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할머니가 육중한 카메라 들고 산하누비며 “할일 많아요~”
우화羽化과정 지켜 보노라면 옷깃 여미는 외경심畏敬心 생겨
“뭇 야생초와 곤충들 영혼 위해 진혼곡이라도 바쳐야”

생태사진작가 조유성
83세의 나이에도 생태사진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조유성씨.
83세의 나이에도 생태사진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조유성씨.

 

83세, 지팡이가 들려 있어야할 손에 삼각대 까지 달린 육중한 카메라가 들려있다. 언뜻 보면 작은 몸집의 영락없는 할머니인데, 눈여겨보면 예사롭지 않은 눈빛이며 탄탄한 피부며 국내 외 산하를 넘나들고 여차하면 밤을 꼬박 새우는 체력은 범상함을 넘어섰다.

한 때는 잘 나가는 산부인과 의사 사모님으로 남들의 부러운 눈길도 받았다.

그러다 40세에 이르러 어떤 날 문득, ‘아, 이런 게 아니구나!’ 살아가는 일에 깨우침이 있었다. 지체 없이 명품가방을 메던 어깨에 무거운 카메라 백을 들쳐 메고 산야를 누비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43년- 이제는 ‘사모님’에서 ‘생태 사진작가’로 변신한 스스로가 대견하다. 아니, 80이 넘어서도 할 일이 많다는 게 자랑스럽기도 하다.



사진작가 조유성 여사(83)를 만났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제2도시 수라바야시에서 승용차로 4시간을 달려야 닿는 프로볼링고의 배르미 마을에 살고 있다. 1000미터 고지에 위치해 사계절이 한국의 초가을 날씨만 같은 100여 가구가 사는 산촌마을, 벌써 3년 째 다. 아예 오래 머무를 집으로 방 하나에 거실이며 욕실까지 갖춰 신축한 20여 평짜리 작업장이자 거처다.

이 집 벽면에는 ‘조유성 사진작가의 집‘이란 알루미늄 표지판이 붙어 있다.

‘이 집은 한국의 생태사진 작가 조유성(1937~)여사의 곤충 생태촬영 작업을 돕기 위해 작가의 아들 유재빈 씨가 2017년에 건립했음’이라는 내용이 한글과 영문으로 쓰여져 있어 생태사진에 미친 80대 여류 사진작가의 작업장임을 일러준다.

언제나 작은 몸(155㎝)에 운동모자에 청바지에 등산점퍼를 입고 있어 80대 할머니라곤 믿기지 않는다. 그의 어깨엔 영락없이 접사렌즈 등이 가득 담긴 가방이 어깨를 누르고 있지만 사진작업을 위한 욕심과 전투력은 젊은이들 못지않다.

더구나 한국을 떠나 산지가 수년이 지났는데도 고향인 광주와 30년 이상 살아온 충청도 사투리가 적당히 섞인 어눌한 말투가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주름도 없고, 파인더를 통해 피사체를 응시해서일까 눈빛은 더 빛을 발했다.



- 아니, 본래(?) 모습은 어디가고 파마에 화장에 목걸이까지 하고 나타나시면 어떻게 하지요?

“사진을 찍는다 해서 전투복을 벗고 모처럼 미장원도 거치고 치장을 하고 오느라 힘들었는데 핀잔부터 주시네…”

- 한국에 언제, 왜 오셨습니까.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됐지요. 서울에 있다가 청주 지인들 보고 싶고 쇠주도 한 잔 하고 싶어서. 그런데 와 보니 너 나 없이 바쁘고 어깨들이 처져 있어요. 남북 평화협정이나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이나 6.13지방선거가 휩쓸고 갔는데도 별 감흥들이 없는 것 같아요. 모두들 먹고 사는 일에 많이들 지쳐있는가 봐요”

- 늘 궁금했는데, 원 나이와 호적나이가 다른가요?

“호적으로는 1937년생으로 돼 있고 실제론 1935년 5월17일(음력)생이에요. 그래서 원 나이로는 83세가 맞아요”

- 인도네시아에서도 야생화와 곤충사진을 함께 찍으시는지요.

