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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45) 순수의 상징 산떼리아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45) 순수의 상징 산떼리아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8.05.17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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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섬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시회. 서아프리카 요루바족이 모셔온 산떼리아 성직자 의상을 걸친 부부가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모로섬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시회. 서아프리카 요루바족이 모셔온 산떼리아 성직자 의상을 걸친 부부가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동양일보 김득진 기자) 공산주의 국가 쿠바서 종교 탄압이란 말이 나돌지 않는 건 묘한 일이다. 소박한 침례교회, 예배드리려고 모여 든 신도들 기도하는 모습은 자본주의 국가랑 다를 게 없다. 페리 부두 곁 앙증맞은 이슬람 모스크에서는 아잔이 묵직하게 울려 퍼져 경건함을 자아낸다. 그 중 특이한 건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산떼리아, 골목 지나칠 때 자주 마주치는 하얀 옷의 성녀들이 바로 그들이다. 모자며 신발에다 핸드백과 양산도 죄다 하얀색으로 갖춰 입고 아이 앞세워 거니는 그들에게서 흰색 아닌 걸 찾아보긴 어렵다. 그을린 살갗 번들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맞닥뜨리는 순백의 아름다움이라니, 바다수선 순수한 색깔과 마주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서아프리카에서 모셔온 신령을 추앙하는 순간마다 핍박은 이어졌을 테고, 꽃잎 닮은 의상 입는 걸 금지할까봐 산떼리아 성직자들은 목숨마저 걸고 지켜 냈겠지.

스페인 이주민들과는 달리 콩고 요루바족은 짐짝처럼 화물선에 실려 왔다. 그러면서도 토속 신앙의 영험함을 믿고 스페인 통치자가 숭배하길 강요한 성인 안토니오와 성녀 바바라 대신 그들만의 신 예마야 향해 두 손을 모았다. 뜨리니다드 마요르 광장 근처에 있는 예마야 사원은 요루바부족 신 엘레구아(ELEGGUA)나 상고(SHANGO)를 모신 곳이다. 마흔 명 쯤 되는 신령, 오릿샤는 제각각 상징이 달라 성모 마리아 역할인 흰옷 차림 예마야가 다스린다. 성모마리아 대신 예마야에게 흰 옷을 입혀 숭배했으니 실상을 모르는 사람은 블랙 마리아라 부르기도 했다. 피부색만 다른 예마야, 블랙 마리아 덕분에 종교 박해로부터 교묘하게 벗어날 핑계거리가 되었고, 힘든 하루를 마무리하고 나면 예마야를 올려다보며 뼈를 깎는 노동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 싶다. 언젠가는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고 말 거란 믿음을 잃지 않고 노동 착취를 견뎌냈을 노예들 삶을 되짚어보며 새삼 종교의 위대함을 느낀다.

국제 도서전 둘러보려고 찾아간 모로 요새. 시가 피우는 모습을 한 예수상 올려다 본 뒤 바다 건너 아바나 배경 삼아 사진 찍는 동안 타고 왔던 승합차가 떠나 버렸다. 서운하단 생각보단 색다른 정취를 혼자서 죄다 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가족과 연인이며 또래 학생들이 나들이 나온 요새 입구, 판자로 얼기설기 이어 만든 곳에서 입장권을 팔고 있다. 우리 돈 백 원 정도여서 내국인도 크게 부담되지 않을 것 같다. 코인 세 개를 매표소에 디밀고 표를 받은 뒤 안으로 성큼 발을 들였다. 도로 양쪽은 잡상인들이 차지하고서 손님 꾀는 일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타임캡슐에서 뛰쳐나온 회전목마가 해외여행 못해 본 아이들을 런던이나 뉴욕으로 데려가려고 쉼 없이 빙빙 돌고, 한쪽에선 조잡한 학용품 가게가 늘어서서 놀이기구마저 못 탄 애들을 달래고 있다.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요새 입구 벌판, 2월의 카리브 해 햇살은 여행자를 길바닥에 쓰러뜨릴 듯 머리에 불화살을 쏴댄다. 먹으면 배탈 난다던 비닐봉지 속 오렌지주스도 이때다 싶어 타임캡슐에서 뛰쳐나온 듯하다. 그걸로 목을 축이지 않는다면 한 걸음도 옮기기 어려울 것 같아 두 봉지를 사서 한꺼번에 들이켜니 숨이 제대로 쉬어진다.

망고 주스 마신 것처럼 다리에 힘이 실리고, 도서전 열린다는 뻬리야 델 리브로를 찾아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간다. 거기엔 의외로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아 매표소 부근과 현격한 대비를 이룬다. 모로성이 드리운 둔중한 그늘로 피신한 뒤 안내 표지를 단 사람들에게 한국 도서 전시하는 곳이 어딘지 묻는다. 두터운 색인표를 한참이나 뒤적거린 남자 둘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K에도, C에도 코리아는 없다면서. 한국인 관계자를 만나 인터넷 발달되지 않은 쿠바의 책 문화는 어떤지 물어볼 참이었는데 바라던 게 물거품이 되었으니 어깨가 축 처진다. 회랑처럼 이어진 성곽 따라 마련된 부스에는 제각각 다른 책들이 전시되어 있지만 그딴 건 관심조차 없다. 뜻을 이루지 못한 눈으로 싸구려 학용품 곁에 붙어선 아이들이 일으킨 뽀얀 먼지가 짜증스레 몰려든다.

땡볕이나 먼지 무서워 들어선 전시장, 그 중 가장 붐비는 곳은 대형 모니터에서 요란한 소리 왕왕 울려나는 전자오락 부스다. 거기에는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하얀 색으로 갖춰 입은 자매 산떼리아 성직자가 신기한 듯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들이 데려온 딸에게 다가가 가져온 풍선 중 빨간색을 건넸다. 풍선을 덥석 받아든 딸이 입은 옷을 살폈더니 자매랑 달리 파랗거나 노란색이다. 한참 자라는 어린 딸에게는 원색 옷을 입혀야 정서 발달에 좋다는 걸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반짝이는 시선을 모니터에 송두리째 빼앗긴 그들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가 전자오락 부스를 벗어난다. 또 다른 부스에는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정갈하게 차려입은 하얀 옷차림으로 돌아 나오다 사진 찍는 걸 눈치 챘는지 인상을 찌푸린다. 나는 짐짓 태연한 척하며 폰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조마조마한 가슴을 다독인다. 손잡은 부부가 전시장 둘러보는 거나 여자가 맨 핸드백 벨트와 블라우스에 달린 단추 검정색이 돋보게끔 흰 옷 갖춰 입은 것까지 찍었으니 내국인 입장료 내고 여길 온 게 괜스레 미안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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