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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5차 국제포럼 ‘한·중·일 회의’
동양포럼 5차 국제포럼 ‘한·중·일 회의’
  • 김재옥·신홍경·박장미·임선희
  • 승인 2017.12.10 2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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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희·나츠메 소세키·루쉰의 비교 조명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
동양일보가 주최하고 동양포럼운영위원회(위원장 유성종·전 꽃동네대 총장)가 주관한 ‘동양포럼-한·중·일 회의 Ⅴ’가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조명희·나츠메 소세키·루쉰의 비교 조명’이라는 주제로 지난 8월 13일 개막해 사흘 간의 열띤 토론을 마치고 15일 폐막했다. <사진 조석준>

동양포럼 운영위원회(운영위원장 유성종)은 지난 8월 13~15일 청주대 영빈관에서 5차 국체포럼 ‘한·중·일 회의’를 개최했다.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조명희·나츠메 소세키·루쉰의 비교 조명’을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는 한·중·일 3국을 대표하는 학자, 예술인, 젊은 지식인들이 참석해 열띤 논쟁을 펼쳤다. 동양일보는 이번 포럼의 내용을 요약·정리해 3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권희돈청주대 명예교수
김영미문학평론가
김용환충북대 교수
김주희침례신학대교수

 

 

 

 

 

 

 

 

 

김태만한국해양대교수
김태정한국외대 명예교수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이남희원광대 교수

 

 

 

 

 

 

 

 

 

이동건영남 퇴계학회 이사장
장현정도서출판 호밀밭 대표
조성환원광대 원불교연구원
최재목영남대 교수

 

 

 

 

 

 

 

 

 

다케나카 히데토시전 도쿄대출판회 이사
야규 마코토원광대 원불교연구원
야마모토 쿄시미래공창신문 편집인

 

 

 

 

 

 

 

 

 

Ⅰ. 8월 13일 오전회의

혼·영·영혼 영성의 뜻을 새밝힘한다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오늘부터 사흘간 열리는 국제회의에 대한 취지를 말씀드리기에 앞서서, 먼저음악을 함께 듣겠습니다. …(노래를 듣고)… 지금 들으신 노래는 1920년대 나라를 잃은 가운데서도 큰 뜻을 품고 소련으로 망명했던 포석 조명희 선생의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영혼이 담긴 자작시에, 재소련 1세대 음악가 박영진씨가 곡을 붙인 것입니다. 당시 고려인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조국을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회의장 뒤쪽에는 한국의 한 젊은 여성 화가가 그린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 가운데 있는 것은 조명희 선생의 ‘낙동강’을 읽고 그린 그림이고, 왼쪽에 있는 것은 나츠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 그린 것입니다. 또 다른 쪽에는 루쉰의 ‘아큐 정전’을 읽고 그린 작품이 있습니다. 영혼의 탈식민지화를 추구했던 한국의 조명희, 일본의 나츠메 소세키, 중국의 루쉰을 함께 견주어 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함께 전시하였습니다. 문학과 철학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가운데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쟁취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살았고, 몸과 마음과 넋을 몽땅 부어넣고 작품 활동을 했던 한·중·일의 국민작가를 비교 조명해 보자는 뜻으로, 2017년도 국제학술회의를 준비하였습니다. 먼저 김태정 한국외대 명예교수님의 사회로 첫째 날 오전회의를 열겠습니다.”

 

▷김태정 한국외대 명예교수 “발제하는 시간을 줄여 더 많은 토론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발제의 자세한 내용은 동양일보에 게재된 내용을 참조해 주시길 바랍니다. 먼저 야규 마코토 연구원의 발제 내용에 대한 질문을 받겠습니다.”

