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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치비화
조선통치비화
  • 박장미
  • 승인 2018.09.16 2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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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조선통치비화

■조선어 보급과 미술전시회
●맹盲·성聲·아啞와 같은 정치

▷야마가미 “미즈노 각하께서는 경성에 근무하실 때 조선어를 배우셔서 조선인과 일본인들의 회합에서 조선어로 연설을 하시어 여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각하께서는 지금까지도 그들 사이에서 화제꺼리가 되고 있고, 조선인들이 매우 기뻐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각하의 정무가 매우 번거롭고 바쁘심에도 불구하고 조선어를 공부하셨다는 것은 대단한 분투노력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뭔가 느끼신 점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어 공부를 하시게 된 것인지, 아니면 필요에 의한 것이었는지, 또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일 내에 조선어로 연설을 하실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도달하실 수 있었는지요. 후배들로서는 가장 흥미 있는 일로 생각됩니다. 지금도 가끔씩 각하의 조선어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고 있으므로 조선통치에 있어 하나의 삽화로서 그 내막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미즈노 “뭐 별로 특별히 말씀드릴 것도 없지만, 모처럼 질문을 해오셨으니 먼저 제가 조선어를 배우게 된 동기부터 말씀드리지요. 아니 조선어를 배웠다고 해도 그렇게 능숙한 것은 아니지요. 심심풀이 삼아 한 정도이지요. 하지만 저는 조선어에 상당히 흥미를 많이 가지고 있고, 지금도 변함없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1919년 9월 제가 조선에 정무총감으로 부임하여 조선의 땅을 밟은 후, 직접 조선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제일 처음 느낀 것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조선과 일본과는 예부터 동종동문(同種同文)의 국가라고 칭하고 있지만, 쌍방의 언어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조선 측 인사와 대담을 해도 거의 상호 간에 의사가 통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당시 일본의 조선통치야말로 맹농아(盲聲啞)의 정치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조선인들끼리 서로 이야기해도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으니 마치 농자(聲者)가 듣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또 수많은 서류나 게시물들이 한글로 쓰여 있는 것을 보고도 이를 읽을 수가 없으니 마치 이는 맹자(盲者)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조선인에게 말하려 해도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 흡사 아자(啞者)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마치 맹농아(盲聲啞)의 정치와 같다고 술회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통역을 개입시키면 양자 간의 대담이야 가능하겠지만, 통역이라는 것은 단지 말로서 양자 간의 중개 역을 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이어서 상호간에 마음이 통할 수 있도록 전달해 줄 수 없으며, 말하는 당사자들 사이의 진정하고 미묘한 의사나 감정이 통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일본인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볼 때 통역을 두고 조선인과 말을 하면, 의미는 통하지만, 서로 간에 그 느낌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상급 관직에 있는 자는 공식적 회담이 많으니까 통역을 써서 이야기해도 별지장이 없겠지만, 경찰관이나 정·촌·역(町·村·役)의 관공 소에서 일하는 관리, 또는 학교의 교원 등은 일상적으로 조선인들과 직접 접촉해야 하기 때문에 일일이 통역을 개입시킬 수가 없으니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불편한 사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오해가 생기는가하면, 생각지 않는 분쟁이 일어난 적도 있어, 진실한 의사가 서로 소통되지 않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 유치원 원아들의 실제를 보아도 일본인 아동과 조선인 아동이 함께 유희 등은 하고 있지만, 조선 아동은 조선인들끼리 친구를 사귀고 일본 아동은 일본인들끼리 친구를 사귀어 노는 식이었습니다. 이는 반드시 조선 아동이 일본 아동을 싫어하고, 또 일본 아동이 조선 아동을 멀리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언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따로따로 놀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 초등학교 등지에서도 조선인과 일본인을 공학할 수 없었던 것은 주로 언어상에서 오는 문제가 컸기 때문입니다(실제는 일본인 선민사상이 강하였음). 따라서 서로가 통할 수 있는 언어를 갖는 다는 것은 내선융화(內鮮融和)를 위해 매우 필요한 일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은 지금 일본 영토이고, 조선인은 곧 일본인이니까 종국에 가서는 조선인들 모두가 일본어로 말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 이상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본어 교습이 장려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2천만에 가까운 조선인들을 일일이 일본어로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고, 또한 조선어를 완전히 폐지시킨다는 것도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당시 조선인들 중에서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자는 백 명 중에 두 사람정도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점차로 일본어 교육이 보급됨에 따라 일본어를 해독한 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선인 모두가 다 일본어로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아직도 전도요원한 일인 것입니다. 여기에 조선과 같은 이민족을 통치하는 데는 언어문제가 극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시 조선에 있는 일본인 관공리들에게 조선어를 장려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특히 경찰관, 정·촌·역(町·村·役) 등의 관공서 관리, 학교의 교원 등 직접 조선 민중과 접촉하는 자는 가능한 한 조선어를 배울 수 있도록 장려했습니다. 이 때문에 상당액의 예산을 계상하여 조선어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특별수당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아마 이 제도는 지금도 계속해서 실시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복입고 갓을 쓴 미즈노 랜타로(왼쪽)과 정복을 입고 있는 미즈노 랜타로
한복입고 갓을 쓴 미즈노 랜타로(왼쪽)과 정복을 입고 있는 미즈노 랜타로

