와 통제는 어릴 때부터 길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있는 막내아들에게 갔다가 그 나라의 교육방법을 보고 크게 깨달은게 있어요. 지금은 9학년인 손자가 4살때인가 유치원으로 손자를 보러 간 일이 있어요. 수업이 끝나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나오는데 손자만 안나오는 거예요. 한 시간이 돼도 이놈이 안 나와요. 그래서 창문으로 들여다보니까 4살짜리가 저 혼자서 뭔가를 하고 있어요. 알고 보니 물을 엎지른 거예요. 그런데 고 작은 놈이 혼자서 대걸레를 들고 이리 닦고 저리 닦고 하고 있더라고요. 그럴 때 한국 같으면 에미들이 달려 들어가 닦아주고 데리고 나올텐데 미국은 그게 안되는 거예요. 아무리 유치원생이라도 제가 저지른 것은 제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지요. 스스로 해결을 해야 데리고 나올 수 있어요. 그들의 교육방법에 감동했어요. 그렇게 자라면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사회적인 균형감을 갖게 되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며느리가 한국계 미국인인데 교육방법이 달라요. 어릴 때는 공부를 안 시켜요. 대신 말하는 법과 행동 등 품격부터 가르쳐요. 지금 그 녀석이 다니는 학교는 200년 역사를 지닌 영재학교인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공부를 시키고 숙제를 많이 내면서도 정작 학점은 50%밖에 안준다는 거예요. 봉사도 해야 되고 운동도 해야 되고 리더십도 길러야하고 말하자면 공부벌레가 아닌 인간을 키우는 것이지요. 질서 의식은 인격이 형성되기 전인 유치원 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선진 후진은 경제를 가지고 말 하는 게 아니에요. 문화와 도덕으로 평가해야지요. 인간이 기본을 알아야지요. 지금 우리나라처럼 생각할 것도 가르치지 않고 학력만 강조한다면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어요.”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생각하면서 살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실력으로 승부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혹시 일 중독 아니십니까.

  “일중독 맞아요. 우리 세대는 다 일 중독자예요. 그렇게 안하면 배겨날 수가 없었어요. 군사혁명시절엔 매일 밤 1시까지 야근을 했어요. 친정어머니가 아이들을 봐주셨으니까 가능했지만. 그저 일이 보배고 그게 또 즐겁고 성취감이 있어요. 요즘도 나는 젊은이 일 두 배는 할거예요. 가사 노동도 직접 다 해요. 아침 5시에 눈을 뜨면 1시간 동안 뉴스를 봅니다. 6시에 일어나서 문 열고 청소하고 밥 하고 가사노동을 3시간 정도 해요. 그리고 10시에 출근하지요.”

-가족은.

  “지금은 혼자 지내지요. 금융일을 하던 남편은 2003년에 세상 떴어요. 고인이니까 남편이름은 말하지 않을게요. 아이들도 다 나가서 없고요. 2남1녀인데 큰 딸 하경희(54세)는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나온 부부건축사로, 사위는 서울의 건축회사 사장으로 있어요. 둘째 하경수(50세)는 프랑스에서 서양사를 공부하고 돌아와 지금은 진주교육대 교수예요. 막내 하준호(48세)는 연세대 졸업후 미국으로 건너가 USC에서 컴퓨터 공학박사를 딴 뒤 인텔 본사에서 부장으로 있다가 지금은 사업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얘긴 적지 마세요. 우리 아이들이 아주 싫어해요.”

 -자녀분들이나 손주들을 생각하시면 기분이 좋으시겠습니다.

  “자식들은 나 사는 거 봤으니까 알아서 다 자기 자리들을 찾아갔어요. 손자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지요. 지금 대학생 손자녀석의 등록금을 대주고 있는데 대주면서도 기분이 좋아요.”

 -일 하시다보면 보람 있거나 아쉬운 일도 있으실텐데요.

  “나는 맡은 일은 책임지고 처리해주지 흐지부지 하는 일이 없어요. 손님은 왕이라는 말 있잖아요. 손님 아니면 우리가 존재할 필요가 없어요. 평생 비슷한 일을 하다보니 보람있는 일은 너무 많아서 다 말할 수가 없네요. 그중 고등학교 한 선배의 재산을 지켜준 것이 특별히 기억에 남네요.”

 -법이 계속 바뀌니까 공부도 계속해야겠지요.

  “법은 일부러 공부하지 않아도 일을 하다보면 저절로 알게 돼요. 다만 힘든 것은 사건을 맡은 뒤 그 것을 풀어가는 과정입니다. 과정은 다 힘들어요.”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일 하는 것이지요. 죽어라고 움직이고 일하다가 밤 11시 넘어서 자고, 5시 눈 뜨고 그때부터 몸을 움직여요.”

 -스트레스는.

  “없어요. 일하면 성취감이 생기니까 그럴 일이 없어요. 놀면 스트레스 받아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미국에 있는 막내 손자 대학갈 때까지는 살아야겠지요. 그리고 내 몸이 출근 할 수 있을 때 까지는 계속 일을 할 것입니다.”

 -후회되는 일은.

  “없어요.”

 두 시간 가까이 대담을 나누는 동안 류 소장은 자세 한번 바꾸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임했다. 전국 최고령 현역 여성법무사의 자리가 그냥 있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대담이었다.

 ▶대담·글/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사진/ 임동빈 ▶기록/오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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