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내전의 아픔 있는 곳 찾아 '교육의 불씨' 지피다
비빌리 사업장 2만여명 주민대상 '4대사업' 추진

▲ 도담골라 학교 순더러(뒷줄 오른쪽 네 번째) 교장과 학생, 교사, 충북방문단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이 월드비전에서 지원해 신축한 ‘Dodamgola School’에서 방문 기념 구아바나무를 심고 있다.

스리랑카는 인도 남동쪽에 있는 섬나라로 정식 나라 이름은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 공화국’이다. 지리적으로 인도 아래에 위치해 ‘인도의 눈물’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예전에는 ‘실론’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국토면적은 6만5610㎢로 한국의 충청·전라·경상도를 합한 넓이와 비슷하다.

한때 인도와 함께 영국의 속령이 돼 지배를 받아오다 1948년 영국연방의 일원으로 독립됐다.

이전까지는 콜롬보가 수도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행정수도)와 콜롬보(정치·경제적 실질적 수도)로 분류되고 있다.

스리랑카는 아직도 내전의 아픔이 있는 곳이다. 불교계 상할리족과 힌두계 타밀족간 민족적 감정이 쌓여 1981년에 폭동이 일어났으며, 타밀족은 영토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게 됐다.

이후로 북동부지역에선 타밀족 자치 국가를 세우기 위한 게릴라전이 이어지다 2009년에 26년간의 내전이 막을 내렸다.

스리랑카는 예로부터 농업국가다. 현재 주민 8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농업국가에서 공업국으로 전환키 위해 노력 중이다. 어업은 ‘살생을 하면 안 된다’는 종교적 이유로 하지 않다가 최근에야 시작됐다.

주요 농산물은 홍차·천연고무·코코야자·쌀 등이 있으며, 홍차는 정부에서 직접 관리한다.

한국은 1972년 10월 9일 주(駐)스리랑카 통상대표부를 개설했으며, 1977년 11월 14일 통상대표부를 대사관으로 승격한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양국관계는 발전돼 왔다.

한국월드비전은 1997년 처음 스리랑카에서 사업을 시작했으며, 현재 비빌리와 바하라이 사업장에서 사업을 진행 중이다. 교육·소득증대·보건의료·생계지원 사업을 중점적으로 진행한다.

▲ 한국월드비전이 스리랑카 우바주 비빌리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마련한 ICT센터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고 있다.
▲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이 취약가정 집지어주기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산지바(30) 가족의 공사장에서 기초공사인 돌 쌓기를 거들고 있다.
▲ 우라울라 마을 주민들이 산 중턱 집수장에서 마을까지 5km 거리의 물을 끌어오는 수로 공사를 하고 있다.
▲ 충북방문단과 스리랑카 우비주 비릴레 사업장 관계자들이 집짓기가 완공된 가정을 찾아 테이프 커팅식을 가진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비빌리 지역개발사업장

인도 차티스가르주 더그 아샤딥 사업장 곳곳을 둘러본 충북방문단은 지난 2월 10일 오후 6시 5분 뭄바이 공항을 출발, 8시 35분 스리랑카 네곰보 공항에 첫 발을 디뎠다.

스리랑카의 첫 인상은 인도와 사뭇 달랐다.

인도는 공항입구에서 비행기를 타기까지 8번의 검문검색을 받아야만 했다. 가방은 물론 지문과 얼굴 홍채인식 등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빼앗겨 짜증이 났다. 심지어 숙소를 들어갈 때도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했다.

스리랑카는 여권과 비자검사 한번으로 입국을 마쳤다. 관광의 나라답게 면세점에선 직원들이 입구에 나와 물건을 사가라고 호객행위를 하느라 야단스럽다.

공항 출구를 나오기 전엔 환전을 해가라고 손짓을 해가며 시끄럽게 꾼다. 웬만한 공항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숙소로 가는 길도 깨끗해 벌써부터 기분이 들떴다. 비가 내린 탓도 있겠지만 거리엔 쓰레기 하나 없었다.

인도는 거리 곳곳이 지저분하고 나무들도 흙먼지가 가득가득했으나 스리랑카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충북방문단은 첫날 네곰보에서 숙박을 한 뒤 이튿날 콜롬보 시내에 위치한 사업장을 방문해 스리랑카 내전 이후 이야기와 월드비전의 사업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어 4시간에 걸쳐 스리랑카 최대의 휴양지이자 차재배지로 유명한 누와라엘리아로 이동해 호텔에 투숙, 여장을 풀었다.

이튿날 12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주문한 도시락을 싸들고 6시에 출발해 3시간이 넘는 이동 끝에 목적지인 우바주 비빌리 사업장에 도착했다. 콜롬보에서 동쪽으로 224km 떨어진 곳이다.

이곳에서 직원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비빌리 ICT지원센터(Bibile ICT Resource Centre)로 이동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이 지역은 40개의 동과 112개의 마을로 구성됐고, 3만8000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연평균 강우량이 2500mm이고, 평균기온은 35~45도로 일 년 내내 무더운 날씨가 계속된다.