 

▷김 주간 “저는 야규 마코토씨에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발제문을 보면 영, 혼, 영성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보통의 일본사람들은 혼, 영, 또는 영혼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야규 마코토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원 “일본사람들이 가장 많이 참고로 하는 광사원(廣辭苑·사전)에 의하면 혼(魂=타마시이)이란 동물(인간도 포함)의 육체 안에 있으면서 마음의 작용을 주재한다고 생각되는 것으로서 흔히 육체를 떠나서도 존속한다고 믿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靈)이라든가 영혼(靈魂)이라는 말들과 혼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 주간 “그래서 일본말로 ‘혼의 탈식민지화’라고 하면 주로 개개인의 내면적 차원의 식민지화된 상태를 벗어난다는 뜻이 강합니다. 그러나 ‘영혼의 탈식민지화’라는 이 포럼의 주제 선정은 ‘혼’의 내면성 중시를 넘어서는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영’은 ‘혼’처럼 개개의 생명체에 내재하는 것(物)이 아니라, 개체와 개체 사이에 생성·작동·변화하는 일(事=사건)이고, 특히 그 동태적 측면에 역점을 두는 경우에 ‘영성(靈性)’이라는 말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이해할 때 비로소 개개인의 탈식민지화를 넘어서서, 공동체·국가·세계가 부분적으로나 전체적으로 무엇인가에 의해서 식민지화된 상태에서 해방되어 자유·자립·자존을 획득·확보·향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와 겨레가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서 정치적·법률적인 의미에서 주권과 독립을 획득했다고 하지만, 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는 곳곳에 종속과 의존현상을 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과거에 억매인 영혼의 탈식민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저 자신의 솔직한 소견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저만이 절감했던 문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일찍이 중국에서도 루쉰이, 일본에서는 나츠메 소세끼가 바로 이 문제를 가지고 악전고투하였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조명희 선생께서도 이 문제를 작품화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태정 교수 “마침 중국의 베이징대학에서 루쉰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태만 국립한국 해양대학교 교수가 이 자리에 계시니, 루쉰에 대하여 한 말씀 해주시기 바랍니다.”

 

▷김태만 한국해양대 교수 “루쉰은 제국주의 식민성, 봉건에 의한 식민성 등 이러한 것들에 의해서 한시도 뛰쳐나오지 못하는 중국인민들에게 아주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아큐정전을 썼습니다. 아큐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주변에 둘러서 있는 중국인들의 눈빛을 통해 봤던 모습입니다. 사실은 근데 저는 아큐를 각성시킨다는 것은 결국 국민 전체를 각성시킨다는 것인데 자기 성찰과 주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데 이것을 중국인민들의 눈동자 속에서 봅니다. 자기를 잡아먹으려 했던 승냥이의 눈빛이, 나를 형장으로 보내는 중국 인민들의 눈 속에 들어있더란 말입니다. 루쉰이 유학을 포기하게 되는 궁극적인 이유가 청일전쟁, 러일전쟁 때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하는 인민의 사진 한 장입니다. 이 사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루쉰은 의학에서 문학의 길을 걷게 됩니다. 무고하게 동포가 처형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팔짱을 끼고 구경만하는 인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의학을 전공한다면 중국 동포 한 두 사람의 병은 치료할 수 있어도 천년동안 누적된, 박제된 의식은 치료할 수 없구나 하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루쉰이 ‘더 멍청하고 무지몽매한 중국인들의 영혼을 철 무쇠로 만든 철장 같은 공간에서 끄집어내지 않고서는 중국인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던 통렬한 자기 성찰로 아큐정전을 창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부산에서 청주로 올라오면서 칠곡 휴게소에서 머리띠와 통일된 조끼를 입은 일군의 사람들을 봤습니다. ‘무죄석방’이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무죄 석방의 대상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의문을 가졌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하는 것은 5년 임기의 심부름꾼에 불과한데 그 사람을 ‘애국’이라는 의미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마 봉건시대가 주입한 관념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봉건적인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큐정전은 여전히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아큐정전이 아직도 많이 읽히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식민주의, 봉건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태정 교수 “제가 알기에는 루쉰이 자국민의 노예근성을 통렬히 비판하고 자주·자립·자활의 중국인상의 확립을 지향했다는 것입니다. 개회식 행사 때문에 오전회의가 시간적으로 단축되었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오전 토론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Ⅰ. 8월 13일 오후회의

