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전체평가토론과 발전방향토론


동양일보가 창사 25주년 기념 ‘동양포럼-한·중·일 회의 Ⅱ’에서 마지막 날인 3일 오구라 키조 교토대 교수와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이 전체토론과 발전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최지현>

동양일보 부설 동양포럼 운영위원회는 지난 1~3일 청주시 우암동 충북예총 따비홀에서 한·중·일 학자 33명이 참석한 가운데 ‘동양포럼-한·중·일 회의 Ⅱ’를 개최했다. 이번 포럼 마지막날인 3일 오후에는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의 진행으로 전체평가토론이,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의 진행으로 발전방향토론이 열렸다. 한·중·일의 석학들과 젊은 지식인들이 참석해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연다’는 주제 아래 전개한 3일 간의 토론을 종합 정리한 전체평가토론과 발전토론의 내용을 지면에 싣는다. <편집자주>

 

<전체평가토론>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이번에 함께 철학하는 도시 청주에서 개최된 한·중·일 회의에서 거론된 문제에 대해서 내 나름의 소감을 몇 가지 말씀드리겠다. 무엇보다도 개천(開天)에 관해서인데, 동아시아의 한·중·일이 함께 새 하늘을 열자(開新)는 발안(發案)이 굉장히 신선하고 충격적이어서 나는 크게 자극을 받았다. 그런데 동아시아 3국이 함께 개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해야 할 일이 있다. 첫 번째는 역사 문제다. 역사에 대해서 일본이 반성하고 사죄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개천할 수 없다. 한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런 과정을 자각하면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여기 모인 분들은 아마 거의 같은 마음을 가지고 계셔서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안 나왔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이 먼저 반성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야 우리가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사죄하고 반성해야 하는 것인지 대부분 혼란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다. 그 방법이 아마 1억2000만 일본 국민이 한국으로 와서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한국 분들의 기분도 나쁠 것이다.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가 어떤 과정에서 무슨 관계를 맺어야 결과적으로 대등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내 생각에는 일본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기원하고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그것이 개천하기 위해 일본 사람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그 다음에는 국가문제다. 나는 내가 하는 수업에서도 국가의 문제에 대해 학생들에게 묻곤 했다. 지금 일본의 우경화가 어떤 역사적, 사상적인 의미를 가진 우경화냐고. 일본의 다른 학자들도 이런 얘기를 하고는 하는데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아베 정권이 내세우는 일본 국가에 흡수되고 있다. 그래서 위험한 것이다. 그냥 우경화면 단순하다. 좌익 세력이 더 커지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일본에서는 좌익이 없어졌다. 너무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느낀다. 중국의 ‘인(仁)’과 일본의 ‘화(和)’ 한국의 ‘통(通)’이라는 것이 김태창 박사님이 제창하시는 ‘인터로컬필로소피’의 핵심개념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일본사회에서의 ‘통’과 ‘화’의 관계는 아주 특이하다. 먼저 ‘화’라는 개념으로 일본 사람들이 뭘 지키려고 하는 건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한국 사회는 엘리트주의다. 권력과 부가 연결돼 있는 도덕은 항상 부패하니 밑바닥의 사람들이 비판을 한다. 그런 회로가 일본에는 전혀 없다. 일본은 과거 제도가 없어서 공부 잘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도덕, 부, 권력이 삼위일체가 안 돼 있는 사회이다. 일본 사회에서 제일 가치가 있는 삶은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즉 장인의 세계관이 가장 강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화’를 가장 강조했던 시대는 1930년대다. 일본 사람들이 지키려고 했던 것은 ‘대화(大和=야마토)’ 즉 크게 화하는 마음이다. 에도시대부터 내려온 집집마다 있는 특수한 기술은 그러한 세계관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아마 일본 정부가 집집마다 있는 가옥의 세계관을 파괴하려 했다면 전체주의는 성립되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 에도시대부터 내려온 ‘가직(家職)이 천직(天職)’이라는 세계관을 몇 백년 동안 필사적으로 지켜왔다. 그게 화다. 그건 개별적인 세계관이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소통을 잘 모른다. 한국 사람들은 보편성을 밝히고 그것을 따르려는데 자기 에너지의 80%를 쓰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지만 일본 사람들은 보편성이라는 개념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대화라든가 소통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교수들도 점심시간이 되면 식당에 가서 혼자 자기 도시락을 먹고 그냥 돌아온다. 일본에서 대학 교수들은 교양인이나 지식인이 아니라 장인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만 보고 자기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사회적으로 발언한다던가 참여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리고 ‘싱가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싱가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느냐. 공자의 제자 안회는 제자들이 둘러앉아서 대화를 하고 있다면 저 멀리 뒤에 있으면서 제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관찰하고 아무 말도 안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제일 공자가 좋아했다. 논어의 ‘인’이라는 개념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해석은 ‘인’은 ‘생명’이라는 것이다. ‘인’은 사람이 복수로 있을 때 사람 사이에 우발적으로 나타나는 생명에 이름을 붙인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맹자는 보편적인 천리(天理) 근원으로부터 나오는 도덕성이 ‘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공자의 ‘인’과 맹자의 ‘인’은 굉장히 다른 것이다. 공자의 세계관은 애니미즘적 세계관이라고 생각한다. 애니미즘은 어떤 것에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를 공동 주관적으로 결정하는 세계관이다. 이 바위에 생명이 있다거나 없다고 하는 것을 공동체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논어에 나오는 군자라는 개념은 인격이 아니라 형상이라고 생각한다. 군자라는 인격이 변함없이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이 자신에게 나쁜 말을 해도 불쾌하지 않을 때 군자라는 형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전체 평가 토론에 들어가기로 한다.”