 


●조선어 학습의 장려

▷미즈노 “이렇게 하여 한편으로는 하급관리들에게 조선어를 장려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 자신도 조선어를 배웠습니다. 실무 상 제가 조선어를 굳이 배울 필요는 없었습니다. 필요한 경우 통역을 써서 이야기하면 되기 때문에 꼭 내가 직접 조선어를 배워야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쉬운 말이라도 조선어를 알아들을 수 있으면 아무래도 편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신문지의 표제나 게시문 등을 보아도 그 대요를 알 수 있고, 조선인들 사이에 서로 일상적으로 나누는 잡담을 한 두 마디라도 알아들을 수 있다면 모든 면에서 편리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로는 조선어가 언어학 상 일본어나 지나어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도 흥미 있는 것이라 생각되어 정무의 여가나 당구 치는 시간, 바둑 두는 시간을 전폐하고 조선어를 습득하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후지나미(藤波) 통역관의 소개로 당시 경성 사범학교에서 강사를 하고 있던 류근(柳根)이라는 선생을 관저로 초빙하여 조선어를 초보부터 배우게 되었습니다. 류선생은 상당히 한학에 조예가 깊은 한학자로 시문도 잘하는 사람으로 일찍이 일본에서 조선어 교사를 한 적도 있는 사람으로, 저를 사사(私師)할 당시는 경성사범학교에서 조선어 강사를 맡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인격 또한, 지극히 고매한 분으로 이 사람이라면 마음에 드실 거라고 후지나미 통역관이 권해왔기에 일주일에 3번 관저에서 퇴청한 후 촌시의 틈을 내어 조선어를 공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조선어는 발음이 어렵지만, 한학을 한 사람은 생각보다 배우기 쉽습니다. 조선어 중에는 글을 기억하기가 꽤 어려운 단어도 있지만, 한문으로 일단 바꾸어 생각하면 매우 이해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면, ‘ありがとう(고마워)’라는 말을 한자로 쓰면 感謝가 되는데, 조선어 발음은 ‘감사’라고 읽습니다. 또 날씨가 좋다. 나쁘다는 것은 조선에서 ‘天氣’라고 하지 않고, ‘日氣’라고 쓰고, ‘일기’라고 발음합니다. 또 ‘健康을 축하합니다’라고 할 때 ‘健康’이라고 쓰고 ‘건강’이라고 발음하게 되어 있어 한자를 중간에 개입시켜 기억할 수가 있기 때문에 한문으로 배우면 비교적 쉬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럭저럭 4, 5개월 공부하는 사이에 극히 일상적인 통역 회화 정도는 해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인과 조선인의 회합이 있었습니다. 1920년 가을이라고 기억되는데 (대정친목회(大正親睦會)라는 일본과 조선인 합동회합이었습니다. 그 석상에서 본인은 지금까지 배운 조선어 실력을 테스트해 보고 싶어서 제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조선어로 연설을 해 보리라는 생각으로 아주 간단한 인사말을 조선어로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주 놀란 듯 했습니다. 일본인 공무원들은 정무총감 직이 매우 바쁜 직임에도 불구하고, 언제 조선어를 배울 틈이 있었을까? 조선에 오기 전부터 조선어를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들이 전혀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조선어를 능숙하게 말하실 수 있게 되었는지 정말 놀랄 일이라며 서로 평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조선인들은 나를 보고 “대관이신 정무총감이 조선어를 말씀하신다는 것은 우리 조선인들로서는 매우 기쁜 일이다. 그 정도까지 조선을 생각하고 계시다니…….”하고 말하면서 매우 기뻐하는 기색이었습니다.

