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묘순 시인·국학자료원 자문위원

충북 남부지방에는 다른 지방에서 볼 수 없는 언어가 존재한다. 바로 ‘기여’라는 방언이다.

이는 ‘그렇다’ 혹은 ‘그러하느냐?’ 또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라는 뜻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충북의 남부지방은 통상적으로 중부 방언권인 충청방언에 속한다. 그런데 충청방언에서 찾기 힘든 언어 ‘기여’는 충북 남부지방에서만 유일하게 쓰인다.

대부분의 방언은 이미 사라졌거나 잊혀져 쓰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부지방 중 보은, 영동은 젊은이들이 ‘기여’ 사용 한계선을 긋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 그 지방 사람들의 구술 증언이다.

그러나 옥천에서는 ‘기여’라는 말이 청소년이나 어린이들도 현재 사용하고 있다. 옥천지방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기여’의 소통 체계는 특수하다. 그만큼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기여’는 발화자의 발화 의미를 청자가 다시 확인할 때 쓰인다. 예를 들어 ‘OO이 장군이 되었다’라는 발화에 대한 청자의 재차확인이 필요할 경우 ‘기여?’라고 확인을 한다. 확인 과정인 이때 끝은 올려 발음하고 ‘여’를 세게 발음하게 된다. 또 ‘기여?’를 짧고 단호하게 발음하면 재차 확인의 의미가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나 ‘기~여~?’라고 길게 늘여서 발음하면 의구심을 포함한 뜻밖의 경우임을 나타내게 된다.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게 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또 ‘기여.’라고 평서문 어미처럼 발음하게 되면 화자의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는 수긍의 의미로 의사소통을 가능케 한다. ‘OO이 옳은 것이냐?’는 화자의 질문에 대한 청자의 대답이 긍정의 의미인 ‘옳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처럼 ‘기여’는 언어학의 운율적 요소인 소리의 세기, 높이, 길이에 따라 의미 분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언어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쓰인다. 문자는 청각적 언어를 시각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런데 충청도 중에서도 남부지방의 옥천 방언인 ‘기여’는 특이한 형태로 존재한다. 즉, 이 방언은 언어의 운율적 요소를 안고 있다. 이 요소로 인해 다양한 의미 분화를 일으키고 있다.

‘기여?’, ‘기~여~?’, ‘기여.’의 운율로 화자와 청자의 상호의사소통력을 확연히 한다. 이는 짧은 2음절의 언어가 지니는 독특한 구조다. ‘기여’와 같은 방언은 어느 사회에서나 발견되는 의미구조는 아니다.

언어는 방언의 상위 개념이고 방언은 언어의 하위 개념이다. 그러나 한 언어권 안의 방언들 사이가 의사소통이 안 될 정도로 거리가 먼 사례가 있다. 중국이나 제주도 방언처럼 큰 대륙이나 교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섬 지역에서 이러한 사례들은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기여’같은 경우는 한국의 육지인 충청도 옥천에서 나타난다. 참 보기 드문 예다.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옥천 사람이 가장 의사소통에 장애를 일으킨 용어가 바로 ‘기여’라고 한다. 17학번 새내기들이 타지역으로 이동했다. 옥천 선배들이 그랬듯이, OT를 마치고 온 녀석들이 ‘기여’때문에 한바탕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실토한다.

방언을 쓰면 촌스럽고 비교양인이라는, 또는 다소 하층민이라는 인상을 더러 받기도 한다. 그러나 세련되고 우아해 보이는 표준말에 주눅들 방언은 아니다. 방언은 그 지방의 정서나 사상을 가장 잘 반영한 아름답고 소중한 언어의 보고(寶庫)다.

우리는 이 방언에 대한 보고를 소홀히 방관하거나 홀대하지 말아야 한다. 방언은 그 지방의 물적·정신적인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기여’는 충북도 남부지방의 토박이들이 전래적으로 써 온 방언이다. 그러나 ‘기여’는 생성, 발전, 소멸의 단계를 거치며 지금보다 더 왕성하게 쓰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언어의 사회성이나 역사성에 힘입어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어떠한 상황을 설정해보아도 방언은 그 지방 사람들의 고유 정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학문적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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