출판업과 포석을 통해 본 영혼의 탈식민지화

 

▷조성환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원 “이 자리에는 김태창 선생께서 주도하신 공공철학 교토포럼 철학대화의 성과를 전 20권의 ‘시리즈 공공철학’으로 정리 출판하신 다케나카 히데토시 전 도쿄대학 출판회 상임이사께서 참석하여 계십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다케나카 히데토시 전 도교대학 출판회 상임이사 “감사합니다. 청주에는 네 번째 방문하고 있는데, 모두 김태창 선생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소개받은 대로 저는 출판업계에 40년 이상 종사하였습니다. 특히 청주 같은 경우에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있어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인 직지심경이 있는 것이 정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포럼에서도 영혼의 탈식민지화 그리고 미래공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저도 긴 시간동안 출판업에 종사하면서 영혼의 탈식민지화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출판업이 할 수 있는 역할 중에 하나로 중요한 것은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실제로 모두가 다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서 포럼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세대를 뛰어넘어서 계속해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영구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법론에 있어서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는데 출판업에 있어서도 공공성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러한 것이 담보가 되어야 우리가 앞으로 한발한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포럼에서 다루어지는 것처럼 조명희, 루쉰이 있는데 이러한 사람들도 영구혁명을 향해 각자 발걸음을 걸어온 분들입니다. 이 포럼을 통해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가 더 높은 차원에서 대화가 되고 나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야마모토 쿄시 미래공창신문 편집인 “동경대학 출판회에서 나온 공공철학 총서를 출판하는데 있어 선생님들의 토론내용을 문서화하는 일에 제가 참여했었습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저도 공공철학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출판물이 있지만 단순히 출판물에만 그치지 않고 한국·중국·일본이 함께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 가능해졌을 때, 이 출판물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래공창신문을 2012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한국과 일본의 민중들이 새로운 차원의 철학을 열고 그것을 통해 미래를 새롭게 열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과거 일본의 죄악을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반성과 더불어 함께 미래를 열고자 이런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이런 미래공창이라는 말은 기존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았지만 유교와 불교를 중국과 한국을 통해 전해 받아 근대를 초월하는 새로운 미래를 열고자 이렇게 사용했습니다.”

 

