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전도단 초대회에서의 인사

미즈노 “오늘 여러분들의 초대를 받아, 선교전도단 연합회의 제 10회 월례회에 출석하게 된 행운에 대해 제군들께 충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본 연합회의에는 금번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만, 과거 2개년 동안 여러분들을 죽 뵈어왔고, 또 달리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은 서로 낯익은 얼굴들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특별히 새삼스럽게 말씀드릴 사항은 없습니다만, 단지 조선에서 제국의 사업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지방을 순찰한 적이 있는데, 반도의 사정을 잘 알게 되면서 점점 더 깊이 제군들이 반도 인심의 개발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반도의 개발을 위한 일본과 조선인의 협력은 15년 이상이나 이어지고 있습니다만, 악·폐정의 만신창이는 아직 전도(全道)를 통해 현저히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생명 재산만이라도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태어나면서부터 안락한 문화적 환경의 혜택을 받고 태어난 제군들에게는 제군들의 사업지인 조선은 너무나 불편하고 곤란한 곳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실로 조선은 문화면에서 제군들의 노력에 힘입은 바가 너무나 크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결코 아첨의 말이 아닙니다.

숙녀 및 신사 제군과 우리들과는 각각 그 입장은 다르다 고해도 동일 목적을 향해 일하고 있는 협력자가 아닐지요? 사회 상태를 개선하는데 있어서는 종교의 감화만큼 유효 적절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제군들의 사업은 정부에 대해서는 많은 원조가 되고, 직접 간접으로 전 민중의 행복과 번영을 증진시키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들은 기독교를 매우 존중하는 바이며, 이의 보급을 위해 가능한 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군들도 잘 아시다시피 1920년 3월에 사립학교 규칙을 개정했고, 다음해 4월에는 포교 규칙을 개정하였으며, 종교단체를 법인으로 인정하는 규칙도 그 해 6월에 실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10년 전의 내외 사정에 따라 정해졌던 복잡한 옛 규칙 하에서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제군들의 무거운 부담을 가볍게 덜어드렸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들 시정도 제군들의 사업과 똑같이 정의 인도에 원칙에 근거한 것인 만큼, 일본과 조선인 사이에 어떠한 차별적 대우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태형폐지, 교육제도의 개정, 의료 위생기관의 개선, 지방제도의 개정과 같은 것도 모두 이와 같은 원칙에서 나온 것입니다.

더욱이 조선교육령은 조선의 학제를 일본의 제도와 똑같이 하기 위해 목하 개정을 진행하고 있는 중 입니다. 우리들은 요즘 어떤 동정심 많은 외국인이 조선을 여행한 후, 조선인은 일본을 마치 계모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여행자가 받은 인상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들로서는 계모의 역할을 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조선인이 가령 계모의 자식이란 태도를 취한다 하더라도 우리들은 언제까지나 생모의 태도를 취하고 싶은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우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심히 유감스럽게 느껴지는 일이 종종 발생함을 시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의지를 전체 관리들에게 철저히 주지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아직도 시행착오에 의한 과실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 관리가 완벽하게 모든 일을 처리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만일 잘못이 있다면, 언제든지 이를 기꺼이 교정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 관헌의 조치가 부당하다고 인정되었을 때에 열심히 우리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켜 주었고, 숨김없는 조언과 권고를 주해주신 여러 제군들에 대해 이에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1919년 제군들이 결의하여 총독에게 제출해 주신 결의서는 기꺼이 수령했습니다. 이후, 이 결의서에 제군들께서 제의한 사항 중에서 실행 가능한 것은 거의 전부 실행에 옮겼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물론 제군들의 의견 하나 하나가 모두 정당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특히 제군들의 결론은 오해나 허위로 날조된 이야기를 기초로 하여 결론지어졌다는 것을 여기서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군들의 행동은 적어도 우리들로 하여금 제군들의 의도를 명백히 알고 상호의 이해를 촉진시킬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실례로서 제군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비평자 중의 한 사람이 작년 어느 날 내 근무처에 찾아와서 회담하던 중, 경성 감옥에서는 지금 일본인과 조선인의 수감자들 간에 차별대우가 심하다는 것을 알려주더군요.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시정의 근본 의도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이런 일이 있는지 없는지 나 자신이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다음날 예고도 없이 경성 감옥을 방문했습니다. 실제로 확인해 본즉 양자 간에는 조금도 차별적인 처우가 발견되지 않았고, 이를 실제로 증명해 보일 수 있어 기뻤습니다. 저는 즉시 그 신사에게 이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만일 원하신다면 언제라도 자유스럽게 감옥을 시찰하여 스스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시라는 뜻을 부언해 두었습니다. 그 후 그 분은 감옥을 직접 시찰했다고 합니다. 또 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그 분은 이 일 이전에는 전혀 이러한 사실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그만 실언했다는 것을 알고, 저를 정직한 사람이라고 소문까지 냈다는 것입니다.