물론 내가 공적인 회합에서 굳이 조선어로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한 경우에 나는 통역을 쓸 수가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조선어를 배워야 할 필요가 없을지 모르지만, 연회석상 등에서 즉흥적이라 할까 서로 마음을 틀 수 있게 되었을 때, 조선어로 말한다는 것은 조선인 인사들의 호감을 사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나 자신이 조선어 연구에 아주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조선어를 배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으로 돌아온 후에도 조선어 연습을 계속했기 때문에 지금도 조선어 신문정도는 읽을 수가 있습니다.”



●조선어 연구의 동기

▷미즈노 “그 후에도 가끔 저는 브로컨(broken) 조선어를 사용하여 조선인을 웃겼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재미있게 생각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조선어 선생인 류선생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한학자였던 관계로 한문을 통한 조선어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 용어가 너무나 품격 높은 말이었고, 한어(漢語) 투가 강한 조선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정무총감의 조선어는 소위 인텔리 계급에서만 통하는 것으로 아주 어려운 조선어입니다. 일반 조선 민중들에게는 각하의 조선어는 통하지 않습니다.”하고 평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하여 저 자신도 조선어를 연구하게 되었고, 일반관리들에게도 조선어 연수를 장려했기 때문에 당시 관리들 중에서 조선어를 배우는 자가 많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또 새롭게 부임해 오는 지사들 중에도 조선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자가 많이 있었습니다.

원래 일본인은 외국어로 말하는 것을 대체적으로 꺼려하고, 또 능숙하게 구사하지도 못하지만, 서양인 선교사들을 보면, 우선 그들은 그 땅에 부임하는 즉시 가장 먼저 그 땅의 언어를 습득하는 것을 제일의 임무로 삼고 있습니다. 조선에 있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아주 유창하게 조선어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임지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조선어를 배우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교 선교사들은 설교도 조선어로 하고, 또 조선인 부락에 들어가 친밀하게 조선인과 교제하며 조선인의 말을 듣고, 자기가 말하려하는 바도 조선어로 충분히 말할 수 있도록 우선 어학의 수습에 매우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조선에 있는 예수교 선교사들이 조선인들과 친밀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일본 불교계는 대개 예수교 선교사들만큼의 열의가 없어, 불교 설교를 할 때에도 일본어로 하기 때문에 통역을 개입시키지 않으면 조선인들이 알아듣지 못하여 설교의 효과가 극히 희박합니다. 때문에 앞으로는 조선이나 만주·지나 등지에 가서 일을 하려하는 사람은 관민 모두 우선적으로 그 땅의 언어에 능통해야 한다는 것을 제일 먼저 마음에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여튼 일본인은 영어나 프랑스어나 독일어 등은 열심히 배우는데, 조선어나 지나어를 배우는 사람은 비교적 적습니다. 우리 중학교 학생들을 보아도 영어는 거의 전부 알고 있는데 비해, 동포의 언어인 조선어나 그 이웃 나라의 만주어나 지나어를 아는 학생은 거의 없습니다.

과거에 제가 문부대신으로 있었을 때, 영어보다는 오히려 지나어를 장려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낸 적이 있었는데, 희망자가 극히 소수였습니다. 지금은 바야흐로 모든 점에서 동양이 세계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때입니다. 그러한 동양 무대에서 장래 일을 하고자 하는자, 특히 조선이나 만주, 지나에서 웅비(雄飛)코자 하는 자는 우선 조선어, 만주어, 지나어를 연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조선에 재직하면서 조선어를 공부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이러한 착안에서 나온 것으로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하기를 즐겨서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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