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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치비화(26) “독립은 당연한 일”… 조선인 대동단결에 일제 ‘긴장’
조선통치비화(26) “독립은 당연한 일”… 조선인 대동단결에 일제 ‘긴장’
  • 박장미
  • 승인 2018.07.15 2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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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남대문 역에서 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의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 강우규(1855~1920) 선생.
 

■폭탄범인과 학생소요사건

●폭탄사건의 범인 수사

▷야마가미 “지바씨는 당시 경기도 경무부장이셨는데 이는 일본의 경시 총감의 직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경성이 혼란하면 조선 전도가 혼란하게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그 때의 대임을 맡으셨던 만큼 매우 고생을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게다가 당시 경성에서는 폭탄사건을 비롯하여 수많은 잡다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던 것 같은데, 그러한 현장에서 경기도 경찰부장 직을 맡아 체험하신 고심은 결코 용이한 것이 아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거의 모든 사건들이 극비에 부쳐야 할 필요가 없어졌으리라 생각되니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지바 “저는 총독․총감 양각하가 부임하신지 2일 후 경성에 도착했습니다. 착임하자마자 폭탄범인의 수사를 제1의 임무로 인수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아카이케 경찰국장은 물론 마루야마사무관, 도키나가이 사무관 등 총독부 간부 여러분이 전력을 기울여 여러 가지로 수사계획을 세웠는데 나는 당시 책임자로서 아무래도 범인을 검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책임인 만큼 다른 사람보다도 더 강한 책임의식을 느꼈고 우선 경찰서장을 전부 소집하여 제1회 대책의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당시 모인 서장들 중에는 헌병도 있었고, 또 헌병에서 바뀐 서장도 있었고, 아직 부임하지 않은 자도 있어, 거의 지리멸렬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력을 기울여 수사 기능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먼저 사건의 단서를 어떻게 잡게 되었는지에 대해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김태석(金泰錫)이라는 당시 고등경찰과의 조선인 경부(警部)가 9월14~5일경부터 단서를 잡아 접근 끝에 9월 17일에 한 명의 협의 자를 체포하여 종로경찰서로 구인해 왔습니다.

당시 저는 제3부장 회의를 열고 있었는데 한참 회의하고 있는 도중에 사환이 나에게 와서 지금 폭탄사건의 협의 자를 체포했는데 무슨 말을 물어도 일체 대답하지 않고 경찰 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을 데려와야 이야기 하겠다고 벼르며 취조에 불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귓속말로 알려 주었습니다. 거만한 태도로 한 마디도 입을 열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와 주었으면 한다는 내용이므로 저는 회의석상을 떠나 그 길로 즉시 종로경찰서로 가서 3층에서 모리(森)경부를 통역으로 하여 혐의자를 심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혐의자라고 하는 자는 60여세의 노인으로 그의 이름은 강우규라는 자였습니다. 모리 통역이 말하기를 지금 여기서 심문하시는 분은 조선의 경시로서는 총감이니까 경찰 최고 장관에 해당된다. 그러니 빨리 모든 사실을 자백하라고 말하자, 비로소 그 때 처음으로 그 노인은 그렇게 말하겠다고 입을 열어 나의 심문에 대해 전후 약 2시간에 걸쳐 일체 숨김없이 대담하게 모든 것을 자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자백이라기보다 오히려 조선 독립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소견 발표회를 방불케 했습니다. 방안을 서서 왔다 갔다 하면서 때로는 가슴을 치기도 하고, 때로는 물을 달라고 하여 물을 마시면서 진술을 계속했습니다.