 

▷김태만 국립해양대 국제대학원 원장 “이번 포럼에 참여하면서 배우고 깨닫는 바가 많다는 느낌이 든다. 동일본 대참사와 세월호 참사와 연관돼서 생명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는데 생명의 자각이야말로 인식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개천이라는 것도 개체생명이 우주생명에 눈이 열린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에 대한 내 생각을 말씀드리면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어제 오오하시 켄지 선생께서 동물 생명과 식물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동물 생명은 서양, 근대, 남성, 자본으로 대변되며 식물 생명은 동양, 전근대, 여성, 반자본 등으로 대변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도식적 사고가 우리의 사고를 간명하게 할 수는 있지만 왜곡될 수도 있다. 서구는 모든 것이 동물적이고 동양은 전혀 안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속에는 동물과 식물이 서로 견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 생명에서 식물 생명으로 옮겨 간다고 할 때 내 속에 있는 동물성을 어떻게 조절시켜 가느냐가 문제지 내가 서구, 자본을 부정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지난 3월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을 받은 작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한 여성이 꿈에서 깨어나 냉장고로 가서 동물성 식재료를 끄집어내 버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기가 늘 먹고 있는 동물적인 식생활, 내 속에 내재된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 여성은 자기 속의 동물성을 배제해 나가는 것이 자기가 살기 위한 방도라고 생각하며 채식을 한다. 그러다 나중에는 거식증에 걸리고 망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나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 이상 증세를 보이다 결국 죽게 되는데 여기서 보이는 것은 서구나 동양을 이분법적으로 배제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의 동물성을 배제시켜 갈 때 온전히 우주 생명으로 전이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장지영 원장님의 생명은 숨을 쉬는 것부터 시작된다는 말씀에서 생명의 실상이 호흡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 “오구라 교수님의 ‘인’이란 생명이라는 말씀이나 장지영 원장과 김태만 교수님의 생명이 호흡에서 시작된다는 말씀에서 새삼스럽게 느낀 바가 많다. ‘인(仁)’의 고문자를 보면 사람이 아래 위로 겹치는 형상으로 되어 있다. 사람 속에 사람이 들어 있는 것이다. 사람 속에 사람이 들어있다는 것은 임신한 여인의 모습이다. 내 속에 타자가 살아있음을 체감하는 것인데 그것은 남성으로서는 체험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속에 있는 타자의 숨결과 율동을 직접 체감한다는 것은 여인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최재목 교수님의 ‘인(仁)’의 고문자에 관련된 말씀에서 좋은 힌트를 받았다. 공자의 세계관은 맹자의 세계관과 전혀 다르다. 특히 주자학은 완전한 보편성으로 세계를 설명한다. 사람의 인성도 ‘리’로 설명한다. 맹자의 ‘인’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완전한 도덕성의 ‘인’이다. 그런데 공자의 인은 ‘인’자를 ‘천(千)’이라고 쓰는 것도 있었다. 사람 안에 천 가지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게 인이라는 글자의 원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다중적인 타자가 많이 있는 사람이 군자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항상 군자라는 인격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군자는 형상으로 우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그 다음에는 군자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다. 그런데 너무 우연성에만 갇히면 안되니까 ‘예’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예를 몸으로 실천할 때 거기서 인이 나타날 개연성이 많다는 것이다.”

