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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동 철 충북대 총장
임 동 철 충북대 총장
  • 동양일보
  • 승인 2010.03.08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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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육은‘열매 따먹기’아닌 ‘나무 심고 가꾸는 방법’ 가르쳐야
 

◆임동철 (林東喆)총장은…
△1947년 1월 19일 청원군 옥산면 오산리 540 출생. △청주고(1965)-서울대 국어국문학과(1971)-서울대대학원 국어국문학과(1975) △문학박사(1990·청주대 대학원) △청주사범대(현 서원대)국어국문학과 교수(1977) △충북대 인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1983) △충북대 인문대 교수협의회장(1988)-교무처장(1990)-인문과학연구소장(1993) △중국연변대 겸임교수(2005) △충북대 총장(2006) △충북지역 총학장협의회장(2006)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2006) △거점국립대학교 총장협의회장(2008) △저서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연구’(1997) △공저 ‘국문학사’ 등 4권 △책임 편찬 ‘충북민요집’ 등 △논문 ‘충북민속학의 성과’(1999), ‘충청도 아리랑의 전승 양상’(2004) 등 20여 편. △☏ 043-261-2001

 


 4년 전인 2006년 5월 10일 오후 2시 대학 본부 3층 대강연실. 충북대 8대 총장으로 취임하는 임동철 교수(임문대 국어국문학과)는 A4용지 3매 반 분량의 취임사를 굵은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그 중 “…재임기간 중 꼭 해야 할 두 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하나는 그동안 충북대학교가 계획하고 추진해 온 ‘2010년 동북아 중심대학’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앞선 사업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세계의 유수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충북대학교의 새 기틀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어 충북대의 발전을 위한 4가지 운영방침을 밝혔다. △기초가 튼튼하고 사회 요구에 잘 적응하는 문제해결형 인재양성 △안정된 연구환경 조성 △인재양성에 이바지하는 실질적인 방안 마련 △자립기반 조성을 위한 인적·제도적 네트워크 구축이 그 것이었다. 그 날 이원종 충북지사를 비롯해 많은 기관 단체장들과 역대 총장을 비롯해 교수, 학생대표들과 동문회 임원 등이 지켜 본 신임 총장의 취임식장은 ‘성황’을 이뤘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그의 역량에 새로운 기대를 걸었었다.

 그리고 만 4년이 지났다. 취임식 때 밝힌 그의 소신이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뒀는지를 따지는 일은 학내 구성원들의 몫이다. 그리고 4월 30일까지의 임기만료일을 앞둔 그는 지금 퇴임사를 준비해야할 시점이다.
충북대는 이미 9대 총장을 선출하는 투표를 끝내고, 대통령의 임명절차 만을 남겨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임 총장은 이제 서서히 ‘역대 총장’의 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지만, 성급한 만남으로 마주한 그는 다행스럽게도 언제나처럼 직함에 연연하지 않는 ‘씩씩함’과 탈속한 여유로 무장된 ‘소탈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3월 첫 주말인데  시간을 빼앗아서.
“마찬가지지요. 시간이 서로 엇 맞아서 모두가 쉬는 토요일에 뵙게 됐습니다.”

-퇴임식 준비는 하고 있는지요.
“퇴임식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보직자들과 모여 ‘그동안 수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하고 차나 한 잔 하면 됩니다. 워낙 형식을 좋아하지 않잖아요?”

-취임식은 거창하게 하고, 퇴임식은 시시하게 하는 게 관례 인가요?
“물러가는 사람이 대외적으로 떠들썩하게 하는 것은 후임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지요. 조용하게 할 것입니다.”

-4년간 어땠습니까? 힘들었는지, 하고자 했던(총장 출마 3번 만에 당선됐으므로) 것이어서 체질에 맞았는지…,  퇴임하면 우선 무엇부터 하고 싶은지…
“힘들었습니다. 우선 아침 출근시간을 꼭 지켜야하는 것이. 출근 시간이 늦어지면 아침 회의부터 학교 일들이 꼬이게 돼 제 시간에 꼬박 꼬박 출근 하느라 조금은 긴장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벗어나면 우선 2차, 3차 가는 술자리부터 가끔씩 가지렵니다.