“한국의 야생화는 예뻐서 사명감을 갖고 작업했어요. 82년도부터 몇 번의 들꽃 개인전이나 2011년도에 펴낸 ‘사진으로 보는 식물백과’(지식서관)로 우리나라 야생식물에 대한 것은 대략 정리를 했어요. 그런데 나방이를 비롯한 곤충은 내 나라 네 나라 가릴 것 없이 예쁘고 신기하고 그 모습들 모두가 각기 달라서 눈을 뗄 수가 없어요. 그 모습들을 찍어놓지 않으면 말 못하는 애들이지만 저마다 섭섭해 할 것 같고, 다시 보기 힘들 것 같아서 힘닿는데 까지 기록으로 남기려 해요”

- 기록으로 남긴 야생화나 곤충 사진은 몇 점이나 되는지요.

“헤아려 보지도 않았고, 헤아려 볼 수도 없어서 모르겠어요. 뒷정리를 어찌하든 우선 기록으로 남겨놓는 일이 급해서 보이는 대로 열심히 찍어요. 밤낮 없이. 때로는 식음을 전폐하고도 찍어요.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셔터를 누르는 일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어요. 아직은 건강하므로 이 같은 활동은 한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 지금부터 40년 전인 1978년 10회 충청북도전국사진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하면서 작가활동을 시작하셨지요? 사단(寫壇)에 나오자마자 담긴 물 쏟아 붓듯 많은 작품들을 내 놓으셨는데…

“40대에 들어서면서 여생을 좀 활기차게 살려면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하나를 고민하던 중에 사진 찍는 일이 좀 만만해 보여 덥석 달려들었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시간이 갈수록 사진은 어려운 영역이었어요. 사진에 입문하면서 사진을 가르쳐주신 분이 청주의 사진작가 오고의(75) 선생이신데 몇 년간을 열심히 따라다니며 극성을 떨었지요”

-사진작가로 나선 이듬해(1979년) 첫 개인전을 하셨고, 같은 해 한국사진작가협회전국회원전 10걸상을 수상하시면서 작가로의 자질을 확고히 굳히셨다고 보이는데, 그 해와 그 이듬 해 충청북도 미술대전 사진부문에서 연속 특선을 거머쥐셨더군요. 상에 집착하신 것은 아닌지요.

“신인작가이다 보니 이런 저런 욕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분야나 그렇겠지만 입문직후엔 무엇이나 배가 고픈 것 아닌가요? 뒤돌아보면 82년 야생화로 2회 개인전을 할 때 까지 정신없이 뛰어다녔고, 이때부터 나 만이라도 생태사진에 대한 전문성을 살리고 지상의 식물들과 곤충류에 대한 자료를 남겨보자는 소박한 의무감을 갖게 되지요”

- ‘소박한 의무감’이 아니라 ‘거대한 사명감’의 발로가 아닐까요?

“나는 많이 배우지도 않았고 남다른 꿈과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예요. 다른 여자들처럼 예쁘지도 않고 매력이 있지도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아주 편하게 사는 주부였으므로 ‘소박한 생각’이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 생태사진을 하시면서 겪는 남들이 모르는 숨은 이야기들이 많을 텐데요…

“야간에 나방이를 모으기 위해 불을 밝혀 놓으면 참 많은 나방이들이 몰려와요. 그리고는 밤새 춤을 추어요. 그리고 아침이면 모두가 죽어요. 야간접사를 끝내고 나면 언제나 겪는 이 같은 경험의 축적은 갈수록 이들의 주검에 깊은 생각을 하게 해요. 사진을 남기려 이들을 유인해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이 인간의 행위가 용서될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지요. 곤충에게 잔인함을 인간이니까 용서받을 수 있는지, 사진예술이라는 미명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지… 아직도 잘 몰라요”

- 곤충마다 찍는 시기와 방법이 다를 수 있지요?