 

▷김세진 군사학 연구가 “나는 ‘헬조선’이라는 문제를 생각해 봤다. 그 밑바닥에는 ‘분노’가 도사리고 있다. 어쩌면 생명력이 너무 강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너무나 공고해진 기득권이나 상호간 소통의 단절 등에 대해 분노하는 젊은 세대가 이를 비판하지만 되려 답습하는 측면도 볼 수 있다. 분노를 잘 조절해 줄 수 있는 어른도 없고 합리적인 자각을 일깨우는 계기도 없이 그저 상황에 따라 유동한다는 것이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는 역시 주체성의 회복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모두가 올바른 주체의식에 눈이 뜨는 것이 중요하다. 주체의식 없이 그저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가는 것이 문제다. 내가 내 주체에 눈이 뜨게 될 때 다른 주체들도 주체로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엉뚱한 개념을 떠올려 봤는데 ‘너나주체성’ 즉 너와 나의 주체성이다. 너와 내가 주체 대 주체로 만나면 동아시아의 미래가 한층 밝아지지 않을까? 동아시아적 주체성이라는 것이 있을까?”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김세진씨의 ‘너나주체성’은 ‘서로주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몇몇 선각자들이 주체성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끈질기게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본 사람들은 주체성을 포기한 상태가 아닌가?’라는 느낌이 든다. 오늘의 일본에서 가장 큰 문제는 소위 ‘생권력(bio-pouvoir)’, ‘생정치(bio-politique)’라는 것이다. 근대 이후의 정치권력은 사람들의 목숨을 죽이는 권력이 아니라 살리는 권력, 삶의 질을 높이는 권력이다. 그래서 권력 비판이 제대로 성립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일본 정부는 1000조엔의 빚이 있다. 주로 복지 등으로 생긴 것이다. 한 해에 4조엔씩 의료비가 늘어나고 있다. 그게 생권력의 핵심이다. 사람들을 질 좋게 살게 하기 위한 권력이다. 개체생명에 개입해 그것을 질 좋게 오래 살게 하기 위한 권력이니 아무도 반대할 수 없다. 아베 정권이 그것을 잘하고 있다. 우익 때문에 그렇게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이 함께 그런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미야자키 후미히코 지바대학 비상근강사 “그것보다 더 절실한 문제는 돈이 있는 사람은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돈이 없는 사람은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생명차등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오구라 교수께서 일본이 한국에 어떻게 사죄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는데 조선은 야만스러운 나라였지만 일본의 식민지가 됨으로써 문명화 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그와 같은 왜곡된 사명감을 경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생각이 왜곡됐기 때문에 먼저 인식을 바꾼 뒤 반성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높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각 국마다 이유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세대간·가족간 등 다양하게 나타나는 소통부재 즉 불통 때문에 빚어지는 병폐다. 특히 일본의 젊은이들은 조금만 비판받거나 누군가에게 거부당하면 패닉 상태가 되어서 모든 대화를 끊고 자기 내면 깊숙이 틀어박혀 버리는 경우가 많다. 구직활동을 하는데도 한군데에서 떨어지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멋대로 단정해 버리고 자살로 끝을 내는 판국이다. 우주생명에의 눈뜸은 고사하고 개체생명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태가 아닌가?”