위에 들은 예 이외에도 저는 일본의 조선통치에 대해 여러 면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할 의도를 가지고 수많은 선전자가 잡다한 소문을 날조한다는 설을 들었고, 그로 인해 궁극적으로는 선교사들이 희생타가 되고 말았다는 것을 여기서 말씀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최근의 예를 말씀드리면, 어제 휴가를 얻어 미국으로 돌아간 제군의 동료 중 의한 사람이 미국의 황색지(동양지)에 ‘나는 조선인이 받은 고문에 대해 잘아 알고 있기 때문에 수년간 출국이 정지되어 조선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고 소문을 냈습니다. 더욱이 이 신문에는 이 사람의 말을 빌려 ‘일본인은 점차 조선인을 억압하여 사멸시키려 하고 있다’, ‘천진난만한 소년들이 날 이 갈수록 일본군인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조선 내에 있는 모든 전답은 일본군인에 의해 유린당하여 조선인은 모두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조선인들을 위한 기독교 선교사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총살당했고, 수 천 명의 조선인이 망명자가 되어 만주로 쫓겨났다’는 등의 허무맹랑한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나는 이와 같이 날조된 사실이 신문에 잘못 전한 것은 일본측에서 볼 때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또한 그 훌륭한 성품을 가진 신사에 대해서도 참으로 가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행히 이 신문의 성향을 세상 사람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각 있는 식자들은 분명 이 기사를 살펴보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저의 주의를 끌었던 기사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한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떳떳한 조선 기독교인들이 외국정부의 압박 하에 부당한 고뇌를 겪고 있는 것에 대해 동정한지 오래이다. 우리 미국 정부는 영구적 국제친화의 조건으로서 미국 선교사단 및 선교사가 조선에서 일본 관헌으로부터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도록 보장할 것. 또한 밋숀스쿨을 폐쇄하거나 열성 신자를 무법으로 투옥시키는 규정을 전폐할 것. 조선인 소유의 수 천 정보의 땅을 강제로 아편을 재배하기 위해 가로채고 이에 승복하지 않는 사람들을 강제로 승복시키고, 문명국으로서 분명히 인정되는 아편 매매를 금지할 것 등을 주장하도록 권고함.”

이는 제군들도 이미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뉴욕에서 있었던 ‘기독교 공려회(共勵會)’대회의 결의문 중의 한 구절인데, 그 기관지 7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이 기독교 공려회는 다른 단체에 비해 거짓증거를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 기독교 단체로 알고 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경솔한 결의를 했으며, 또 이를 천하에 공표하기에 이르렀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결코 우리들의 시정에 대한 비평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가능한 한 최선의 방법으로 조선인을 위해 진력하겠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목적이 없기 때문에 비평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고의적인 허구와 무법적인 과장을 배척하며, 진리와 평화를 위해 사실이 사실로서 세계에 소개될 것을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끝으로 여러분들에게 간절히 바라 마지않는 것은 우리들과는 조선인의 향상과 행복 증진을 위해 노력한다는 동일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협력자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서로 이제 한 층 더 접촉을 돈독히 하여 협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인 이상 당국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들도 실수는 피할 수없는 것이고, 이러한 실수들이 제군들에게는 명백한 과실로 인식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만일 이러한 과실이 발견되거든 어디에서 어떤 과실이 있었는지 직접 우리들에게 지적해 주실 것을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성의를 가지고 서로 접촉하며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 한다면, 가령 의견이 아무리 다르다 할지라도 서로 접촉하는 사이에 풀리지 않았던 오해도 전부 풀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당국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들은 지성을 다하여 여러분들과의 접촉을 환영하며, 당국자와 여러분들과의 관계를 사소한 의혹이 가로막지 않도록 여러분들께서 성의를 가지고 진술해 주시는 모든 사실을 기꺼이 청취하겠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저는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의 정중한 초대를 받은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또한 이토록 솔직하게 저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1921년 9월21일 경성 피어선 기념관에서 영어연설 번역문)

이 연설을 듣고 그들은 갈채로 이를 환영했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 날 밤 나는 웰치 감독과 만났는데, 그는 내손을 붙들고 오늘 있었던 연합회의에서의 각하의 연설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내 친구들도 상당히 만족했으며, 환영했습니다. 저 또한 빠른 시일 내에 각하의 연설 내용의 대요를 적어 미국에 보내려 합니다. 이를 계기로 금후 총독부와 선교사와의 관계는 점점 더 좋아질 것입니다. 하고 말하며 아주 기뻐했습니다.”



●대외관계에 대한 양해

미즈노 “대외관계 향상을 위해 총독부는 매우 노력했고, 이를 위해 야마모토 타다요시군을 미국에 보내 조선통치의 실상을 알리는가 하면, 시라가미군과 지바군은 통역으로, 이마무라군은 외국각지에 출장 보내 조선에 대한 우리 일본정부의 시정의 진상을 납득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독립만세 소동 이후부터, 외국인 관계는 점점 험악해졌고,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당시 관계했던 제군들로부터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가이케 “웰치씨가 조선을 위해 하셨던 일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어떨지요?”



미즈노 “당시 조선에 미국인으로서 크리스트교 선교단 감독으로 왔던 웬치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은 조선총독을 매우 신뢰했고, 총독 또한 웰치를 신용했는데, 그는 조선인 선교사들을 위해 많은 고생을 했던 분입니다. 먼저 웰치씨는 총독부 측과 선교사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또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제가 선교사 모임에 나가 연설한 것을 듣고 매우 기뻐했으며 잽싸게 그 취지를 미국에 전보를 치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웰치씨가 조선에 있는 동안 여러모로 같이 걱정하며, 노력을 기울인 결과 선교사들과의 관계 개선에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또 스미스라는 선교사가 있었는데, 이 분도 친일 선교사로 총독부 측과 선교사 측 사이, 그리고 조선인들 사이를 원활히 하기 위해 아주 많은 노력을 기울인 분입니다. 스미스씨는 그 후, 곧 귀국했지만 지금까지도 가끔 편지를 보내 미국 상황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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