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혁명의 대표 도시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만난 여학생. 다락방에 모여 골목을 내려다보며 수줍게 웃는 모습은 여느나라 못지 않게 맑고 예쁘다.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별 다섯 호텔 멜리야를 거쳐 번화가 두루 살피는 동안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그들 분주한 삶의 단편을 지켜봤다. 화물차를 개조한 시내버스 구아구아며 염소가 끄는 마차, 6. 25때 남침용으로 쓰였던 소련제 오토바이 같은 운송 수단이 쉼 없이 사람 실어 나르는 모습은 마치 전쟁 중인 듯했다. 매연 내뿜는 차들이 오가느라 복잡하고 시끄러웠지만 좁은 길은 거의 다 일방통행이어서 양쪽을 모두 살피지 않아도 되도록 해 두었고, 수없이 맞닥뜨리는 오토바이지만 횡단보도나 교차로 신호 무시하는 법이 없었고, 낡은 엔진이 내는 소음만 견뎌낸다면 위험하단 생각이 들지 않아 어떤 위급한 상황이 닥쳐도 대처가 가능할 정도였다. 잠깐 둘러봤지만 그것만으로도 산티아고 데 쿠바가 혁명 도시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햇살 내리쬐는 꼬뻴리아에 앉아 아이스크림 사 먹는 사람들과 손가락 굵기로 매듭지은 부추 상자 앞 중년 여자가 묘한 대비를 이루는 게 이채롭긴 하지만 영화 촬영 명소로 알려진 빠드레 삐꼬 계단 찾는 게 급해 걸음을 다잡았다.

그러는 동안 마주친 장사치들 상술은 혼란 그 자체였다. 물건 사라고 고함을 질러대거나 퉁탕거리며 뭘 두드리느라고 잠시도 쉬지 않았다. 또 다른 장사치가 어디서 불쑥 다가와 귀에다 대고 고함을 지를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어깨 부딪치는 사람들 속을 헤쳐 나온 뒤에도 습관처럼 뒤를 돌아봤다. 인파 뜸한 골목을 벗어나려는 순간 나를 지켜보는 듯한 예감 때문에 주위를 살폈다. 시선의 정체는 다락방에서 내려다보는 여고생 세 명이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그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먼저 장난을 건 그들은 수줍은 표정을 감추기 위해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올라, 라는 인사말로 그들을 불러냈더니 얼굴만 빠끔 내밀었다가 다시 숨기를 되풀이했다. 대 여섯 번 숨바꼭질이 이어지다가 짬짜미를 한 듯 혀를 쏙 내밀며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리는 그들. 다시없을 기회를 놓치기라도 할까봐 모멘또, 라고 짧게 끊어 말한 뒤 몇 컷 사진을 찍고 나니 곧바로 숨어 버렸다. 더 이상 시선 맞출 기회를 잃어버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계단이 어딨는지 물으려던 게 허사가 되고 말았다.

새 모이 파는 가게에 들렀지만 아무 상관없는 계단을 물어보기엔 머쓱했다. 대신, 닭싸움 하는 곳이 근처에 있는지 물었더니 투계장은 도시 가까이에 허가가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아마도 스페인 식민지 시절 퍼뜨린 닭싸움이 도박성을 띤다고 혁명 후 금지시킨 것 같다. 기르던 새가 피부병 걸릴까봐 일광욕시키기도 하는 나라이니 닭싸움 보려면 시골 아니고선 어렵단 말에 흡족한 표정으로 가게를 나섰다.

동영상에도 자주 등장하는 계단을 찾아 바삐 걷느라 발바닥에 불이 날 것 같다. 바다를 끼고 연기 피어오르는 굴뚝 보이는 곳에 다다른 순간 무릎이 푹 꺾였다. 어디엔가 쉴 곳이 있을 거란 생각에 두리번거렸더니 전깃줄 복잡하게 얽힌 골목 끝에 오래된 계단이 보였다. 나이 든 사람들이 쉬고 있었지만 앉고 싶다는 생각에 앞서 계단을 셌고, 그 순간 이곳과 부산 구도심의 40계단 숫자가 같다는 게 퍼뜩 떠올랐다. 좁지도 가파르지도 않은 계단은 다섯 칸 마다 계단참이 설치되어 오르내리는 사람 숨 가쁘거나 낙상하지 않게끔 지어졌다. 하찮은 계단에서 럼주회사 대주주의 휴머니티며 사회 헌신 정신까지 읽을 수 있었고, 묻고 물어 빠드레 삐꼬 계단을 찾아낸 보람 때문에 다리 통증이 금세 사라졌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았던 전쟁에 이어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시작된 피난살이. 대부분 산지로 이뤄진 부산에서 주사위 던져 만든 듯 아무렇게나 낸 골목을 오르내리려면 계단이 아니고선 힘들었다. 경사 급한 곳에 낸 계단은 지게를 지고 오르거나 하루 일을 마친 사람이 오르기엔 힘에 부쳤다. 계단 아래엔 피난 시절 그대로의 지게꾼 모습이며 젖먹이 업은 채 물동이를 인 여자 동상을 세워 당시의 처절했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오래 시간이 흘렀지만 부산 구도심에 남아 있는 40계단은 여러 가지 문화 프로젝트 덕분에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재해가 참혹하다는 걸 리얼하게 드러내는 부산의 40계단과 달리, 오래 전부터 혁명에 대비했던 산티아고 데 쿠바의 빠드레 삐꼬 계단은 안전까지 고려되어 한결 여유로워 돋보이기까지 한다.

40계단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돌을 쌓아 만든 지하 요새는 게릴라전을 펼칠 때 요긴하게 쓰였을 것 같다. 경찰서로 쓰이던 거길 혁명군이 습격해서 피델 상륙을 도왔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다. 요새 입구 벤치에 앉은 남자들은 외지인들이 해꼬지라도 할까봐 일부러 언성을 높이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웃 남자도 웃통을 벗어젖힌 채 슬리퍼를 질질 끌고 두려울 정도로 고함을 지르며 다가왔고, 이방인인 나를 의식해서인지 남자와 눈을 힐끔거리며 어떻게든 쫓으려 모의하는 듯 보였다. 다리가 아파 벤치에 앉아 쉬고 싶은 욕구마저 단박에 앗아가 버렸던 두 남자. 밤 깊은 줄 모르고 골목마다 모여 떠들어 대는 거나 모든 운송 수단을 동원시켜 날마다 비상 훈련하는 듯 보이는 산티아고 데 쿠바. 시가지를 바삐 오가는 시민 모두의 눈빛과 몸짓에서 풍겨나는 투사의 결기가 연기가 아닌 게 오롯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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