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있는 사람보다 옳은 사람 말 들어야
충북인들 결단 늦는 것은 지혜와 신중성 때문

 

 

이원종(李元鐘) 지사는...

 △1942년 4월4일 충북 제천시 봉양면 미당리 출생 △봉양초 왕미분교(현 왕미초)-제천중-제천고-국립체신대 통신행정학과-성균관대 행정학과 졸(1965) △행정고시합격(1966) △한양대행정대학원 졸(1986) △성균관대 명예행정학박사(1996) △충북대 명예행정학박사(1998) △서울시기획담당관-용산구청자-내무국장(1975-1991)△대통령비서실 내무행정비서관(관리관,1991) △26대 충청북도지사(1992) △27대 서울특별시장(1993) △성균관대행정대학원 대우 교수(1995) △서원대 총장(1996) △30대 충청북도지사(민선2기-1998) △31대 충청북도지사(민선3기-2002) △현 성균관대국정관리대학원 석좌교수 △저서-‘생명 속의 생명’(2008) ‘공공정책과 기업가형 리더십’(공저,2009)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미도아파트 110동304호(☏02-554-2324)

 충북인들이 가슴 밑바닥에 감춰오던 ‘자기 생각’을 ‘아무도 모르게’ 표출한 6.2 지방선거는 새로운 변화의 파고(波高)를 예고하고 있다. 그 같은 기대감 때문일까, 선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삼삼오오 모인자리에선 아직도 선거 얘기가 주류다. 예상 밖의 변화를 몰고 온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분분하다. ‘세종시 문제’ ‘정권 심판론’ ‘당풍(黨風)’ ‘변화의 열망’...등. 그러나 그 같은 이유의 중심엔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을 ‘버리고’ ‘선택’ 할 것인가로 모든 유권자는 고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8년 전, 충북도민들은 마지막 관선지사로 부임한 제천출신 이원종 지사를 맞았다. 1년간의 재임기간이 지나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국 시장. 지사가 모두 자리를 떠났다. 그도 떠났다. 그러나 그는 떠났는데 도민들은 그를 보내지 않았다. “도민을 진실로 ‘섬겼던’ ‘알쫑이’ 지사”라며 가슴에 묻었다.(‘알쫑이’는 이 지사의 어린 시절 별명으로, 당시 도민들에게 다감했던 그를 일부 언론에서 애칭으로 인용해 썼었다) 그리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곧 그는 서울특별시장으로 발탁됐다. 그리고 민선의 시대-1997년 12월, 서원대 총장직을 버리고 1998년 민선 2기에 도전했다.

 재선을 노리던 주병덕 지사를 74:26으로 누르고 민선지사가 되고, 4년 뒤 그는 3명 후보 중 58.6%의 지지를 얻어 재선에 성공했다. 관선과 민선을 통해 9년간을 충북지사로 재임한 그는‘오송 바이오 엑스포’(2002년3월)를 개최, 충북도민들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자긍심을 심는데 성공했다. 그의 ‘바이오토피아 충북’의 여세는 그를 3선 지사로 진입시키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당시 여론조사도 ‘지사당선 가능성’ 부동의 1위는 언제나 현직 이원종 지사였다.

 그에 대한 도민들의 신뢰와 기대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선거를 앞두고 그는 돌연 불출마를 선언한다. 구구한 억측이 난무했다. 수년 뒤에야 그의 정계은퇴의 속내가 드러났다. 3선 출마를 앞두고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출마’할 것인가와 ‘하고자 한 일을 끝냈으니 이젠 쉬었으면 하는 출마 포기’ 로 갈등을 겪던 그가 새벽 기도에서 하나님의 답을 얻었다는 것이다. “머리에 있던 것을 다 소진했으므로 이젠 짐을 좀 내려놓았으면 싶다”는 요청이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졌다”고 그는 대담 중 고백했다.