 

▷이징 교토대학 대학원생 “일본에 유학중인 중국인으로서 일상적으로 실감하는데 일본의 젊은이들은 대체로 생명력이 약한 것 같다. 살려는 의지나 무엇을 꼭 해보겠다는 의욕이나 또 대화에의 관심 등이 약한 것 같은데 이런 문제도 한·중·일 비교의 시각에서 다룰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집집마다 갖고 있는 세계관과 기술을 파괴시키지 않고 지키려는 것에서 일본의 ‘화’라는 개념이 나왔다. 장인들은 묵묵히 그저 하루 종일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이니까 별로 소통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사고풍토에 난데없이 김태창 박사님이 나타나셔서 함께 대화하고 소통하자고 하니까 크게 당황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한참 동안 어리둥절했다. 지금도 어떻게 수용해야 좋을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화’라는 일본적 가치를 지키면서 ‘통’이라는 한국적 가치를 어떻게 수용하면 좋을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잠깐 생명관에 대해서 나의 견해를 말해 보겠다. 우주생명과 개체생명에 관해서는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제3의 생명에 관해서다. 제3의 생명이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물건 사이, 물건과 물건 사이에 우발적으로 생명이 나타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우주 생명을 이해하기 어렵다. 보편적인 세계관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자기가 뭘 만들 때,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사이에 나타나는 뭔가 생명 같은 것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기억을 굉장히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일상생활 속에서 죽은 사람이나 멀리 있는 사람이 썼던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중국, 한국, 북한 사람들과 화해하기 위해서는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하는 것, 적어도 기억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제일 잘 어울리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오구라 교수와 최재목 교수의 ‘인(仁)’이라는 한자 풀이를 듣고 있자니까 영어의 ‘conceive’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 말에는 ‘임신 한다’는 뜻과 ‘생각이나 사상을 품는다’는 뜻이 함께 있다. ‘몸=신체로서의 생명’을 임신하는 것은 여인에게만 가능하지만 ‘생각=생명(생명의 자각)을 품는다=임신 한다’는 것은 남녀가 함께 할 수 있다. 여기서 한자세대와 한글세대간에 진지한 철학대화가 필요하다. 한자세대에 속하는 나는 생각이라는 우리말을 날 생(生), 깨다를 각(覺)의 합성어로 이해한다. 생각이란 다름 아닌 생명의 자각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한글세대에 속하는 여러분은 ‘생각하다’와 ‘삶의 뜻을 깨닫는다’를 연결해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가령 함석헌 선생이 자주 말씀하셨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의 참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각=생명의 자각’이라는 말뜻이 전제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떤가? 다시 ‘인(仁)’이라는 한자의 뜻을 잘 살펴보자. 최재목 교수의 말대로 사람 안에 사람이 겹쳐 있는 글자모양에서 하나의 생명과 또 하나의 생명의 내발적(內發的) 연대성을 감지할 수 있다면 그 후에 발전·변형된 ‘인’의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글자모양에서 사람과 사람사이에 때때로 나타나는 생명의 ‘간발적(間發的) 연대성’-나는 그것을 활명연대라고 부름-을 각지(覺知)할 수 있다.”

 

▷조성환 원광대 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이번 동양포럼은 개천이 개국에 끝나지 않고 새로운 동아시아의 미래를 함께 연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그것의 내실은 개체생명이 우주생명에 눈이 열리고 개체생명의 내면 깊숙한 곳에 우주생명=하늘=천이 내재하고 있음에 눈 뜨는 것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발전방향토론>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지금부터는 지난 3일 동안의 철학대화를 마무리 짓고 거기서 이루어진 공통의 문제 관심을 앞으로 어떻게 다듬고 키워나갈 것인가를 공구공론(共究共論) 해보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우선 최근에 일본에서 만났던 한 문학평론가의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론이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여는데 의미있는 시사가 될 것 같이 느껴져서 그것에 대한 생각을 야마모토 교시 미래공창신문 발행인으로부터 들어보도록 하겠다. 야마모토 선생도 나와 함께 그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기 때문이다.”