-퇴임사엔 신경쓰지 않습니까?
“원래 행사의 식사(式辭)를 누구에게 써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격식을 지켜야 하는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만 인사말을 준비하지요. 그랬더니 좋아들 하더군요. 어느 자리에서나 ‘읽기’가 아니라 ‘말하기’로 하지요.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말하지요. 남이 써 준 것 맘에 들지 않기도 하고…”

-총장이라면, 국립대 총장이라면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을 텐데 권한이 몇 가지나 되는지요. 인사권과 재정운용 등을 빼고도 꽤나 많을 것 같은데…
“그렇지요.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총장이 결정할 것이 많지요. 자잘한 행정적인 것에서 부터 대외적인 것에 이르기 까지 ‘어떻게 할까요’가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총장 집무실의 집기부터 앉아있는 자리에까지가 모두 옛날 그대로입니다. 웬만한 것들에 되도록 신경을 쓰지 않는 스타일이지요. 그러나 행정적인 판단엔 다릅니다. 작은 것들은 논의해서 알아서 하라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향을 제시해주지요. 대학 행정이라는 것이 결정이나 추진이 늦어서 어느 땐 서두르게 할 필요가 있지요.”

-회의는 어떻게 합니까. 충분한 논의 끝에 결과도출을 시도 합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가령 교무회의를 한다면, 전에는 2~3시간씩 하던 것을 방향을 잡아주고 논의를 하면 1시간대로 당길 수 있지요. 총장의 의도가 있어야 할 것은 분명히 해야 하지요.”

-충북대 조직이 결코 작은 게 아니어서 인사권이나 갖가지 이권이 복잡했을 텐데요.
“그렇지요. 그러나 이권 등은 아예 신경을 쓰지 않고자 해서인지 복잡할 일들이 없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지역사회에 퍽 고마운 생각이 들어요. 어떤 무리한 부탁을 해 오지 않아서 머리 싸매고 고민할 일들이 없었어요. 이권이란 것도 그래요. 어떤 일이 있으면 관련 부서에서 적절하게 처리하면 되는 것이지요. 크게 신경 쓸 것들이 없었어요.”

-그래도 대학의 재정확충을 위한 예산확보를 위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요.
“그것은 그런데, 국립대에 주는 예산이 다 비슷비슷해요. 간혹 특별 사업이 있다면 손해는 안본 것 같아요. 내가 교육부 쫓아다니며 사정하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그래도 우연히 주위에서 꽤 도와줬어요. 오제세·홍재형·노영민의원이 적극 도와줘서 한 200억 왔지요. 내가 취임할 때 애들이 학생회관 부족하다고 반발 할 때였어요. 취임하면서 과외로 그게 금방 된거예요. 학생들도 그것 보고 조용해졌지요. 그것 말고 건물 몇 개 더 지으니 조용하더군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유치로 긴장했었지요?
“4년간의 총장재임기간에 가장 긴장 했던 기억이 로스쿨 이예요. 지역과 대학의 특성화전략에 맞춘 과학기술법 특성화분야의 법학전문대학원 설치로 대학이나 지역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할 처지인데, 생각처럼 되기에는 많은 애로사항들이 있었습니다. 만일에 우리가 선정이 안됐을 때를 생각하면 아찔한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됐으니 그런 것이구나 하지, 되지 않았다면 안팎으로 어떨 뻔 했는지… 사실은, 노무현 대통령 때 대통령 자문균형발전위원을 했는데, 그 모임도 가보면 내가 제일 연장자여서 같이 점심을 먹어도 내가 옆에 앉아서 건배사를 하고는 했지요. 실제 장관들은 잘 안 오는 자리여서 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과 자주 만나게 됐는데, 그때 로스쿨이 문제가 완전히 막혔었어요. 그래서 로스쿨문제를 총장들끼리 ‘이런 정책논의를 하다가 중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은밀하게 추진했었지요. 그래서 방향이 잡혔는데, 로스쿨 문제를 국가균형정책에 넣어달라고 한 것이고 그것이 성사돼 충북대가 선정되게 된 것이지요.”