 출마만 하면 당선될 것이라는 대중적인 판단을 떨쳐내고 2006년 1월4일, 지방선거 불출마와 정계 은퇴 선언 후, 6월말까지 공직 임기를 마치고 훌훌히 지사직을 떠난 지 4년, 그는 대학의 석좌(碩座)교수로 초빙돼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삶을 누리고 있다. 아직도 충북도민들에게 ‘깔끔하고 다정한 도지사’로 각인돼 늘 그리운 사람으로 살아있는 그를 만나 새로 선택된 단체장들에게 선배로서의 충언과 덕담을 듣기로 했다. 6.2 선거가 끝난 지 이틀 뒤인 4일 오전 10시30분 동양일보 회장실에서였다.

 -자가운전으로 오시느라 좀 피곤하시겠습니다.

“아니에요. 서울서는 지하철을 타는데 지방에 내려올 땐 차를 씁니다. 그런데 계절에 따라, 지역에 따라 자연과 인간사의 변화가 얼마나 다양하고 아름다운지 몰라요. 그런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 먼 길을 와도 피곤하지 않아요. 참 좋은 계절입니다.”

-공직을 떠나신지 몇 년, 요즘도 하루일정이 바쁘신지요.

“심심할 틈은 별로 없더라고요. 매일 스케줄표가 빡빡해요. 대학원에 이틀쯤 나가야하고, 한 달에 두 번쯤 특강 나가고, 한 달에 한 번쯤은 주례도 서고, 좋은 사람들과 식사나 운동약속도 하고...”

-사모님(김행자· 70)건강은 어떠신지요.

“작년에 왼쪽 무릎관절이 안 좋았었는데 수술받고 지금은 아주 편해졌어요.”

-지금 살고 계신 곳이 그 유명한 대치동이시지요?

“강남구 대치동 미도아파트예요. 82년도부터 살았으니까 30년이 가까워지네요. 처음 들어갈 땐 아주 외진 곳이었지요. 포장도 안돼서 승용차 타고 가면 흙에도 빠지고 했었는데, 지금은 도심이 됐지요. 그러고보니 집전화 번호도 한 40년 썼네요. 물건이고 사람이고 옛날 것 잘 못버려요.”

-사람이나 물건이나 잘 버리고 잘 바꿔야 출세한다는데요.

“잘 안되더라고요. 물건도 정이 들잖아요. 손때 뭍은 것 못 버리지요.”

-대학에 나가시는 일이 재미있으신지요.

“요즘, 생활 삼락(三樂)을 누려요. 첫째는 후진들한테 강의하는 즐거움이지요. 특히 제가 강의하는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학생들은 공직 희망자가 많고 현직 공무원 간부가 많아요. 그래서 충북도에 있을 때 부딪혔던 많은 문제들 성공, 실패 사례 등을 주 내용으로 하니까 실감 있어 해요. 그 외 한 달에 두 번쯤, 대상이 맞으면 특강을 가요. 더 이상은 에너지도 그렇고 질도 그렇고, 그래서 한 달에 6번 정도 강의를 하지요. 두 번째 즐거움은 취미활동 하는 것. 등산, 골프도 하고 양재천 코스에서 조깅을 1시간 쯤 합니다, 세 번째 낙은 좋은사람들 만나서 담소하는 것이에요. 그러다보니 퇴직한지 4년이 언제간지 모르게 지났어요.“

-공식적인 일정에서 풀려난 지난 4년간 특별히, 이것은 해보니 좋더라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제일 좋은 것은 평화와 자유예요. 현직에 있을 때는 어떤 문제든 풀어야 하고, 고민하고 갈등과 긴장, 그런 게 있잖아요. 퇴직 후에는 그런 게 없어요. 부딪히고 긴장하고 그런 게 없으니 거기서 생기는 자유와 평화가 아주 해피해요.” (‘평화’와 ‘자유’를 만끽한다고 힘주어 말하는 그의 표정은 유독 밝고 행복해 보였다)

-이번에 6.2선거 보셨지요? 남다른 소회가 있으셨을 텐데요.