“그렇지요. 낮에는 일반 곤충을, 밤에만 나방이를 찍어요. 그런데 나비류처럼 날아다니는 애들은 별로예요. 풀 나무 사이를 다니니까 몸과 날개에 상처가 많아요. 그래서 갓 태어나는 애들을 찾아야하는데 그러려니까 번데기를 모셔다(?) 태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일도 많아요. 풍뎅이류는 달라요. 잡아오면 지저분하니까 우선 목욕부터 시켜야 해요. 그러면 제 모습에 제 빛깔이 나와요. 곤충은 작은 것일수록 예뻐요”

-곤충에 대한 남다른 감동도 있을 것인데요.

“ 감동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한 느낌도 있어요. 곤충이 번데기에서 허물을 벗고 날개 있는 엄지벌레로 변하는 것을 우화(羽化)라고 하잖아요. 그 우화 과정에서 허물(껍데기)을 벗고 갓 태어날 때의 곤충은 참으로 정결하고 신비롭습니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깨끗한 모습은 없을 것입니다. 순수생명의 실체가 세상에 태어날 때의 산고와 육신의 형성에 따르는 변화의 신비는 관찰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미처 모를 것입니다. 나는 이럴 때 숨도 크게 쉬지 못해요. 셔터를 누르기가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몰라요. 막 태어나는 때의 곤충의 자태야말로 옷깃을 여밀 만큼의 외경(畏敬)심이 생깁니다”

- 나방이의 우화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요.

“내가 보는 나방이의 우화는 대략 이틀쯤 걸렸어요. 그 과정을 찍으려면 꼼짝을 못해요. 식사도 갖다 달래서 먹어야하고 화장실 가는 것도 참아야 해요. 우화과정을 찍고 나면 햇볕에 팔과 손등이 익어버려요. 그런데도 언제 허물벗기가 시작되는지 끝나는지 눈 깜빡하는 사이에 순간을 놓쳐버려요. 산부인과 의사는 대략 분만시간을 짐작하지만, 곤충은 달라요. 그렇게 얘들한테 매달렸는데도 이제까지 4종 정도 밖에는 우화하는 전 과정을 찍지 못했어요. 한 번 찍고 나면 내가 애기를 낳는 것만큼이나 힘들어서 진이 다 빠지는 듯해요”

- 우화의 과정을 보고 나면 곤충을 보는 눈과 생각이 달라지겠군요.

“생태사진 하는 데 따른 숱한 어려움이 이 같은 감동으로 극복되거나 곤충에 대한 애정의 에너지 원(源)이 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해외 출사(出寫)를 자주, 오래 하시는 편이지요?

“필리핀에 40일,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2년, 싱가포르에서 4년, 이제 인도네시아에서 3년을 지냈는데 한동안은 더 있게 될 것 같아요. 지금 있는 배르미 마을은 앞으로 더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에요. 마을에 곤충을 잡아오는 사람들(어른 1명과 청소년 2명)과 계약(성인은 월 18만원, 청소년은 9만원)을 맺어 곤충 수집을 하고 있는데 이제는 서로가 익숙해져서 어떤 곤충을 원하는지, 어느 곳에 안내를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어 작업하기가 수월해요”

- 식사 등 혼자서 장기체류하시는데 힘드시지는 않는지요.

“몇 개월에 한 번씩 한국에 나왔다 갈 때 김치 등 반찬류를 되도록 많이 챙겨가요. 다 떨어지면 현지 음식에 길들여지지요. 나방이는 밤에만 찍을 수 있어서 잠을 많이 설쳐요. 그러나 이제는 익숙해져서 잘 견뎌요”

- 생태사진만을 고집하시는데 후회는 없습니까?

“만일 산 사진을 했다거나 풍경사진을 했다면 이 나이 들기 전에 체력이 달려서라도 이미 포기했을 것이지요. 처음엔 별 재미없을 것 이라며 사진하는 사람들이 말렸어요. 그런데 나는 멍청하니까 매달렸는데 지금까지 오래하다 보니 성취감도 있고 비로소 프로가 된 듯 해요”

-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난 높은 사람들은 잘 몰라요. 꼭 대야한다면 전에 교육감 했다던 유 뭐라는 분이 있는데…”

- 유성종 교육감 말씀인가요… 왜 존경심을 갖고 계신지요.