 

▷야마모토 교시 미래공창신문 발행인 “아까 김태창 선생님이 말씀하신 나츠메 소세키는 1906년 아사히 신문의 기자가 돼서 소설을 연재했다. 한국의 심훈도 신문기자로 활동했다. 이 둘의 공통점이라면 과거보다는 미래에 역점을 두었던 개천지향적 작가라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국민작가로 많은 존경을 받는 나츠메 소세키는 최근 연구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굉장히 중시하며 작품 속에 담아냈다는 평을 받는다. 한일합방 시기에 ‘문(門)’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결혼을 하게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에 한·일 병탄 후의 일본과 한국을 투영했다. 그는 자신의 제자에게 자신의 작품은 100년 후에나 이해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 했는데 올해가 딱 100년이 되는 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만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나츠메 소세키는 동시대의 독자들이 자기생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그의 작품을 잘 읽어보면 20년후 혹은 30년후의 관점에서 현실을 비판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 당시의 일본의 국가정책이나 국민의식의 향방을 비판적으로 응시하고 일본의 미래는 거기에 있지 않다는 신념을 음으로 양으로 표명하고 있다. 오늘의 일본이 미래를 미국에서 찾고 군사대국화의 길을 가려고 하는 시류에 대해서도 시사 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철학, 예술, 문학, 역사는 원래는 모두 인문학 안에 있었다. 그러나 대학에서 전문화가 진행되다 보니 따로 따로 갈라지게 됐다. 이제는 함께 아우르는 시각이 필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공공하는 철학’도 ‘공공하는 인문학’이라는 관점을 밑바닥에 깔아왔다. 그래서 최근에는 화가, 음악가, 시인이나 작가의 대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국민작가인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많은 평론이 있다. 재일 한국인으로 동경대 교수까지 역임한 사람이 ‘젊은 사람과 나쓰메 소세키를 함께 이야기한다’라는 책을 내서 나쓰메 소세키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책을 보고 나쓰메 소세키를 교양소설 수준으로 보는데 무언가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나쓰메 소세키를 한·중·일 상관연동의 차원에서 재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 평론가를 만났다. 그의 평론집을 읽고 나쓰메 소세키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됐다. 나쓰메 소세키는 처음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메이지 일본에 등장했고 최초의 일본정부 관비유학생으로 영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 런던에 갔다. 당시 세계의 최선진국이었던 영국, 그리고 그 중심도시 런던에 가서 직접 영국을 학습하고 돌아와서 일본을 선진화시키는데 있어서 최첨단의 역할이 그에게 기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영국의 현실을 직접 목격·체험하는 가운데서 영국이 일본의 미래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유학 도중에 귀국하고 말았다. 청년 나쓰메 소세키는 영국의 현실에 실망하고 그 실망이 신체적인 신경쇠약으로 나타났다. 동경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도록 초빙됐지만 영문학의 연구와 교수를 통해서는 자기가 생각하는 미래가 열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쓰메 소세키는 점점 정부의 기대와는 아주 다른 방향에서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 작가의 길을 택했다. 작품을 통해서 제국일본(帝國日本)이 아시아 침략을 통해서 부국강병과 식산흥업을 이루고 유럽의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강대국이 되어 아시아에 군림하는 대동아공영권이나 팔굉일우의 꿈을 실현시킨다는 것이 결코 일본국을 위해서나 일본국민을 위한 미래상이 아니며 그것은 오히려 국가와 국민을 위태롭게 하는 잘못된 길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계속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이 똑같이 ‘우리의 미래는 미국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 가서 실제로 살아보면 우리의 미래가 미국이 될 수 없겠구나 하는 고민에 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한·중·일이 미국으로 향해 있는 미래 관심을 계속해도 좋은 것인가 라는 문제를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오래전 근대화를 시작할 무렵 아직 새로운 에토스가 형성되지 않았을 때, 이미 나쓰메 소세키라는 한명의 문인이 이 문제를 가지고 고뇌하고 있었다. 