“이번 선거를 보면서 옛말에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다’라는 말이 생각났어요. 물이 받쳐줘야 배가 뜨고 물이 성나면 배를 뒤집을 수 있다고 풀이할 수 있지요. 평소엔 배에 탄 사람들이 누구냐가 관심사지만, 정작 그 배는 물이 있으므로 존재하는 것이지요”

-특히 충북의 결과를 보실 때의 느낌은?

“전국이 다 그랬잖아요. 충북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도민들의 의식이 민감해 졌다고 생각해야하는지…”

-이번의 변화를 각 캠프에서는 감도 못 잡았답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선거일 한 달 전에 이미 다 알고 있었어요.

“내가 경험한 바로 선거를 설명하라면 첫 번째가 민심의 흐름이에요. 대체로 역대 선거를 보면 민심 흐름에 따라서 방향이 바뀌잖아요. 그 다음이 구도예요. 누구하고 만나느냐. 아무리 내가 잘나고 힘이 있어도 나보다 큰 선수를 만나면 안돼요.”

-충북사람들의 의식이나 선거결과는 과학으로 분석이 안 된다는 말이 있어요.

“충북인들이 자기표현을 잘 안하는 것은 지혜와 신중성예요. 역사적으로 우리가 삼국 각축지에 살았기에 판단력과 기준은 있는데 상황판단을 위해서 바로 결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지요. 어찌 보면 실수나 시행착오를 줄이는 아주 중요한 지혜지요. 우리가 보면 생각도 안하고 뛰는 사람 있거든요. 실패 많이 해요. 우리 지리적이나 역사 흐름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라고 봐요. 그걸 객관적 컴퓨터로 분석하려니 어림도 없지요. 컴퓨터는 연산하는 계산밖에 없어요. 그걸로 못 재지요.”

-새로 선택된 각 지역 단체장들, 이 사람들에게 덕목이 될 만한 말씀 있으시면 선배로서 몇 가지 말씀 해 주시지요.

 “충북만이 아니고 이번에 뽑힌 3900여명 전국의 단체장에 해당되는 말 세 가지만. 첫째는 ‘꿈 너머 꿈’을 가지라는 고도원 씨 말을 전합니다. 만일 시장 군수 도지사가 되는 것 자체가 꿈이었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지난번 민선4기 독직사건 등 불행으로 물러난 사람이 41%예요. 단체장이 된 뒤의 꿈이 없어 그래요.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 하는데 누구에게나 꿈이 있어야 돼요. 자기 위주의 충성을 바치면 재앙이 될 수 있어요. 내가 시장 군수 도지사 교육감이 되는 것은 자체가 꿈이었겠지요. 그럼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이냐를 가져야지요. 두 번째는 가까운 자 보다 옳은 자 편에 서라는 충고예요. 가까운 자 때문에 문제가 생겨요. 정말 객관적인 인물로 옳은 자들로 주위를 포진했을 때 이는 탄탄해져요. 예를 들어 유비가 사실상 어떻게 보면 무능한 사람이에요. 제갈공명이 있기에 성공한 것이지요.

 유비는 자기보다 20살 아래인 제갈공명을, 아무 관계없는 그를 세 번이나 찾아가 모셔 와요. 그게 옳은 지도자예요. 또 링컨과 스탠튼 관계-정적이었던 스탠튼은 링컨의 일생을 괴롭혔어요. 링컨이 취임하고 조각하면서 그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하려니 측근들이 말렸어요. 링컨은 “그래도 이 나라에는 그가 필요하다”며 등용했어요. 그후 링컨이 죽었을 때 가장 슬피 운 사람이 바로 그였어요. 지방, 국가 권력이나 모두 성패는 사람에게서 나와요. 가까운 자가 아니라 옳은 자의 편에 서야 해요. 세 번째 부탁은 ‘힘을 합쳐 함께 가라’입니다. 장군이 아무리 유능해도 부하가 안 따르고 혼자 전쟁가면 총 맞아요. 구성원 함께 갈 때, 어떤 정책을 몰고 나갈 때도 정책의 이해, 의견을 모으고 단합해서 가야해요. 미국 사람들이 보면, 최고지도자에게 요구하는 덕목이 있어요. 건강과 열정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이에요. 설득, 그 다음에 통합이지요. 아무리 좋은 정책도 설득되고 설득된 에너지가 통합되지 않으면 안 돼요. 지방, 국가 똑같아요.