“인사도 없고 잘은 모르지만, 정직한 분 아니에요? 난 역사적인 인물이나 지도자 들은 잘 몰라요.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이면 훌륭한 것으로 알아요. 맑게 사는 분은 더 좋고요”

- 생태사진 하는 데는 많은 경비가 들 텐데요. 듣기로는 둘째 아드님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으시다는데…

“그래요. 둘째(유재빈·60·뮤지션)가 도맡아서 돕고 있어요. 전에는 주식을 했는데 좀 재미를 봤었고, 음악과 춤을 즐기며 싱가포르에 살고 있어요. 한마디로 효자예요”

- 전라도에서 태어나시고 40대에 충청도에 오셔서 반평생을 보내셨는데, 충청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던가요?

“참 편한 사람들이지요. 고무줄 같은 사람들이에요. 잡아당기면 쭉 딸려왔다가 놓으면 제자리로 가지요. 절대로 어느 편이 되지 않아요. 내 편이라고 착각하면 아니 되지요. 누구를 위해 자기를 던지는 일을 하지 않지요”

- 사진하는 후배들이나 인생의 후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내가 경험한 결론은, 노후에는 두 개의 통장이 있어야 해요. 하나는 모두가 잘 알고 있듯 노후생활을 위한 재정적인 통장이에요, 또 하나의 통장은 노후에 할 일-취미거나 직업이거나-에 대해 미리미리 할 일에 대한 상식을 예축하는 통장이지요. 많은 사람들은 돈이 들어 있는 통장만 준비하지요. 그런데 막상 나이가 들어보면 할 일이 있어야하는데 미리미리 할 일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아서 당황해 하는 경우가 많아요. 노후에 하려는 일에 대한 관심과 상식을 꾸준하게 예축하는 또 하나의 통장이 꼭 있어야 합니다. 결국은 노후생활을 누가 잘하느냐로 인생의 가치가 분별되지요”

- 사진 찍는 일과 관련하여 계획하신 일이라면…

“내년 4,5월쯤에 청주에서 사진전을 하게 될 것입니다. 초대전이어서 신경을 많이 쓰게 돼요. 초대하는 언론사 측의 성의를 보아서라도 좋은 애들(곤충들) 선을 보여야지요. 야생화나 곤충에 대한 책은 그만 내려 해요. 그럴 돈으로 더 많은 애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 부디 건강하십시오.

글 /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시인



■ 조유성 생태사진작가는…

* 1935년5월 전남 무안 출생(호적엔 1937년생)
* 광주여고 졸업(1956)
* 청주대 경영대학원 수료(1978)충청북도전국사진공모전 금상(1978)
* 1979년 1회 개인전을 비롯, 2016년까지 개인전 6회.
* 제주도 초대전(1988)
* 후지포토순회전(1988)
* 곤충,들꽃 초대전(1991)
* 대한민국사진전람회 운영위원(1993)
* 국림수목원기획전(1995)
* 동양일보월간화보 라이프지 편집위원(1996)
* 한국사진작가협회 이사(1996)
* 한국사진작협회 충북지회장(1998)
* ‘영상의 해’중앙조직위원(1998)
* 공주산립박물관 초대전(1999)
* 문화관광부장관 표창(19999)
* 한국사진작가협회 사진문화상(2000)
* 43회 청주시문화상(2000)
* 한국사진작가협회 여성분과위원정(2001)
* 국립수목원 초대전(2001,2003)
* 사진집 ‘한국의 곤충’출간(2004)
* 러시아 울리아노브스크국립대 명예박사(2004)
* 러시아연방정부 초청 사진전(2004)
* 한국출판문화상 수상(2004)
* ‘곤충도감’출간(2008,지식서관)
* ‘사진으로 보는 식물백과’출간(2011,지식서관)
* 현재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시 프로볼링고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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