지역주민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우기엔 폭우가 쏟아지고 건기엔 땅이 메마르는 불안정한 강우량으로 인해 지역주민들은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빌리 사업장 필릭스 팀장은 “아동 7108명과 어른 1만4126명 등 2만1234명을 대상으로 소득증대·보건위생·교육·아동결연 등 4대 사업을 중점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필릭스 팀장은 “소득창출 일환으로 시장을 형성해 줘 자유롭게 팔고살수 있도록 해줬다”며 “마을 진입로 확장 등 길 만들어주기 사업도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드비전은 비빌리 마을에서 아동권리 캠페인을 펼쳐 매년 5500여명의 아동들에게 교과서와 노트, 학용품 등을 제공했으며, 1500여명의 어린이가 유치원 교육을 마쳤고, 3~5세 후원아동의 95%가 유치원에 다닐 수 있게 됐다.

최근 주민 239명이 추가로 설치된 3개 식수시설의 혜택을 받아 전체 70%가 깨끗한 식수를 마시게 됐다. 화장실 건축을 지원해 주민 79%가 위생시설을 갖췄다.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ICT센터를 마련, 25개의 컴퓨터로 정부 직업훈련 담당부서와 함께 IT교육을 하고 있다.

현재 네 번째 기수가 교육을 받고 있으며, 한 기수당 6개월 교육을 받은 후 6개월 동안 인턴십과 현장교육을 한다.

충북방문단은 월드비전이 300만루피(3000만원)를 지원해 신축한 ‘Dodamgola School’(교장 가르나 순더러)을 찾았다.

이 학교는 1~13학년까지 650명이 재학 중이다. 4년 전 300명에서 두 배 이상 늘었으며, 연령층이 다양해 ‘프리스타일 스쿨’로 불린다. 교장은 이 학교 출신 4명이 대학을 진학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충북방문단은 삼각형 스탠드 등 과학실 수업실습 기자재를 선물했으며, 방문 기념으로 구아바나무 4그루를 심었다.

이어 취약가정 집지어주기 사업을 진행하는 곳을 찾았다. 부부가 정신지체 장애를 갖고 있는 산지바(30) 가족의 새로운 보금자리 마련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장마로 집을 잃어 마을에서 ‘누군가가 도와줘야 살아 갈 수 있다’며 지원을 요청했다. 거실과 부엌, 방 2개 등 4개 구조(10평)로 지어진다.

중장비 없이 순수 인력으로만 짓기 때문에 3~4개월 후 완공된다고 한다. 충북방문단은 기초공사인 돌 쌓기를 거들었다.

월드비전은 단순 집을 지어 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마을사람들의 협동심을 기르고, 자립심을 키워준다.

방문단은 이어 마을과 마을이 쉽게 교류를 할 수 있도록 2년 전에 마을 진입로에 다리를 놓아준 곳을 둘러봤다.

이곳은 큰 나무에 줄을 연결해 올라서서 이동을 하거나 신발을 벗어야만 건널 수 있었다.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이 불어나면 학교 가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고, 어렵게 가꿔 수확한 농작물도 내다팔기 어려웠다.

정부 지원과 마을 사람들 노동력 등 200만루피(1600만원)를 들여 길이 22m의 다리가 완공됐다. 월드비전은 50만루피(400만원)을 지원해 마을길 150m가 흙길에서 콘크리트길로 탈바꿈했다.

식수 개선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우라울라 마을을 들렀다. 지난 2012년 3월 12일부터 시작돼 2015년 3월 말 완공이 목표다. 산 중턱에 집수장을 만들어 마을 가정으로 보내는 형태다.

월드비전에서 5km의 파이프를 제공하고, 지역주민은 수로 파는 작업에 참여토록 해 주인의식을 갖고 유지관리를 할 수 있게끔 했다. 한국의 70년대 새마을운동 사업 방식과 흡사하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25가정이 직접적 혜택을 받고, 30가정이 간접 수혜를 입게 된다.

이날 마지막으로 집짓기가 완공된 가정을 찾아 테이프 커팅식을 가졌다. 4개월 간의 공사 끝에 마무리 됐다고 한다.

한 가구를 건축하는데 인건비를 포함해 1200만원이 든다. 월드비전이 300만원을 지원하고, 지역 주민들이 일하고, 집주인이 일정부분 자부담을 한다. 이런 식으로 80가구가 새로 지어졌다.

월드비전이 전액 지원을 하지 않는 이유는 사업비에 비해 숫자가 많은데다 일방적 지원이 이뤄질 경우 ‘자립심과 협동심을 키워준다’는 목적의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 충북방문단이 1957년 제작된 영화 ‘콰이강의 다리’ 촬영지였던 스리랑카 켈라니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홍차의 나라 ‘티 팩토리’

누와라엘리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홍차 회사들이 몰려 있다. 관광객들을 위한 견학 프로그램 운영이 활발하다. ‘실론티의 나라’ 이곳까지 와서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13일 오전 고지대 산길을 3시간여 동안 돌고 돌아 맥우드 티 팩토리(Mackwoods Labookellie Tea Centre)에 도착했다.

