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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 서서 / 유영선이 만난 사람 - 강병규 전 황간역장
이 길에 서서 / 유영선이 만난 사람 - 강병규 전 황간역장
  • 유영선
  • 승인 2018.07.0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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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찾아 기차로 떠난 길… 시골역사(驛舍)엔 시(詩)처럼 그가 있다
플랫폼에 놓인 100여개 항아리에는 시어들 가득… 대합실역 쪽방은 갤러리
시골 황간역장으로 부임… 폐쇄 위기 극복하고 ‘문화콘텐츠 역’ 탈바꿈
황간역 플랫폼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항아리 시편’들.
황간역 플랫폼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항아리 시편’들.

 

기차는 앞으로 가는데/ 산은 뒤로만 가고

생각은 달려가는데/ 강물은 누워서 가고

마음은 날아가는데/ 기차는 자꾸 기어가고

(정완영의 시 ‘외갓집 가는길’)



요즘 사람들에게 기차역은 어떤 이미지일까. 쉴 새 없이 점멸하며 열차시간을 알리는 전광판, 위아래로 바쁘게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그리고 귀에 레시버를 끼고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들고 걸어 다니는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곳. KTX나 SRT 탑승이 생활화되면서 어느 사이에 역의 이미지는 부산하고 바쁜 곳이 돼버렸다.

고속열차들이 눈깜빡 할 사이에 지나치는 작은 역에 대한 추억은 잊은 지 오래다. 그 추억을 찾아 열차를 타고 황간역으로 떠났다. 청주역에서 탄 무궁화호는 대전역이 종점이라서 그곳서 환승을 했다. 열차는 옥천 영동역을 지나 황간역에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플랫폼에서 개망초꽃과 금계국이 먼저 손님을 맞는다. 플랫폼에 풀을 키우는 역이라니.

열차에서 같이 내린 한 떼의 여성들이 플랫폼에서 단체사진부터 찍는다. 서울 어느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공정여행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란다.

그들을 피해 천천히 걸으며 플랫폼에 놓인 항아리에 적힌 시들을 읽었다. 시항아리는 역사를 지나 역 광장에까지 이어졌다. 무려 100여점이 넘는 시항아리였다. 누가 이런 일을 벌였을까. 그가 궁금했다.



-안녕하세요. 강병규 역장님이시죠.

“네 맞습니다. 과거 역장이었고 지금은 이 역을 지키는 역무원으로 다시 일하고 있습니다.”

그의 안내로 작은 역사 안을 돌아보았다. 긴 의자 몇 개가 놓여있는 대합실 옆 쪽방은 미니 갤러리로 꾸며져 있었다. 갤러리의 전시일정은 이미 올 12월까지 차 있었고, 내년에도 벌써 일부는 예약이 되어 있었다. 그와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자 2층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무인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그 곳은 지역문화예술의 공간이었다.

-황간역이 꽤 오래된 역 같네요.

“황간역은 110년 역사를 지닌 역입니다. 이 일대에선 역세권이 가장 넓은 큰 역이었죠. 황간, 매곡, 상촌, 추풍령일부지역과 경상도 상주의 모동, 모서, 화령 등 이용객들이 지역성을 벗어나는 역이었습니다.”

-역과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나요.

“저는 논산출신으로 철도학교를 나온뒤 평생을 열차 승무원으로, 교육원으로 역이나 철도청 본사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2012년 12월7일 36년 만에 역장으로 발령이 났는데 그 역이 황간역이었어요. 황간은 처가가 있는 곳으로 우리 가족에겐 남다른 곳입니다. 1992년 부역장으로 황간역에 근무한 적은 있었지만, 그래도 직장생활의 마지막을 황간역장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 기뻤습니다.”

-그래서 이 역이 이렇게 달라진 것이로군요.

“아니오, 처음엔 이렇게까지 역을 가꿀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 역에 부임했을 땐 시골역장으로 역을 예쁘게 가꾸다가 여생을 황간에서 보내겠다는 소박한 생각정도였죠. 그런데 2013년 본사에서 황간역을 없앨 계획을 세운 것이에요. 이용객이 줄어드니까 경영합리화를 위한 당연한 결정이었겠지만, 저는 기가 막혔어요. 생각해보세요. 저는 역장이 되기 위해 이곳으로 왔지 역을 없애기 위해 온 역장이 아니었거든요. 마지막 역장이 되지 않기 위해선 역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민을 했어요. 반평생을 역에서 산 사람으로서 역이 우리에게 어떤 곳인가를 되돌아봤죠. 생활 문화 교통의 중심지, 만남의 기쁨과 이별, 애환과 추억이 있는 곳...그래서 문화를 콘텐츠로 한 역으로 바꿔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문화콘텐츠라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열차를 이용하던 시절 역은 생활의 중심지였고, 문화의 집결지였죠. 그래서 혼자서 일을 벌이신 것인가요?