▷조 연구원 “제가 알기로는 두 분 다 출판업에 종사하시면서도, 두 분이 각자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다케나카 선생님은 출판하는 것은 공공하는 것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계신 것 같고, 야마모토 선생님은 미래공창이라는 신문의 이름으로 다 알 수 있듯이 신문을 통해 미래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철학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마침 이 자리에 출판업에 종사하시는 도서출판 호밀밭의 장현정 사장님도 와 계시니, 모처럼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장현정 도서출판 호밀밭 사장 “저는 사회학을 전공한 사람입니다. 아무래도 특정한 시공간적 맥락에서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 익숙하다보니까, 오늘 사실 첫 시간에 영혼이라는 개념이 익숙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흥미롭게 듣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김태만 교수님의 루쉰에 관한 책이 8월 18일부터 시중에 유통이 됩니다. 교수님의 권유를 받고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도 출판을 업으로 하고 있지만, 글을 쓰는 분들의 영혼이 담긴 책을 펴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김태만 교수님과 함께 ‘철학 있는 도시·영혼이 있는 기업’이라는 책을 엮어내기도 하였습니다. 영혼이 통하는 대화를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영혼의 갈증을 느껴서입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다케나카 상임이사 “장현정 사장님의 이야기에 매우 공감합니다. 저도 40년 동안 저 영혼이 담긴 책을 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또 저는 현재의 세계에서 미래가 어떠한 것들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가를 생각해왔습니다.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생각을 사회에 발신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편집자의 입장에서 항상 열려있지 않으면 이런 작업을 할 수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정반대의 의견이라도 편집해야하는데 이런 일들을 통해 사회에 다양한 의견을 발신하고 이러한 발신으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야마모토 편집인 “물론 출판을 함에 있어 어떤 권력이나 국력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을 기르는 것은 무엇보다 앞세우는 근본과제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왜 영혼이 자유로워야 하는가?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라야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 수 있는 힘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에 매인 영혼은 과거나 현재에 묶여 미래를 여는 지평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그래서 영혼의 탈식민지화가 이 시대의 지상과제요, 거기서 미래공창의 원동력을 함양시키려는 것이 미래공창신문의 발행취지입니다. 이것을 그림을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 드리면 이런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맨 왼쪽에 있는 그림은 나츠메 소세키의 그림입니다. 여기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저는 나츠메 소세키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일본에는 미래가 없다는 소세키의 생각이 이 그림에 반영된 것 같습니다. 루쉰의 경우에는 혼자 있는 늑대를 통해 루쉰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세키의 경우에는 어둡고 절망적인데 반해 루쉰의 경우에는 붉은 색조로 불타는 열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운데 그림입니다. 가운데 그림은 조명희 선생의 낙동강을 읽고 그린 그림입니다. 대지를 빼앗긴 민중들을 표현하면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나무를 표현했습니다. 김영미 시인의 시를 읽고 그린 그림을 보면 여기서 표상하고 있는 것도 새로운 미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미래를 연다고 했을 때 중심축이 되는 것이 민중의 생명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한·중·일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고자 신문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이동건 국제퇴계학회 영남지부 이사장 “다케나카 선생이나 야마모토 선생이나 장현정 선생이 출판을 통해서 영혼이 담긴 책이나 신문을 세상에 내놓는 데 진력했다는 말씀에 감명 깊었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토건업을 하면서, 퇴계학의 세계화를 추진해오고 있습니다만, 퇴계연구가 퇴계선생의 영혼을 상실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왔습니다. 며칠 전 안동에서, 외천활리(畏天活理)하는 영성의 인문학으로 퇴계학을 개신하겠다는 취지의 국제학술회의를 가졌던 것도 그런 뜻이 담긴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김주희 침례신학대 교수 “저는 문학작품을 읽을 때 시대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과제라고 하는 삶의 문제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늘 그 사람의 삶의 현장에서 변화하는 것입니다. 저는 특히 조명희 선생님의 작품을 읽을 때 이 사람이 당대에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갈등을 겪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여기서는 저는 2000년대 이후의 작품들과 상당히 유사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누가’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2013년에 이호섭 문학상을 탄 작품입니다. 이 소설을 보면 주인공은 집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소설 속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집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노력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 늘 밖으로 밀려나는 것입니다. 