-배정인원이 몇 명이지요?
“우린 그때 신청을 80명밖에 못했고, 70명씩 받아요. 그래도 충분히 받은 거예요. 2년차 뽑았는데, 역시 선발과정에서(선발위원들이) 보니 학생들이 좋다고 하더군요. 이들이 졸업하고나면 70명중 50명 이상의 변호사가 나오는 거예요. 그들이 어디서 활동하든 충북대 자산이예요. 그런 면에서 기대하고 있지요. 그런데 처음 해놓고 학생들, 우리가 사실상 법대가 늦게 시작했잖아요. 그러니 교수 수도 적고, 수업 환경도 안 좋았고, 그러고 로스쿨 유치 직전부터도 교수티오 없는 것 배정하고, 그런 것에 학내 구성원들도 참아주더군요. 그게 고맙지요.”

-지금 200억 이상을 들여 짓는 것이 로스쿨 건물인가요?
“그렇습니다. 220억~230억원 정도 되지요. 7, 8층짜리인데 골조가 거의 다 올라갔지요.”

-그러나 그 같은 고액의 건물보다 사실은 매년 50여 명씩의 법조인이 나오는 게 큰 자산이겠지요. 매년 그렇게 나올 것 아니겠어요?
“맞습니다. 국가나 지역이나 대학을 위해 큰 자산이 되겠지요.”

-조선시대 큰 인물 우암 송시열선생을 기리는 ‘우암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나 같은 둔재는 그 곳서 펴낸 ‘우암논총’을 보고서야 우암이 ‘사약’을 받을 만큼의 영향력이 큰 인물임을 다시 알았습니다.
“이 지역이 낳은 큰 정치가요, 사상가요, 학맥의 거봉인 우암 선생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을 위해 대학이 해야 될 당연한 일 이였지요. 12일엔 순천 박씨 문중에 대한 연구발표를 하게 됩니다. 이 같은 일련의 연구들을 통하여 이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선비정신에 관련한 의식을 고양(高揚)시키고자하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요즘 대학들이, 특히 사립대학들이 기초학문을 하는 과(科)가 인기가 없다하여 통폐합하거나 아예 폐과를 하는 예들이 종종 있습니다. 총장취임사 운영방침 중 첫 번째로 내 세웠던 ‘기초가 튼튼하고 사회의 요구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인재양성’이라는 소신과는 정면 배치되는 것 같습니다만…, 그것을 국립대가 받아들이고 키워줘야 되는 게 사회적 요청인데, 충북대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사립대학들이 실용학문으로 학생들에게 인기 없는 과들을 구조조정 하는 것은 이해해요. 그러나 국립대는 그렇게 가면 안 되지요. 국립대의 경우, 구조 조정으로 기초학문 없애는 대학은 없는데 얼마나 지원을 하느냐는 것이지요. 취임 후  대학은 특히 국립대는 기초학문을 튼튼히 해주는 게 의무라는 생각이 있었고, 모두 균형 있게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4년간을 오다보니 인문 사회 쪽을 너무 지원했다는 말이 이공대 쪽에서 있는 것 같아요. 학문이 편향되는 부분, 또 하나 너무 시류에 영합하는 쪽으로는 우리 대학이 그렇게 가지는 않았어요.”