또 일본적인 ‘공’과 ‘사’의 문제도 그의 문학 평론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한국적인 공공성과, 일본적인 공공성에 대해 비교 연구했다. 나쓰메 소세키의 글을 보면서 일본적 공공성에 대해서 안성맞춤격인 표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평론집을 보면 그의 문학사상, 그리고 사회사상은 기본적으로 F와 f의 관계 속에서 설명되어 있다. 한민족이나 한 국가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흐름이 F이고 f는 한 사회나 공동체가 어느 정도 의지로 좌우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그의 문학 평론의 체계를 찾을 수 있다. ‘F’, ‘f’는 ‘초점=focus'를 의미한다. F를 ‘공’, f ‘사’라고 할 때 러시아 인형처럼 작은 ‘공’이 큰 ‘공’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공’은 너무나 확실히 보이지만 ‘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멸사봉공’이라는 생각이 저항감 없이 사회에 받아들여졌다는 것도 철절하게 ‘공’ 우선 사회이기 때문이다. 멸사봉공은 결국 개개인의 생명을 대생명(大生命)을 상징하는 천황을 위해서 기꺼이 자진해서 바치고 순사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긴다는 신념체계의 키워드다. 일본적인 ‘공’과 ‘사’는 ‘사’가 ‘공’에 포함 되고 ‘공’은 계층이 있어 작은 공이 큰 공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개인의 ‘사’로서의 개체생명은 국가라는 ‘공’을 위해서 희생되고 그 ‘공’은 결국 천황에 의해서 상징적 가치로 절대화됨으로서 국가이외의 모든 작은 ‘공’들이 가장 큰 공으로서의 천황 또는 그것이 상징하는 일본국민전체의 총의라는 픽션의 제단에 제물로 바쳐지도록 정말 잘 꾸며진 일본적 ‘공사구조론’의 실상이 그 평론가의 평론집에서 거론되고 있다. 나는 나쓰메 소세키가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것을 미국의 남부와 서부에서 체감했다. 미국 안에 들어가서 거기서 살아보면 적어도 미국이 한국의 미래가 될 수 없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에 이른다.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는 자기 자신은 결코 한국이나 중국을 진심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무력으로 한국을 병합하고 중국을 침략하는 것을 시인할 수 없다는 것을 되풀어 강조했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연다고 할 때 한·중·일 사이에 감정적 마찰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서로의 적대관계로까지 악화되는 것만은 막아야 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나는 앞으로 한·중·일의 철학-문학 대화를 열어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타오카 류 도호쿠 대학 준교수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있었다. 그 사건 이후 동북에서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움직일 수 있었는데 그때 나는 김태창 박사님의 배려로 교토에서 개최된 포럼에 이어서 고베에서 개최된 포럼과 한국 안동에서 열린 포럼에 계속해서 참석하게 됐다. 특히 안동에서 ‘개벽’과 ‘다시 개벽’이라는 말을 접하게 됐고 그것이 지진을 겪은 도호쿠 지역에 가장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장지영 선생님께서 한·중·일이 각각 고민을 갖고 있는 것이 오히려 희망이라고 말씀하셨다. 일본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을 한국의 젊은이들도 안고 있고 왕져 선생님을 통해 중국 청년들도 이와 비슷한 여러 문제들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센다이 포럼에서도 동일본 대지진과 세월호 참사가 주제가 됐다. 거기서 함께 깨달은 바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갈 수 있기 위해서 우선 한·중·일의 시민들 사이에 공고공환(共苦共?)의 연대의식이 공유되는 것이 출발점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는데 이런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문학 작품들을 살펴보는 것도 한중일의 공감대 형성에 크게 이바지할 것 같다.”