모든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갈등을 하고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면 지금 이 시대에 조명희 선생님의 작품이 어떻게 읽힐 수 있을 것인가라는 측면에서 연결점이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난의 문제는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인류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식민시대일 때에는 이분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대라는 것은 반봉건·반외세를 뜻합니다. 여기서 반외세는 내 나라의 운명을 다른 민족이 좌우하게 되는 것이고 반봉건은 내가 내 공동체 안에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을 뜻합니다. 이 시기에 일본이라는 나라가 폭력을 가지고 봉건을 해체시키는 존재로 다가옵니다. 당시 일본은 매혹적이면서 폭력을 뜻합니다. 그 때의 갈등은 내가 유혹에 넘어가거나 저항하거나로 나타납니다. 이런 갈등을 조명희 선생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살펴보면 내 입장에서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입장에서 현실을 살피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나의 발견이 아니라 우리의 발견을 중요시했습니다. 우리를 규정해야만 살 수 있게 하는 타자를 통해 우리를 발견하고 우리를 확장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고 보니까 집이 없던 것입니다. 집이 없다는 것은 생활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이 없다는 것은 거주의 자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이분이 뭐라고 이야기 하나 살펴보면, “자연을 맞추어 우리의 몸과 영혼에 서로 맞는 집을 지어 갖던지 옮겨 고쳐짓던지 하여야 할 것이다. 소수를 말하지 말고 전체의 우리를 놓고 보라. 남의 집을 그대로만 가지고 살지 못하게 됨은 우리 과거 생활의 실패를 보며 현재 생활을 놓고 보아도 알 것이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살집을 장만하지 못하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집이 없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민지 시대에 집이 없거나, 님이 없거나, 님과 집과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의 문학작품은 님이 없고, 살집이 없고, 내가 가야할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이분도 똑같이 느꼈던 것입니다. 이분이 집이 없다고 하는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해결하는 방안은 내안에서 해결할 수도 있고 직접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이분은 그 중 직접 실천하는 것을 좋아하셨던 분이였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최근에 작성된 황우사보연보에 따르면 1921년 1월 17일에 조명희, 정재달 등이 의거단을 조직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분이 고쳐짓든지 옮겨짓든지를 굉장히 중요시하였다는 것을 문학작품 속에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작가와 관련해 이야기하면 소설 속에서 장소가 늘 한 장소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늘 이동을 합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우리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어떻게든 개척해보고 싶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자유를 향한 우리의 확대·확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분의 작품이 더 잘 보일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민족 혹은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문학을 보면 분명 이점이 있지만 이는 자칫하면 제국주의의 대타담론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가치를 중심으로 문학작품을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분의 작품세계를 더 넓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분은 자유주의자라고 볼 수 있고 그 자유를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운명을 통해서 누리려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김영미 문학평론가 “저는 조명희 선생의 작품을 읽으면서 일제강점기의 우리겨레에게 일어난 가장 우려되는 시대고(時代苦)는 무엇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할 수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생명의 고갈’이라는 조명희 선생의 수필에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명회 선생에 의하면 생명은 빛이요, 열이요, 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겨레가 식민통치의 잔혹한 억압과 박탈 속에서도 근원적인 생명력을 보존함으로써 민족의 몸과 마음과 넋을 지탱하고 때가 되면 싹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도록 하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생명의 고갈’만은 막아야 한다고 역설(力說) 역행(力行)하셨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권희돈 청주대 명예 교수 “저는 작가중심이나 작품중심이 아닌 독자중심의 연구를 해왔습니다. 세상에 고정된 진리가 없듯이 작품도 열려있지만 가장 많이 열려있는 것은 독자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는 작품이 나온 시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조명희 선생님이 1938년에 세상을 떠나고 1928년에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지만 그 시대의 독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70년 80년이 지난 이 시대의 독자도 있고 한국의 독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으로 확대되어 중국의 독자도 있고 일본의 독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학자들이 조명희 선생의 작품은 민족주의적 리얼리즘이다, 낭만적 리얼리즘이다, 사회주의적 소셜리즘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렇게 규정해버리니까 다른 사람들도 전부 다 그렇게 인식해버리게 된 것입니다. 