-그 대학 총장의 문제는 그 대학의 문제가 아니고 지역사회에 대한 문제로 부각이 되니까 사회관심이 쏠리는 것인데, 아무래도 총장은 직선이 바람직한 것인가요?
“직선이 폐단도 많지요. 좋은 제도라고 볼 수는 없어요. 직선제의 폐단을 없애면서 중지를 모을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인가의 논의가 돼야 해요. 찾아봐야지요. 그런데 직선제를 안했을 때는 대통령 임명밖에 없어요. 선거를 안 하면 어떤 사람이 총장임명이 되느냐는 빤하지요. 정부 임명제는 직선제보다 더 큰 불합리성을 가질 가능성이 크거든요. 정치적으로 그것은 당연해요. 학내 구성원들도 상당수는 직선제를 버리고 다른 것을 했으면 하는 생각은 하지만 다음 방법이 없지요. 법인화 문제도 있는데 거기서 말하는 이사회에서 선출하겠다는 말도 있지요. 그렇다고 해서 합리적인 사람이 뽑힐지는 의문이 됩니다. 연구과제입니다.”

-국립대학의 법인화에 대한 문제가 도마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결국은 그 쪽으로 가는 것인가요?
“모르겠어요. 지금 서울대가 진척되는 것 같지만 상당히 주춤거려요. 대학 구성원들 반대 목소리가 크고, 아마 시간이 걸릴 거예요. 설사 된다 해도 정부가 낸 안 가지고는 그대로는 안 되지요. 수정이 많이 될 거예요.”

-학내 구성원들은 반대를 일관적으로 하는 논리지요?
“왜 반대냐. 지금처럼 국립대에 대한 지원을 똑같이 하겠다, 그러면서 법인화로 가겠다, 그러면서 자율성을 주겠다. 그러나 대부분 구성원들이 그것은 종당엔 ‘예산을 줄이려는’ 방법이라는 인식이지요. 조금씩 예산 줄여가는 것은 틀림없어요. 자율성 준다지만 예산만 줄이고,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많아요.”

-대학교육에 대한 소견(所見)이 있다면…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열매 따 먹기’를 가르치는 듯해요. 심지어 ‘남의 열매’ 따먹기까지도.
그래서 공석이나 사석에서 자주 말해 오지요. 대학에서는 ‘나무를  심고 가꾸는 방법’을 가르쳐야한다고. 모든 과정의 교육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대학교육에서는 성과가 아니라 성과를 이룰 수 있기까지의 과정을 익혀야 한다는 뜻이지요.”

-총장임기가 끝나면, 교수로 돌아가지요?
“그렇습니다. 2년 남았습니다.”

-소문엔 중국 연변대에 갈 것이라는데….  연변대 김병민 총장과 오랜 지기(知己)여서 그런 말이 나온 것인지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연길에 가면 술에 죽잖아요?(웃음) 가끔은 가야지요. 오랫동안 관심 쓰는 정암촌(연변자치주 도문시에 있는 충북 청원군 이주민들의 집거지)도 있고. 그러나 아무래도 학내에 있는 연구소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 함께 일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직 ‘이렇게 하겠다’라고 정한 것은 없습니다.”

-2년 후, 교수직을 마치면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지요.
“제가 해 온 것이 충북지역의 민속연구지요. 주로 청주.청원 지역선인들의 인물연구나 우리지역의 정체성에 관련한 연구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그 것이 이 지역 출신 학자가 해야 될 최소한의 의무라는 생각입니다.”

-퇴임하는 마당에 특별히 고맙다는 인사를 해 될 사람이 있다면…
“아내(김광순 여사·60·청주시 내덕동에서 약국 운영)지요. 나돌아 다니는 남편대신 시어머니(85세)를 모시랴, 아이들 둘(장남 기환(31) 한국토지신탁 근무, 차남 용환(30) 대전 중앙백신 근무)키우랴 고생 많았지요. 이 정도의 건강을 유지하고, 마음 놓고 내 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움을 제일 먼저 꼽을 수 있어요. 집사람 고맙다고 내세우는 것을 보니 나도 늙었나 봐요.”

-퇴임 후 오랜만에 소주 한 잔 합시다. 긴 시간 고맙습니다.
            

  ▶대담·글/조철호 동양일보 회장
  ▶기록/오상우     ▶사진/임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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