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출판문화의 도시 청주의 브랜드가치와 위상 제고
내년 2월 협약체결 후 ICDH설립기획단 꾸려 본격 건립

직지의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등재를 기념해 청주고인쇄박물관 앞마당에 세운 기념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현존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에서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까지...

지난달 7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에서 열린 39차 총회에서 세계 최초의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ICDH) 설치 지역으로 청주가 결정되면서 ‘직지의 고장’이자 ‘출판인쇄문화’의 도시 청주의 브랜드 가치와 위상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한층 올라갔다. 이에 동양일보는 창간 26주년을 맞아 ‘현존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에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센터 유치’까지 출판인쇄의 도시 청주를 재조명해 본다.<편집자>

 

고려 때 승려인 백운화상 경한(1298~1374년)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불조직지심체요절’이 인쇄출판의 도시 청주의 브랜드가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83년 12월 LH공사의 전신인 한국토지공사가 ‘운천지구택지개발사업’을 진행하던 중 우연히 흥덕사지가 발견되면서부터다.

청주 흥덕사지는 현존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를 인쇄한 사찰로 이미 알려진 뒤였다. 충북도는 문화재관리국으로부터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서남쪽 연당리 일원에 대한 발굴허가를 받아 청주대박물관에 의뢰했다.

1985년 10월 발굴조사를 거의 끝내고 주변을 정리하던 중 택지공사로 훼손된 연당사지의 동쪽에서 ‘흥덕사’라고 선명하게 음각된 청동 금구가 발견되고 이 절터가 고려 우왕 3년(1377)에 백운화상이 초록한 직지를 인쇄한 곳임이 입증됐다.

현존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는 서양이 자랑하는 독일 구텐베르크 ‘42행성서’ 보다 70여년 앞서 문화사적 가치 또한 높았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정보전달 매개체인 ‘컴퓨터의 어머니’로 인정받는 금속활자 인쇄술의 성지가 청주란 것만으로도 이미 세계 속의 도시브랜드 가치는 인정을 받았다.

●직지전령사 고 박병선 박사와 흥덕사 복원

그러나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직지는 국내가 아닌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 특별서고 깊숙한 곳에 보관중이다. 내년 10월 청주고인쇄박물관 등 직지특구 일원에서 ‘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을 준비중인 청주시도 직지원본을 임대해 축제기간 전시하려 수차례 요구했지만 고문헌 안전을 우려한 도서관 측이 고사했다.

직지는 상, 하 2권으로 만들어졌으나 현재 하권 한권만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중이다. 직지 하권을 프랑스로 가져간 이는 주한프랑스 초대공사를 지낸 빅트로 꼴랭 드 쁠랑시(1853~1922)가 본국으로 귀국하면서 상당수의 고문헌과 함께 프랑스로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직지는 골동품 수집가 앙리 베베르(1854~1943)가 골동품 경매장에서 180프랑에 구매했다가 그가 1943년 세상을 떠나고 상속을 받은 상속자들이 195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도서번호 109번)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직지의 존재를 국내에 알린 것은 바로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였던 고 박병선(1929~2011) 박사였다. 박 박사는 향년 84세로 입적할 때까지 직지의 세계화에 노력했고 직지원본을 한국에 가져오지 못했지만 사진자료를 가져와 직지의 국내 연구에 불씨를 지폈다.

또 직지를 인쇄한 청주 흥덕사지를 재건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1998년 명예시민 1호가 됐다.

●청주의 새로운 상징 ‘직지’ 찾기 운동

1996년 11월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의 전신인 청주시민회는 ‘직지찾기 운동본부’를 설립하고 청주의 상징이 된 직지 찾기 운동에 돌입한다.

‘직지 상권이 국내에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1998년 8월 29일 범도민 직지찾기 운동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 읍·면·동에 충북지사의 서한문을 발송하고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했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외국에선 직지 알리기, 국내에선 직지 찾기를 동시에 추진했고, 직지심체 야구단, KT&G의 전신인 한국담배인삼공사 충북본부, 청와도시락, 17회 전국 연극제, 대한인쇄문화협회, 정보통신부 우체국, 청주백화점 지하 그랑데르 베이커리 등 단체들이 동참했다.

하지만 범도민 직지 찾기 운동은 시민들의 문화의식을 높이는 데 만족해야 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중인 직지 하권 이외에 상권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기 때문이다.