독자에게 갈 수 있는 문이 다 닫혀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김태창 선생님으로부터 시작해서 공간적으로 확대되고 심층적으로 심화되면서 새로운 독자층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 속에 있는 것을 자꾸 캐내려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자가 어떤 고정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거기서 새로운 것을 캐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독자가 필요하고 철학자도 필요하고 다양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태껏 우리나라 논문학판이 학계중심으로 되어 같은 말들이 반복되고 문학을 계속해서 죽여 왔고 결국에는 학교교육이 문학을 완전히 죽여 버렸습니다. 그것이 전부 다 혁명가, 학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조명희 선생이 새롭게 태어나면서 조명희 선생의 논문학 지평이 새롭게 열리게 됐습니다. 이게 대한민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서울도 아니고 청주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로컬리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의 식민지가 아닌 이 지역의 지역주의를 문화를 통해 가장 옳게 만들어내는 시발점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지역의 로컬리즘을 올바르게 살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문화입니다. 문화 중에서도 중요한 것이 예술입니다. 예술 중에서도 중요한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로 만들어진 것을 리듬으로 표현하면 노래가 되는 것이고 언어를 가지고 그림으로 표현하면 미술이 되고 언어를 가지고 동작으로 표현하면 무용이 되는 것입니다. 언어라고 하는 것이 시발점이고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언어로 된 문학을 가지고 이 지역의 아이덴티티를 충분히 살려낸다고 하면 이게 바로 지방이라고 하는 경계를 해체하면서 청주와 서울을 같은 가치를 가진 것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청주에도 훌륭한 문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정지용, 신채호, 손병희 등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조차 이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몇몇 사람이 준비해가지고 와서 그것을 앵무새처럼 읽고 토론하는 것이 끝이었습니다. 지금은 다시 여기에서 새로운 토론의 장이 열리고 여기서부터 청주라는 지역의 로컬리즘이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남희 원광대 교수 “저는 개인적으로 조명희 작품 중에서도 ‘낙동강’이라는 작품을 좋아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기록화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가 역사를 공부할 때는 과에서 만든 역사자료라든지 개인이 만든 일기라든지 신문자료라든지 이런 것을 가지고 어떤 사실을 구성합니다. 그렇게 도출된 내용들이 바로 조명희 선생의 소설에서는 오롯하게 남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어떤 기록화적인 측면에서 조명희 선생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특히 조명희 선생 같은 경우는 1894년에 출생을 해서 1938년에 사망을 하게 됐습니다. 조명희 선생 작품 ‘전지’를 보게 되면 거기서 ‘광장’으로 유명한 최인원 작가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1990년대에 와서나 알려졌으며 문학사에서 질문이 된 생애다”라고 표현했습니다. 1894년은 조선의 역사가 크게 변화한 시기입니다. 민중을 기만했던 동학농민혁명운동, 갑오개혁 등이 있었습니다. 그 중 갑오개혁에서 주목되는 것은 신분제의 철폐입니다.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광종4년에 만들어졌던 과거제도가 폐지되게 됩니다. 그런 시기에 조명희 선생이 태어났다는 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 유의미한 의미를 주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역사학자들은 일제강점기에 많은 인물들에 대해서 평가합니다. 친일, 민족, 애국 이런 여러 가지 표현을 하고 있는 데 저는 수업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통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을 때에도 우리 후손들이 당신은 통일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였느냐고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다시 말해서 조명희 선생께서는 그 시대의 치열한 삶을 보여주고 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서울에서 고교를 다니고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고 다시 경제난으로 돌아오고 창작활동을 했습니다. 그 와중에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낙동강입니다. 1920년대 사회적 상황이라는 것은 잘 아시겠지만 3.1해방운동 이후에 문화·정치시기로 정책이 바뀌는 시기입니다. 문화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구금되어지고 분위기가 더 어두워진 시기에 조명희 선생이 남긴 작품이 ‘낙동강’이기에 우리가 더 집중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낙동강’을 읽기 전에 왜 이 사람이 ‘낙동강’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생각해보면 거기에 답은 1928년 1월 14일 동아일보에 쓴 단선수필이라는 작품에서 나옵니다. 여기서 조명희 선생은 우리는 언젠간 갑자기 도망가고 싶을 때 나는 부산이 생각난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사람 같은 경우는 마산, 목포, 인천, 원산 등을 언급합니다. 이 지역의 공통점은 바로 모두 바다와 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강과 바다, 확장되어지는 개념을 알 수 있습니다. 1월 14일자 동아일보에서 나는 올해만도 두 번이나 부산을 다녀왔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낙동강과 맞물려지는 부분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 다음에 아까 언급됐던 여주인공 로사의 경우 그 여자가 다시 한 번 망령을 하게 되는 곳이 구포역입니다. 실제 구포역에서 올라가는 기차를 타게 되면 옆으로 강변이 나오는데 그 강이 바로 낙동강입니다. 발제문에 나오는 표현을 보시면 당시 1920년대의 사회상을 잘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낙동강민요라든지 노래라든지가 조명희 선생의 소설을 보여주는 또 다른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모국어가 가지고 있는 표현이라든지 혁명가는 생무소주책 같은 마음씨를 가져야 한다든지 하는 이런 표현은 그 당시 언어학적으로도 중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는 낙동강의 여주인공인 로사입니다. 