 

▷박맹수 원광대 교수 “지난 4월 원불교 100주년, 원광대 70주년을 기념해 심포지엄을 열었다. 현재 상태로 ‘동아시아의 미래는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동양포럼과 비슷한 문제의식이 밑바탕에 있었다. 동학의 꿈이 100여년전에 나왔는데 미완성으로 끝나버려 현재 동아시아의 미래문제로 남북분단의 문제가 남아있다. 분단의 문제는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중·일이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동아시아의 미래문제로 9월 12일과 19일 ‘쿵’하는 충격과 함께 지진이 연이어 발생했다. 하지만 국민안전처는 ‘국민불안처’라고 불릴 정도로 안일한 대응을 보였다. 여러 가지 대재해가 올 수밖에 없는 시기 ‘공고공환=동고동락’의 유대를 조성하고 그것이 동아시아의 ‘활명연대’로 발전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다시 개벽’의 실천 과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김태만 해양대학교 국제대학원 원장 “나쓰메 소세키는 한국 사람들이나 중국사람 모두 잘 알고 있는 작가다. 나쓰메 소세키와 중국의 노신을 비교하는 논문도 많이 있다. 그래서 노신과 나쓰메 소세키의 유사점을 상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노신은 센다이 의학 전문대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생물학 시간 교수가 보여준 환등기 사진 속에 생물과는 관계없는 이상한 사진 한 장을 보게 됐다. 그 사진은 만주에서 일본군이 중국인을 처형하는 장면이었는데 그 옆 또 다른 중국인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보고 있거나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노신은 ‘내가 의사가 된다면 한 생명은 살릴 수 있겠지만 병든 사회는 살릴 수 없겠다’고 생각해 의학의 길을 버리고 문학창작을 하게 됐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문·사·철은 원래 하나였지만 분과적으로 갈라놓다보니 대화가 단절됐다. 앞으로는 통섭이 필요하다. 문학은 이 시대를 치유할 수 있는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신 본인은 세계주의자였음에도 나쓰메 소세키의 ‘문’과 같은 작품은 없었다. 그러나 노신은 ‘광인일기’의 마지막에서 ‘아이들을 구하라’라고 외치고 있다. 중국에 거주하는 중국인으로서 노벨문학상을 최초로 받은 모옌이라는 작가가 있다. 그의 작품 ‘붉은 수수밭’은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일본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서술돼 있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 모두 상대국과 관련된 작품들이 발굴돼야 한다. 조금 전 나온 ‘공고공환’을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가를 더 논의해야 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이 내미는 손이었다. 그 연대의 느낌, 거기에서 소위 말하는 공고공환을 통해 스스로 깨어날 수 있다. 그렇게 돼야 화해가 가능하고 활명유대도 구축할 수 있을 것 같다.”

 

▷류 지엔 훼이 국제일본학연구센터 교수 “한국과 중국은 침략을 당하는 입장이었다. 침략하는 입장이었던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 같은 작가는 없을 것이다. 일본과 손잡고 서구 제국주의와 맞서자고 제안한 사람은 있다. 장대용이라는 사람이다. 동아동맹론에 관심이 많았다. 나쓰메 소세키가 만주에 갔던 것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다. 그러나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이 바뀌게 된 계기가 만주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만주에 갔다 온 후의 작품들을 보면 그동안 없던 인물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중국인이나, 중국을 다녀 온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거기에는 근대 일본을 비판하는 메시지가 담겨졌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에는 고등인물상만 있었는데 하등 인물상이 만주여행 후에 점차 나타나게 된다. 만주의 실망을 직접 목격하고 나서 새로운 문제의 지평에 눈이 뜬 것 같다.”

 