●직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공식 등재

하지만 청주시의 ‘직지 세계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2001년 직지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데 성공한 청주시는 2002년 ‘직지의 세계화, 청주의 세계화’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직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2003~2014년 8차례에 걸쳐 ‘청주직지축제’를 개최했고, 2004~2015년에는 유네스코 직지상을 제정, 6차례 시상했다. 2016년 6회 직지상 시상식을 1년 앞두고 2015년에 직지축제와 직지상을 통합한 ‘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을 격년제로 개최키로 하고 정부승인을 얻어냈다.

2007년 직지특구로 지정된 청주고인쇄박물관과 청주예술의전당 일원 13만1288㎡에도 최근까지 단계적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단기사업으로 금속활자전수교육관, 근현대인쇄전시관 건립, 녹색쉼터 조성 사업 등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중기사업으로 차 없는 거리 조성을 위한 대체도로 조성, 장기사업으로 2021년까지 청주 흥덕초등학교를 매입, 전통문화학교와 전통체험숙소, 무형문화재 장인 전수교육장 등 테마거리 조성을 앞두고 있다.

최근에는 국토부 ‘도시재생뉴딜사업 공모’에 선정돼 국비 100억원 등 총 167억원을 들여 세계기록유산 체험을 위한 차 없는 거리 조성, 우리 동네 역사탐방, 셉테드(범죄예방) 스마트시티 구축, 노후주거지 생활환경개선사업 등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내년 10월 1~21일 청주직지특구 일원에서 열리는 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은 이런 변화를 세계 속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ICDH ‘국제기구’란 새로운 일자리 창출

청주시의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ICDH) 유치는 통상 국제기구 유치에 3~5년이 소요되는 것과 달리 중앙정부와 청주시, 국제기구가 긴밀히 협력해 1년여의 비교적 짧은 시일 안에 이뤄낸 성과다.

이는 청주시가 2005년부터 ‘유네스코 직지상’을 지원하며 구축해 온 유·무형의 국제적 네크워크가 큰 힘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최근 유네스코 내부에서 기록유산 분야는 국가 간 대립과 경쟁이 가장 과열된 분야이다. 일본의 영향력으로 ‘위안부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가 잠정 보류됐고 유네스코 콘텐츠를 통한 국제적 위상과 지위를 확보하려는 중국의 야심 등 세계 각국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시는 ICDH에 대한 총회 승인으로 내년 2월께 유네스코와 한국정부간 협정이 체결되면 청주시와 국가기록원은 ICDH설립기획단을 출범시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하게 된다.

ICDH는 특수법인 형태의 국제기구로서의 법적지위를 얻게 되며 주로 기록유산 분야의 국제적인 지원과 프로그램 운영을 개최한다.

ICDH는 앞으로 지역 청년들에게 국제기구라는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우수한 국제 인력과의 교류로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획기적인 청주발전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승철 학예사는 “부지와 건물은 청주시에서 지원하지만 매년 운영비는 국가에서 지원받게 돼 센터가 본격 운영되면 지역발전과 직지의 창조적 가치를 국내·외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경철수>

 

<특별기고>직지의 브랜드 가치

한상태 청주고인쇄박물관장

청주시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그동안 “직지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종종 받은 적이 있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직지는 현존하는 세계 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본입니다”라고 으레 답하곤 했다. “아, 네. 그게 다인가요?”라고 물어보면 말문이 막힐 때가 많았다. 사실 그 동안 박물관에 근무한 적이 없다 보니, 직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물론 위와 같은 질문에 스스로 고민해 본 적도 별로 없었다. 지난 7월, 관장으로 부임하고 직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올해 7월 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이 국제행사로 승인을 받고,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를 유치하면서 많은 언론과 방송은 물론 전 국민의 관심과 시선을 받으면서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았던 직지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은 정부의 ‘국제행사추진심사위원회’로부터 공식 승인받은 국제행사이다. 매년 전국에서 개최되는 약 1만6800여개가 넘는 축제와 행사(2015년 기준) 가운데 국제행사로 정부승인을 받은 행사는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2회째 국제행사로 승인받은 ‘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이 갖는 가치와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직지코리아는 직지의 가치를 현재와 미래로 확산시켜 나가는 미래지향적 콘텐츠를 세계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글로벌 융합축제이다. 직지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인류의 소중한 유산으로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더불어 2005년 지정된 기록유산분야 최초의 국제 시상제도인 유네스코 ‘직지상’은 2018년이면 일곱 번째 시상식을 갖게 된다. 모두 대한민국 청주 ‘JIKJI(직지)’란 타이틀로 전 세계에 홍보된다.