이곳은 1841년 Willam Mackwoods라는 선장이 세운 곳이라고 한다. 영국 식민시대 활발했던 플랜테이션 농업 중 하나다. 100년을 이어오다 스리랑카 독립 이후 현지인에게 넘겼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일제 기업이 있었다면 승계하더라도 그 이름을 그대로 남겨둘 리가 없었겠지만 이곳은 처음 기업명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티 팩토리 주변으로 보이는 차밭 풍경은 아름다웠다. 산등성이들은 모두 차나무로 뒤덮였다.

차 밭에선 현지인들이 열심히 찻잎을 따고 있었다. 1인당 하루 20kg을 따면 600루피(4800원)을 받는다. 이곳에선 매일 1만5000kg을 생산해 낸다.

충북방문단은 본격적으로 차 공장 견학을 시작했다. 몇 명의 가이드들이 있고 5~10분 간격으로 견학이 이뤄진다.

2층 건물로 지어진 공장내부로 들어서니 맥우드 티 팩토리의 역사, 홍차의 등급, 제조 공정 등의 설명부터 시작됐다.

스리랑카에서의 최상등급의 홍차는 FOP(Flowery Orange Pekoe)라는데 새싹으로 만들고 찻잎을 분쇄하지 않아 온전한 찻잎 형태가 남아 있는 홍차라고 한다. 그 밑으로 OP, P 등급으로 낮아진다.

또 같은 찻잎이라도 잘게 부쉈는지, 가루형으로 갈았는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매일 채집한 찻잎은 2층 건조실에서 건조기를 통해 10시간 동안 말린다. 이렇게 건조된 찻잎들은 다음 공정에서 잎의 모양을 가다듬고, 조직세포를 부셔 산화를 촉진시키는 과정을 거쳐 1층으로 보내진다.

이곳에서 2~4시간 발효과정을 거치며 찻잎은 적갈색으로 변한다. 그린티는 수성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홍차의 맛과 탁도는 발효(숙성)시기에 결정된다. 이렇게 발효된 찻잎을 다시 건조기(115도)로 바싹 말리면 거의 완성이이다. 1차에서 50%를 건조하고 2차 과정에서 나머지 50%를 말린다.

마지막 공정이 끝난 찻잎은 체를 이용해 형태와 크기를 맞추고 등급 구별을 한 뒤 출하돼 경매장으로 넘어간다.

15가지 다른 맛을 내는 차로 제조돼 콜롬보에 있는 경매장으로 보내지면 75%는 수출을 하고 나머지 25%는 국내에서 소비 된다.

공장 견학을 마치고 홍차의 맛을 보기 위해 티 하우스로 들어갔다. 종원업이 홍차 한 주전자, 연유 한 사발, 설탕 등을 쟁반에 준비해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홍차는 당연히 쓴맛이 강하지만 깔끔하기도 하다. 연유와 설탕을 곁들이니 달달하니 맛이 좋았다.

티 하우스 안에 마련된 기념품점을 들렀다. 홍차에도 종류가 많았다. 벌꿀, 체리, 바닐라 등이 첨가된 홍차도 있었고, 잎을 잘게 잘랐느냐 크게 잘랐느냐에 따라 제품이 나눠졌다. 모두 다 같은 홍차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Mackwoods’로고가 새겨진 찻잔세트도 판매한다.

충북방문단은 14일 많은 사람들이 스리랑카 가면 꼭 가는 곳으로 뽑는 곳 중 하나,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1군데인 ‘시기리야’를 찾았다. 절벽 위에 건설된 요새 궁전으로 스리랑카의 상징이다.

시리리야(Sigiriya)는 현지어로 Sigri(Lion 사자)와 Ya(Rock 바위)라는 두 낱말의 합성어라고 한다.

입장료는 30달러 또는 3900루피(내국인 100루피)로 다른 관광지보다 비싼 편이지만 그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돈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롭다.

밀림지대에 200m 우뚝 솟은 화강암 성채로 BC 5세기에 요새왕궁으로 건축, 198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시기리야를 본 첫 느낌은 대단하다는 것이다. 정글 한 가운데 어마어마한 바위산이 떡 하니 버티고 있는 모습이며, 그 바위산에 왕궁을 건설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1300년 동안 밀림에서 잠들어 있다가 18세기 후반 영국의 건축학자 ‘벨’에 의해 발견됐다고 한다.

충북방문단은 10박 11일의 일정을 마치고 2월 16일 새벽 6시 인천 공항에 도착, 한국에서의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한국월드비전에서 지원하고 있는 인도와 스리랑카 사업장 방문은 동양일보와 월드비전 충북지부, CJB가 공동 주최하는 ‘사랑의 점심나누기’ 행사에서 모금한 성금으로 후원하기 위한 지원사업을 모니터링하기 위해서다.▶글/지영수·사진/서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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