“마침 지역에 ‘황간마실’이라는 모임이 있었어요. 50대들로 황간중학교 35기 모임인데 고향사랑이 남다른 분들이었죠. 그들에게 역 이야기를 털어놓고 고향역을 살려보자고 했죠. 한마디로 의기투합한 것입니다. 무엇을 할까? 어떻게 컨텐츠를 만들어 나갈까? 여러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고향역을 살리기 위한 50대들의 의기투합, 신나고 재미있었겠어요.

“네.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이었어요. 소설가 한 분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역 마당에 항아리를 놓고 동네사람들이 참여해 그림을 그리자고 했죠. 그게 되더라고요. 우리는 나서서 항아리에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써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역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동네음악가의 색소폰 연주,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사진전, 하모니카 연주 등 고향의 색깔을 드러내는 이벤트 행사들을 만들어 나가시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민들이 호응을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음악회가 열리면 동네분들이 한분 두분씩 모여들었습니다. 자가용이나 버스를 타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이 역에 올 일이 없어졌는데 공연과 전시를 보러 오기 시작한 것이죠.”

-황간역에 내리자 마자 눈에 띈 것이 백수 정완영 시인의 시 ‘외갓집가는 길’이었어요. 그리고 돌아보니 유독 백수 선생님 시가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던데 어떤 인연이 있는지요.

“역을 문화적인 공간으로 가꾸려다보니 스토리텔링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영동의 최정란 시인이 백수 선생님이 김천에 사실 때 매주 황간에 들러 식사를 하시고 외가를 둘러보셨다는 이야기를 전해서 외가가 수봉재 너머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백수 선생님은 유독 외갓집에 관한 시나 동시 등을 많이 남기셨는데, 그렇다면 어린 시절 이 황간역을 자주 다니셨겠구나 생각이 되어 그 분의 시를 테마로 황간역을 외갓집가는 역으로 부각시키도록 노력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불로그나 페이스북 유투브 등에 황간역의 사진이나 행사들이 소개되면서 전국의 여러 곳들에서 연락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어떤 변화가 생겼습니까.

“일단 역을 이용하는 손님들이 늘어났지요. 오늘처럼 단체여행을 오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황간역을 이용한 관광상품이 만들어져서 월류봉 반야사, 노근리 평화공원, 물한계곡, 와이너리 등 이 지역 자연이나 유적지를 돌아보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덕분에 지역의 식당들도 활기를 찾게 되었어요. 하루에 500명씩 다녀가기도 하고 학생들은 단체로 역체험을 하러 오기도 합니다. 기차가 아니어도 버스나 자가용으로 역을 찾아오는 분들도 많고 또 서울이나 부산같이 먼 곳에서 한두 분씩 와서 갤러리의 전시를 보고 카페에서 쉬다 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공연을 하겠다고 연락 오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전문인은 물론 동호회 할동하는 분들은 여행을 오듯 단체로 기차를 타고 와서 역마당에서 공연을 합니다. 공연이 끝나면 주민들과 출연자들이 함께 떡과 과일들을 나눠먹으며 뒤풀이를 하는데 주민과 출연자들이 어울리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지역사회에서도 역에 대한 관심이 달라졌겠네요.

“물론입니다. 10년 만에 역에 와봤다고 하면서 옛날이야기를 하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손님이 오면 무조건 역으로 데리고 와 구경을 시켜준답니다. 모두들 역에 대한 자부심들이 대단합니다. 그분들이 역이 예뻐졌다고 칭찬하면 보람이 느껴지지요. 제가 블로그를 통해 행사를 예고하는데 조금 늦게 올리면 서울에 사는 손자에게 자랑하려는데 왜 아직 안올리느냐는 재촉전화도 하고요.”

-외부에서도 황간역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황간역은 인터넷에서 유명한 역이 되었지요. 덕분에 외국인들도 찾아옵니다. 한일철도교류회 철도동호인모임들이 방문하기도 했고, 중국유학생들도 단체로 찾아왔습니다. 또 일본 철도관련학과 교수도 벤치마킹을 하고자 찾아오기도 했고 일본 NHK에는 역의 활성화 모델 중 하나로 황간역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다시 시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겠습니다. 이 많은 시들은 누가 고르며, 기준이 있나요?