로사는 백정의 딸입니다. 1894년에 과거제도가 폐지가 됐습니다.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신분제도 폐지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제도는 양반이상만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920년대 바로 그 백정의 딸 로사가 고등학교를 나와서 여훈도가 됩니다. 훈도란 조선시대 때 교수와 훈도가 교육직의 명칭이었습니다. 불과 30년 전의 기록이 조명희 선생의 소설에 남아있는 것입니다. 비록 조명희 선생이 소련으로 망명했지만 마지막 대목에서 ‘필경, 그도 머지않아 잊지 못한 이 땅으로 돌아올 날이 있겠지’가 조명희 선생의 생각을 대변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다음으로 특히 마지막 대목에서 낙동강의 석고절이 상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을 통해 작가가 지향하는 것들을 보여준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1894년 갑오개혁부터 시작해서 1920년대, 30년대 보여줬던 우리 민족들의 삶 속에서 그 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고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자료로서 조명희 선생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첨언이지만 저는 역사를 했기 때문에 문학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조명희 선생을 처음부터 시작하면서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꽤 유명하신 분이 작성하신 사전이었는데 조명희 선생의 졸년이 잘못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부분이야말로 역사학적으로 다시 바로 잡아야할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공부할 기회를 주신 동양포럼에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 “저는 눈동자를 잘 봅니다. 대체로 눈동자를 살펴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조명희 선생의 남아있는 사진들을 보면 이분은 정열적인 분입니다. 술을 매우 잘 먹고 몸은 상당히 따뜻하고 실천적이고 행동적인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는 제가 사진으로 알 수 있습니다. 저와 조명희 선생과의 만남은 단순히 문자로의 만남이 아닌 영혼의 만남이라는 것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시를 써왔고 등단한지 30년이 됐습니다.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유학 때문에 시집을 제대로 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시를 쓰는 입장에 있다 보니까 남들이 못 보는 것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명희 선생의 작품집을 조금 봤습니다. 제일 눈에 뜨이는 말이 생명이라는 말인데, 생명이라는 말을 문학가들이 명확하게 정리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까 김영미 시인이 잠깐 언급한 바 있습니다마는, 생은 힘이고 명은 열이고 빛이다. 힘과 열이 빛이 있으면 색채가 있고 예술도 있고 넘실대는 바다도 있듯이 그런 지표도 환하게 열어놓은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 가면 내가 왜 사는가에 대한 문제에 있어 밥과 양심을 위해 산다고 이야기합니다. 양심이 없으면 뭐하려고 사느냐를 전면으로 내세운 것입니다. 그 점은 상당히 우리 현실에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를 철학적이고 지성적인 아젠다로 던져준 것입니다. 디아스포라로 살면서 이중·삼중으로 고행한 구스타말르가 여기저기서 떠돌았다는 말처럼 좋은 이야기도 디아스포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조명희 선생도 디아스포라입니다. 지금은 비극적인 것만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그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조명희 선생의 비극을 보면서 무엇을 익혀야 되는가? 그 비극을 들추어내서 내 문제로 다시 이야기해주고 스토리텔링할 힘을 가질 때 그 부분이 기려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작품 속에는 고독, 그리움이 조금씩 섞여 있습니다. 그리움, 고독을 조금씩 넣어 놓아 그것을 풀리지 않도록 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점적인 문제와 조국의 문제, 고향의 의미가 들어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달’이란 작품을 읽었을 때 우리가 달을 찾지만 결국 하나의 달을 발견하고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나중에 확인하게 됐습니다. 결국에 조명희 선생을 생각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고 나 자신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조명희 선생을 읽고 나를 읽고 나를 읽으면서 조명희선생을 이야기하는 이런 지평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번 포럼의 취지에 맞는 일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지방에 있으면서 지방이 곧 세계라는 것을 이렇게 열심히 알리고 계신 김태창 박사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용환 충북대 교수 “이번 포럼의 주제가 탈식민지화와 탈영토화문제입니다. 조명희 작가의 첫 부인이 민식이라는 분입니다. 1907년에 결혼해서 21년간 사시면서 장녀와 장남과 둘째 아들을 낳고 무심하게 떠나게 됩니다. 소설작품 중에 부인이 밥을 못 먹은 상태인데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남편에게는 배가 부르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둘째아들을 낳은 것을 설명할 때 상으로만 잉태하는 것만 아니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포석 선생은 1928년에 참으로도 무심하게 러시아 땅으로 가게 됩니다. 사람이 자아의식에 묶이게 되면 굴레에 묶이게 됩니다. 자식에 대한 굴레, 이념에 대한 굴레, 아내에 대한 굴레 등 다양한 굴레에 쓰이게 됩니다. 조명희 선생은 남편에 대한 무한 신뢰를 하는 민식이라는 아내를 버리고 러시아로 가게 됩니다. 러시아에 가서도 비슷하게 장남을 낳고 장녀를 낳고 둘째아들을 낳고 곧 사형에 처하게 됩니다. 이게 반복적 상황으로 벌어집니다. 유성종 위원장께서 포석이라는 것은 소멸되어 가는 조국이라는 돌을 혼자서 감싸 안고 놓치지 않는 애국혼을 나타낸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궁금해 하는 것은 여성의 입장에서 조국에서 고생하는 아내와 자녀를 놓아두고 외국에 가서 새로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남편을 어떻게 평가할까 하는 것입니다.”