그의 자백 골자를 보면 당사자는 오랫동안 시베리아지방을 방랑하면서 목사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조선이 독립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이 독립하면 일본에서 파견된 총독 및 그 이외의 관리가 일본으로 돌아갈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새롭게 총독․총감이라는 자가 부임해 온다니 너무나 불합리하다고 생각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50원을 주고 러시아인으로부터 폭탄을 사와 그것을 하까마(일본 옷의 한 종류)속 사타구니 쪽에 메달아 숨겨가지고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원산에 상륙, 거기서 이틀을 자고 경성에 잠입하여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총독․총감이 남대문 정차장에 내리는 것을 확인하고 당일 경계선 밖까지 근접하여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마차와의 사이가 너무 벌어져 있었기 때문에 주저하고 있던 중 귀빈실 쪽의 경계선이 일시적으로 좁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이를 후에 조사하여 확인한 바에 의하면 처음 경계선에서 두 세줄 정도 사람들이 앞으로 밀려 나오자 군중이 그 쪽으로 몰려 잠시 경계선이 좁아졌다는 것 같습니다. 이를 계기로 강유규는 사람들 뒤쪽에 숨어 있다가 기회를 노려 폭탄을 투하했던 것입니다.

투하와 동시에 소동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제 나의 목적은 달성했구나 하고 생각하며 체포될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자기를 주목하는 사람이 없었고 눈을 감으니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는데 “너의 임무는 완수 했으니 이제 도망 가거라” 하는 계시가 들리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대로 유유히 군중 속을 빠져나와 정차장에서 겨우 1정반(町半)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박여관(朴旅館)에 들어가 자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 끈질긴 경찰의 수배에 의해 드디어 체포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취조에 의하면 그가 사용한 폭탄은 계란보다 조금 컸고 하까마 밑에서 꺼내어 던질 때에 비녀 같은 것을 옆에서 빼냈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기 때문에 폭탄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통역을 통해 되풀이해서 묻자 범인은 도면까지 그려가면서 설명을 해주더군요. 나중에 이를 우편으로 육군 측에 조회한 결과 이것은 최신식 폭탄이고, 비녀 같은 것은 안전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가 한 자백이 너무나 선명하여 혹 자기 명예를 얻기 위해 일부러 사실을 조작하려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범인을 확인할 방법을 궁리하고 있던 중 유일한 목격자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목격자는 주차장에 근무하고 있는 보이로서 오노(大野)○○라는 18~9세가량의 소년이었는데 그는 폭탄을 투하하는 순간 높은 건물에 올라가 군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한 조선인이 손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폭탄이 폭발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보고 오노라는 소년은 조선인의 뒤를 쫓았고 도중에 만난 순사에게 저 사람이 폭탄을 던진 범인이라고 알렸으나 순사가 뒤돌아보지도 않고 지나쳐 버렸기 때문에 그 사이에 범인을 놓쳐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있었다고 하기 때문에 오노라는 소년을 정차장에서 불러 내가 심문하고 있는 뒤에서 혐의자를 보고 확인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오노 소년은 처음 내가 본 바에 의하면 흰 상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상투를 잘라버려 조금 용모가 달라 보이지만 대략 체격이나 풍모 등으로 봐서 틀림이 없는 것 같다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는 범인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여 검사국에 송치했고, 그 후 취조 결과 정범이라는 것이 확인되어 약 1년 후에 사형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사형에 처할 때에는 조선의 풍습에 따라 유해를 천으로 싸서 관에 넣어 공동묘지에 매장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아들 강중건(姜重建)이라는 자가 경성에 나타나 '아버지의 유해를 천으로 싼 것은 조선식 재래 매장법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 천을 비단으로 하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불효를 범하게 된다. 그러니 그렇게 하도록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의 과격한 말을 퍼뜨리면서 때로는 대도에서 연설을 하는 등 불온한 행동을 일삼아 매우 골치를 않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경찰서에서 본인을 위로 설득한 결과 본인의 말대로 해주기로 하여 유해를 비단으로 싼 후 그 사진을 본인에게 건네주자, 그 때서야 납득을 했고 무사히 이 일을 마무리 할 수가 있었습니다.”

(필자 주 : 지바 경기도 경찰부장은 '미운 마음은 없습니다. 입장을 바꿔보면 강우규는 우국지사였습니다.'라고 평가했다.)
 