“기준 같은 것은 없습니다. 황간역을 찾는 분들의 정서에 맞을 것 같은 시를 임의로 고릅니다. 너무 어렵거나 관념적인 시는 피하고 읽으면서 쉽고 이해하기 쉬운 시를 고르는데, 애로점은 자기 시를 보내거나 부탁하는 분들의 시를 거절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지역성 극복을 위해 지역시인의 시를 많이 옮겨놓지 못하는 것이 좀 미안하지요.”

-혹시 백수 선생님은 황간역이 이렇게 달라진 뒤 와보셨는지요.

“2013년 역의 모습을 바꾸면서 백수선생님 시를 많이 활용했습니다. 백수선생님 외가동네를 찾아가 기왓장을 주워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장식을 해놓았습니다. 그리곤 그해 말인 12월 쯤 초청을 했지요. 많이 좋아하셨어요. 다음해 5월엔 백수선생님의 동시위주로 동시그림전과 음악회를 열었어요. 그 시화전과 음악회 제목이 ‘시인의 외갓집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뒤 백수 선생님은 10번 이상 황간역을 찾아 오셨습니다. 이제 고인이 되셔서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네요.”

-결국 문을 닫기로 결정됐던 황간역이 이렇게 주민들 곁으로 돌아온 것이군요. 힘든 일은 없으셨나요.

“참 이상하죠. 이 일을 하면서 누구와도 갈등이 없었어요. 본사에서도 작은 역들의 방향성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까 지원은 못하지만 막지는 않았죠.”

-그래서 황간역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게 되었군요. 역장이 아니고 역무원이라니 직제가 어떻게 되는 것이지요.

“아 제가 지금 58년생 61세입니다. 철도청은 58세가 정년인데 저는 임금피크제로 2년을 더 연장 받아 역무원으로 근무를 하는 것이죠. 올 12월이면 퇴직을 합니다. 퇴직하고도 아마 벌여놓은 일들에 대한 책임 때문에 계속 나오게 되겠죠. 항아리보수, 그림손질(이곳에 있는 그림은 대부분 그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꽃심기, 물주기 등 늘 할 일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이제 공부도 좀더 하고 싶고요. 모르는게 너무 많아요. 철학, 인문학, 인생, 종교 등등. 가족(부인 정은숙 여사와 딸)에게도 충실하고 싶고요.”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황간마실협동조합이 운영하는 2충 카페에는 연신 기차소리가 가득 찼다가 사라지곤 했다. 황간역에 서는 기차는 하루 7,8대. 매일 140대의 열차가 이곳을 지나간다고 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엔 저마다 간이역이 하나씩 있다.

바쁘게 달리다가 문득 쉬고 싶은 곳, 흔들리는 풀꽃 사이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싶은 곳. 황간역은 그런 곳이다.

문을 닫게 된 역을 시와 그림 음악이 있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찾아오는 곳으로 만들고 새로운 문화를 가꿔가는 강병규 역장. 그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를 타기위해 플랫폼으로 들어서는데 황간우체국이라고 쓴 빨간 우체통이 눈에 들어왔다. 기차를 타기 전 엽서를 부칠 수 있도록 실제로 운영되는 우체통이란다. 우체통의 뒷면에는 유치환의 시 ‘행복’이 적혀있었다.

‘사랑을 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황간역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며 우체통에 마음의 엽서를 띄우고 기차에 올라탔다. 황간역의 모습이 점점 뒤로 밀려 갔다.



글 / 유영선 상임이사



■ 강병규 씨는

* 1958년 충남 논산 출생
* 1976년 국립 철도고등학교 졸업
* 1976년 12월부터 약 41년간 철도원으로 재직
* 2010년 코레일인재개발원 서비스아카데미센터원장
*2011년 서울메트로 CS전문강사양성과정
* 2012년 12월 황간역장 부임
* 2013년 황간역을 ‘시와 그림, 음악이 있는 고향역’으로 탈바꿈 시킴
* 매달 음악회와 전시회개최, 황간마실카페 운영
* 2012년 우송대 경북보건대 초빙강사
* 2015년 구로여성인력개발센터 공정여행기획자 양성교육
* 2015년 자유학기제 진로체험학습
‘시골역장의 철도이야기’
* 2017년 황간역장 퇴임
* 현재 임금피크제 황간역 역무운용원으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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