 

▷이 교수 “조명희 작가는 13살 때 4살 많은 민식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21살 때 장녀가 태어나게 됩니다. 연보에서 들어나지 않지만 1932년 황명희와 재혼이라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게 과연 재혼인가가 애매하기도 합니다. 다른 분이 쓴 평전을 보니까 1930년대 조명희 선생이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들을 보면서 당시에 지식인과 결혼했던 부부의 일반적인 삶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거기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평가할 것인가, 도덕적으로 평가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를 분리시켰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례이긴 하지만 저는 조선시대의 여성선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4편의 글을 썼습니다. 18세기에 등장한 임 유진당, 이 사주당 등이 여성선비에 해당합니다. 그분들의 삶을 바라보면 삶이 굉장히 비참합니다. 아이를 여덟이나 낳았는데 여덟이 모두 죽는 그런 비극을 맞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삶을 극복하면서 여성도 글을 남기고 문집을 남기고 군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김용환 교수님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지만 저는 여성의 한 삶에 주목했을 때 자신의 비참한 삶을 극복해서 지식인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고 일제강점기 때 지식이나 문명을 평가하는 남자들의 이면에 있던 여성들의 삶도 다른 식으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 까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로서 무책임한 삶이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저는 치열한 삶을 살았던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인간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주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주간 “여기에서 일단 여러분들이 진술한 대화를 통해서 저 자신이 느낀 바를 말씀 드리고, 내일의 대화로 이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로 이번 포럼에서 거론하는 ‘혼·영·영혼’은 특수한 사람이 겪는 신비체험이나 종교체험이 아니라 개인에 내재하는 근원적인 생명에너지를 ‘혼’이라 하고, 개인과 개인·개인과 공동체·공동체와 공동체 등등 다양·다층·다원적인 ‘사이’에서 상극·상화·상생하는 우주적 근원적인 생명에너지를 ‘영’이라 명명하고, 그것을 미래 공창의 원동력으로 삼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조명희 선생이나 나츠메 소세키의 작품이나 생애를 통해서 읽을 수 있는 여성적 영성의 역능입니다. 그것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처지에서도 생명을 낳고 기르는 강인한 본원적 역능입니다.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은 새로운 생명을 산출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은 언젠가 반드시 죽음으로 끝나지만 새로운 생명이 탄생과 성장을 통해서 늘 생명진화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인데, 그 역능을 여성만이 온몸으로 직접 담당한다는 것입니다. 남성적 영성은 세상을 바꾸어 미래를 여는 역능이라고 한다면, 여성적 영성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양육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여는 역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리/김재옥·신홍경·박장미·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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