충북도립대학 명예홍보대사
충북도립대학 명예홍보대사

●배재학교의 만세 소요

▷지바 “다음으로 매우 고심했던 것은 독립기념일의 불온한 사건과 배재학교의 만세소동이었습니다. 조선인들이 독립기념일이라고 칭하는 3월1일이 가까워 오니 시내 거의 모두가 불온한 계획을 세우느라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각 학교가 일제히 휴교할 것이라는 선전도 빈번히 들려왔으므로 지금 이 시점에서 이 같은 불상사가 다시 돌발하게 된다면 영구히 독립기념일의 선례를 만들어 주는 격이 되어 통치 상 매우 불리한 화근을 남길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경성에서 평온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작년 10월1일에 있었던 폐점운동 때 행했던 것과 똑같은 계획 하에 경성 시내 경비대 천여 명의 경찰관을 경복궁 문 앞에 집합시켜 점검 조련한 후 종로 거리를 행군시켰고, 경비대 및 소방대를 불러 연습을 시켰으며 일대 시위운동을 한 후 시내에 경비를 세웠습니다. 이러한 시위운동이 주효하여 다행히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었고 불온한 계획을 세웠던 사람들도 별 사고 없이 끝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학교의 휴교문제에 대해서는 당시 총독부에서 학무국과 경무국 당국자가 매우 신경을 쓴 결과, 이 또한 커다란 사고 없이 3월1일을 무사히 넘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3월2일, 만일을 생각해서 경계를 완화하지 않고 있었는데, 정오 무렵까지 전혀 어떤 정보도 입수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조금 안심하고 사무 상 필요한 협의를 하기 위해 경무국에 들러 시라가미 고등과장과 이야기를 한 참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대문 경찰서의 모리(森) 경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는데, 지금 배재고등보통학교 학생이 운동장에서 교실에 입실하기 전 만세소요를 일으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떤 조치를 취해야 좋겠습니까하고 물어왔기 때문에 저는 즉시 경무국 전화로 지시했습니다. 먼저 서대문 경찰서에 있는 백 여 명의 경찰관을 소집하여 전부 출동시키고 학생들의 외출을 일체 차단시킬 것. 그리고 서장은 친히 교장과 면담하여 선동 주모자의 인도를 요구할 것. 이 두 가지를 즉시 실행할 것을 지휘한 후 서둘러 제 3부로 갔습니다. 학무국 방침은 학교 내에서 일어난 사건인 만큼 가능한 한 경찰력을 사용하지 않고 학교문제로서 종말을 내고 싶어 하는 듯한 의향이었으므로, 경찰로서는 일시적이나마 그 요구에 응해 경찰이 손을 빼고, 학무국에서 하는 대로 맡겨두기로 했습니다.

학무국은 다나카(田中) 시학관(장학관)과 경기도 제 1부에서 계원이 출장을 나가 교장과 면담을 갖고, 이 일의 해결을 모색하려 했지만 교장 아펜젤러씨는 교장의 직책을 걸고 충분히 그리고 빈틈없이 조치했더라도 학생들이 불온한 행동을 했을 경우 교장의 직권은 미치지 않는 것이고 이는 학생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교장이 주동자 인도를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본다는 취지를 밝혔기 때문에 학무국에서도 그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기억하기에는 석양이 질 무렵까지 담판이 계속되었다고 생각되는데, 결국 학무국 쪽에서는 아무런 해결도 하지 못한 채 경찰 쪽에 이를 인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의 비밀 담을 한 가지 말씀드리면, 시라가미 고등과장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에 저는 지라가미군에게 학무국과 교장의 담판의 경과를 들은 후, 이러한 시점에서 경찰이 언제까지나 손을 빼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경찰과 학무국의 사건 처리에 관한 재가에 대해서는 정무총감으로 소위 어전회의를 열어 총독부의 방침을 빨리 결정해서 알려 달라고 전화로 요청하자, 시라가미군도 동감이라고 말하여 그 방침대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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