▷텐 베니아민 교토대학 대학원생 “러시아에는 바실리 그로스만이라는 작가가 있다. 바실리 그로스만은 스탈린 체제를 비판했던 사람이어서 1980년대에 들어서야 출판이 가능했다. 그 작품을 한국어로 직역하면 ‘인생과 문명’이다. 스탈린그라드의 전투에 참여한 한 군인이 비행기에서 폭탄이 떨어지자 계속 도망가는 장면이 있다. 누군지도 모른채 남의 손을 잡고 같이 도망가는 장면도 나온다. 그 사람은 알고보니 적의 파시스트였다. 이러한 것들은 이데올로기나 민족에 관계 없이 나도, 적도 전쟁의 희생자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들이 상당히 인상 깊었고 모두 인간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 이웃이니까 도움을 줘야 하고, 서로 도와주는 극한을 넘어서는 인간의 실천을 그린 바실리 그로스만의 ‘인생과 문명’은 우리들에게 적우관계(敵友關係)를 넘어서는 활명연대를 느끼게 해주는 러시아인의 작품이다.”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이제 포럼이 끝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 ‘활명연대(活命連帶)’만은 기억해주길 바란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갈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다. 내가 직접 체험한 사실에서 나온 새 어휘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중국의 한 학술회의에 참석했는데 먹은 것이 잘못됐는지 끝도 없이 계속되는 격심한 설사 끝에 극도의 탈진상태에 빠져 거의 의식 상실된 적이 있다. 그때 나의 참혹한 모습을 본 한 미지의 중국인이 상당히 먼 북경까지 택시로 옮겨서 소위 중일우호병원이라고 불리는 좋은 병원으로 가서 여러 가지 필요한 수속을 밟고 입원시켜주고 돌아갔다. 나는 지금도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때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목숨이 아주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을 것이라고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의식을 되찾았을 때 벽시계가 새벽 2시를 알리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인 여의사 한분이 내 침상 옆에 앉아서 나를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 여의사는 실은 중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해줬다. 그 여의사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남만주 철도주식회사의 고급간부였다는 것이다. 그 일본여인은 아버지가 중국인민에게 저지른 갖가지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부모의 간절한 만류를 물리치고 16살 처녀의 몸으로 홀로 중국에 남아서 모택동이 이끄는 팔로군에 자진 입대해 인민해방군에서 봉사했다는 것이다. 그 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되고 모택동 주석이 그녀에게 ‘당신의 봉사에 감사한다. 외국에 가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가 될 수 있도록 중국 인민의 이름으로 후원하겠다’고 말했지만 일본 군부와, 아버지 세대가 저지른 죄를 속죄할 수 있도록 인민에 봉사하는 길을 가게 해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정식으로 의사가 되어 중국인민의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 한국인이 일본에서 활동하다가 중국에 와서 병이 들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든 살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자진해서 나의 치료를 담당하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밤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했는데 다행히 위험한 고비를 넘을 수 있어서 기쁘다는 것이다. 그녀의 간병과 이야기에 너무 감동 받은 나는 일본에 돌아와서 그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교토포럼에서 강연할 수 있도록 초청도 했다. 영화를 위한 막바지 교섭을 하던 중에 중국에서 갑자기 전보가 왔다. 그녀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영화가 완성되면 그 타이틀을 ‘활명연대’라고 이름 짓고 그것을 가지고 한·중·일 활명연대의 스토리텔링을 펼치려고 했다. 한 사람의 한국인의 병든 목숨을 살리려는 중국인과 일본인의 생명을 아끼는 마음이 공진공명했고 그래서 나는 다시 건강을 회복 할 수 있었다. 거기서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는 활명연대라는 시민주도의 공동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소신을 갖게 된 것이다. 내게 있어서 활명연대는 이론적인 가설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떤 너무나 구체적인 실체험에서 나온 나의 실심(實心), 실학(實學), 실지(實地)의 성과다. 활명연대의 중요성은 알겠지만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는 젊은 세대에게 그것을 실감하지 않고 일생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평온무사한 일생생활이 계속되는 곳에서는 구태여 우주생명에 눈뜰 필요도 없고 그런 계기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나 예상하지도 못했던 생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절망의 심연에서 불현 듯 우리 모두가 우주생명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는 경우가 있다. 동일본대지진이나 세월호 참사를 겪은 당사자들이나 그 가까운 곳에서 목격 체험했던 많은 사람들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끝으로 오구라 교수가 ‘기도하는 마음’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나를 치료했던 중국병원의 일본인 여의사는 응급조치를 취해놓고 내 곁에 앉아서 밤을 새우면서 그저 나의 건강이 회복되길 기도했다는 것이다. 의사의 의료행위만으로 생명이 구해지는 것이 아니고 최종적으로는 한 없이 큰 생명력이 작동해서 환자개인의 생명력을 소생시켜야 되고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병실에서 이틀밤낮을 그러고 그 후에도 북경시내에서 세 번에 걸쳐서 그 여의사와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을 지금도 아주 소중하게 마음속에 담고 있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여는 일에 그 여의사도 기꺼이 동참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여러분과 함께 그녀의 뜻을 기리고 싶다.”

<정리/조아라·박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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