지난 11월 6일 유네스코 총회의 승인을 받은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는 기록유산분야 최초의 국제기구로 2020년 준공과 더불어 정상적인 운영이 시작된다. 이 센터는 유네스코 이름으로 운영되는 국제기구로 매년 운영비는 한국 정부에서 지원받게 된다. 이번 센터는 신청에서 승인까지 8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보통 3~5년, 심지어 7년까지 걸리는 국제기구 신청 및 승인이 몇 개월 만에 성공한 이유는 그동안 청주시민의 응원과 청주시의 지속적인 노력 덕분이다. 직지와 함께 시작된 직지세계화 사업이 청주를 국제도시로 발전시켜 나가는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직지는 청주와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로 인쇄의 정보혁명과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고 있다. 특히 국제기록유산센터 건립으로 무형의 추상적 가치인 직지가 무궁한 잠재력을 가진 유형의 현실적인 직지로 국민모두가 체감할 수 있도록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청주시와 유네스코가 함께 직지를 인류의 소중한 문화자산으로 가꿔나가야 한다. 청주는 국제도시로 발돋움 할 성장 동력으로 직지를 활용해 나가는 전략을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한다.

지난 11월 유네스코 총회에서 청주센터 설립이 승인된 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전문가 MOW(Memory of World)스페셜리스트가 귓속말로 전한 “유네스코에서 청주는 이제 스타도시입니다”란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특별기고>‘국제기록유산센터’ 승인받던 날

이승철 청주고인쇄박물관 직지코리아팀장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지난 11월 6일 오후 3시 30분은 유네스코 총회에서 청주시 국제기록유산센터 설립이 공식적으로 승인된 시간이다.

39차 유네스코 총회는 지난 10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16일 동안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전 세계 200여개 회원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센터설립 관련 의제는 11월 6~7일 2일간 진행하기로 계획돼 있었다. 한국정부를 대표한 이승훈 전 청주시장은 센터설립 의제 승인과 관련, 모두발언 등을 하기로 돼 있어 이것저것 준비할 사항이 많았다.

6일 오전 총회보드에 한국 신청의제가 다음날인 7일 오전 10시에 진행된다는 내용이 게시돼 이를 이 전 시장에게 점심식사를 하며 보고했다.

오찬 후 잠시 주어진 휴식시간에도 나는 떨리는 마음에 재점검을 위해 유네스코 본부로 향했다. 그 때가 오후 2시 정도였던 것 같다.

보통 유네스코 회의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열린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유네스코 회의장은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였다.

우연히 이선경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주재관을 만났는데 그는 청주 기록유산센터 설립 의제가 오후에 진행될 수 있다는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다들 점심식사를 하러 가 사무실을 비운 상태라 확인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곳저곳 뛰어다니다 보니 시간은 오후 2시 10분께였다. 먼저 촬영을 부탁한 분에게 전화해 최대한 빨리 와 줄 것을 부탁했더니 소지하고 있는 카메라는 방송용 촬영이 어렵다고 하는 게 아닌가. 무조건 오후 2시 30분까지는 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호텔에 전화해 잠시 휴식을 취하던 이 전 시장의 상황을 여쭙고, 오후 2시 40분까지 유네스코에 도착해야 한다고 급박한 상황을 전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잠시의 휴식에 안주했더라면 한국정부를 대표한 이 전시장의 모두발언이나 국제기록유산센터(ICDH)의 청주 유치를 위한 일행들의 기념사진 한 장 남길 수 없을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1시간 남짓했던 순간들이 어떻게 지났는지 지금 생각해도 십년감수했다.

다행히 회의가 속개되고 청주 센터설립 의제가 다뤄져 센터설립 승인이 됐다. 아, 그날의 감격은 내생에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인생은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어느 순간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때론 가슴 벅찬 순간을 맞을 수도 있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그래서 그날의 선택이 내 심장을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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