 지금 보세요. 4대강, 세종시 둘 다 그거 그렇게 나쁜 사업 아닙니다. 그런데 통합이 안 돼서 그래요. 통합 안 된 전 단계가 설득이에요. 통합해서 함께 가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지도자하고 국민 사이 갭이 있어요. 지도자는 꿈을 꾸지만, 사람들은 현실에 매달려요. 여기는 당장 콩나물, 버스값 오르는 게 힘든 거예요. 지도자는 멀리 보고 가야 하잖아요. 갭이 생겨요. 이 갭을 설득하고 끌고 갈 의무는 지도자가 갖는 것 이지요. 그래서 힘을 합쳐 함께 가라. 이 세 가지만 부탁하고 싶어요.”

-한 가지 덧붙인다면 자치단체장들이 취임과 동시에 차기를 의식해서 정신없이 뛰잖아요. 자기를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생각이 고여야 하는데, 운동연습처럼 뛰기만 한단 말이에요. 참으로 딱하지요. 틱낫한의 충고처럼 ‘천천히’를 명심해야겠어요. 뒤를 돌아보시니 어떠시던가요.

“맞습니다. 여유와 여가는 소비가 아니지요. 신문이나 책을 열심히 보고, 전문적이고 정직한 얘기를 열심히 듣고, 소화할 줄 알아야 해요. 김흥도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를 보아도 그래요. 길죽한 그림인데 조각배에 앉아서 비스듬히 앉은 노인이 언덕 위 매화꽃을 보는 그림인데 붓 터치는 전체 화면의 1/5도 안돼요. 동양화의 여백도 그림의 일부이듯 바쁠수록 여유와 여가를 가질 때 아이디어가 생기고 지혜가 생겨요. 주민도 그래요 작은 행사 큰 행사 다 오기를 바라는 것 보다 적어도 단체장이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이해하고 안배해 주는 넉넉함이 바람직하다고 봐요”

-안목에 관한 것도 문제가 되지요?

“공부하지 않으면 안돼요. 옛날 사서삼경 가지고 공부할 때는 그거 하나로 한 평생 벌어먹어도 지장 없어요. 요새는 새로운 기술이 빠르게 생겨요. 그러면 그 속도를 따르지 못하면 정지가 아니라 후퇴하는 거지요. 더구나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책임자 같으면 적어도 옆을 바라다 봐야 돼요. 옆 사람 말이 아니고 지구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생각해야 돼요. 또 앞을 봐야 해요. 10년, 20년 후 어떻게 가는지를 보는 것. 그러면서 자기 혼자는 어렵잖아요. 석학들도 만나고 책도 읽고 컴퓨터도 보고 여기서 얻는 정보들, 거기서 자기 연찬을 해야 그래야 지혜가 샘솟고 새로운 것을 따라갈 수 있지요. 취임 때는 국민 소리 듣겠다고 하다가 차츰 그런 정보로 꽉 차게 되면 나만큼 아는 사람 누가 있어. 내 판단 누가 따라와 이러면 말이 많아져요. 30분 사람 만나면 25분을 말해요. 그걸 경계해야 돼요. 25분을 들어야 해요. 자기가 가장 옳고 지혜롭다고 착각에 빠지면서 스스로 가라앉는 것 이에요.”

새 지도자들에겐 금과옥조(金科玉條)같은 말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평화’와 ‘자유’ 누리십시오.

▶대담·글/조철호 동양일보 회장

▶기록/오상우 ▶사진/임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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