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의 도시 산타 클라라에선 마차도 대중교통 역할을 맡는다. 쿠바는 석유 없이도 살아갈 모든 준비가 갖춰져 있다.

 육십 년 가까이 굳게 닫아 두었던 타임캡슐 문 열어젖히는 소리가 묵직하다. 오밀조밀한 클래식 카 단장이 시선에 빨려들고, 1951년산 폰티악이 굉음과 매연을 내뿜으며 미친 존재감을 드러낸다. 오토바이에 노란 지붕 씌운 꼬꼬 택시가 암탉 뒤쫓듯 달려가는 틈새 비집고 자전거에 지붕 씌운 비씨 택시도 끼어든다. 행선지 제각각인 사람들을 섞어 태웠다가 원하는 곳에 내려주는 마끼나 택시, 트럭 적재함을 고쳐 짐짝인 듯 손님을 실어 나르는 구아구아나 시외버스 대용인 까미용도 느릿느릿 행렬에 끼어든다. 바닷바람 동력 삼은 평등과 자긍심이 소음과 매연 대신 차를 밀어 붙인다. 시가지 막 벗어나 까미용에서 내려다 본 들판, 나무 막대로 이마 이어붙인 소 두 마리의 겨리질은 또 하나 낯선 풍경이다.

‘평화시장’, ‘자유시장’ 이라 적힌 낡은 버스가 엉덩이 실룩거리는 손님을 쉼 없이 실어 나르는 비냘레스. 기억 저만치서 아른거리는 티코가 신차 대접 받으려고 마지막 광채를 번득이고 있다. 60년 넘게 굴린 차가 골목 여기저기 보이는 떼끄니꼬를 거치면 마술처럼 새 걸로 바뀌는 게 이곳의 자동차 문화다. 그들 미다스의 손이 고장 난 대우자동차에 삼성자동차 부속을 갈아 끼워 굴러 가도록 만드니 쿠바의 자동차엔 스킬 빼어난 장인의 혼이 실렸다는 게 옳다. 올드 카 전시장이란 명예가 허투루 얻은 게 아니란 걸 아우라 덧씌워진 엔지니어들이 증명해 보인다. 혁명 정신으로 지탱하는 나라지만 모든 걸 새롭게 탈바꿈하진 않는다. 낡아 못 쓰게 된 걸 손봐서 새것 못지않게 쓰는 것도 혁명의 한 갈래 아니냐는 자긍심 섞인 목소리가 환청인 듯 낭랑하게 들려온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 않은 듯 해 내는 저력 또한 혁명의 밑바탕이 틀림없지만 최첨단 전자 장비를 갖춘 자동차가 제 값어치를 못하는 건 이해되지 않는다.

마끼나 택시로 이웃 도시를 오갈 때다. 손 치켜들고 지폐 나풀거리는 사람들이 숱하게 눈에 띈다. 히치 하이커인 줄 알았더니 죄다 현지인이라고 운전기사가 말한다. 대중교통이 부족하니 같은 방향이면 좀 태워달란 신호다. 그들은 땡볕 아래서 좌석 빈 차가 오길 몇 시간씩 서서 기다리기도 한다. 실상을 알고 있는 관용차는 그들이 눈에 띄면 무조건 태워준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어렵게 차를 얻어 타는 그들이지만 당당하게 버스비만큼 돈을 내고, 운전기사나 동승자 중 어느 누구도 그들을 업신여기는 법이 없다. 돈이 없을 뿐 염치가 없는 건 아니란 뜻이다. 누군가의 불편을 도와야만 직성이 풀리는 게 약자를 기죽지 않게 하는 쿠바노의 또 하나 힘이다.

아바나에서 미라마르 가려고 택시를 불러 세웠다. 가이드북에 적힌 것보다 절반을 깎아 흥정을 마쳤다. 택시는 카리브해가 만든 물보라 아치 환영 터널을 지나 8킬로미터 길이의 말레꼰 끝 부분에 이르렀고, 속도를 늦춘 여자 기사가 어깨 너머로 손을 내밀었다. 그건 여느 택시 기사들이 했던 것처럼 주소를 보여주면 알아서 모셔다주겠다는 제스처다. 나는 바삐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지만 쪽지는 보이지 않고 지폐만 자꾸 딸려 나왔다. 손바닥 크기의 종이에 주소를 적었던 탓에 어디에 끼워뒀는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윗주머니에 넣어뒀던 식당 매니저 명함을 꺼내 어깨너머로 건넸다. 고개 끄떡인 그가 백 미터 채 되지 않는 해저 터널을 쏜살같이 지나쳤다. 번듯하게 지어진 주택가로 접어든 뒤 명함 주소를 짚어가며 골목을 몇 바퀴 돌았다. 찾으려는 곳이 나타나지 않은 건지 그의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 그는 갓길에 차를 대고 시동을 끈 뒤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운전기사는 2층 베란다 흔들의자에 앉아 바람을 낚는 노인에게 큰 소리로 길을 물었다. 바람 속을 걸어 나온 노인은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였다. 그녀가 남모를 신호를 보냈나 싶었더니 주위를 둘러 싼 주택의 문이 거의 동시에 열렸다. 고개 내민 사람들 모두 머릴 맞댔다. 서너 명 노인이 옥신각신한 끝에 찾으려는 곳을 금세 알아냈다. 떠나면 그만인 나와 달리 차 꽁무니를 바라본 마을 사람들은 또 한 바탕 살사 리듬에 빠져들게 뻔했다. 그걸 계기로 이웃 간의 친목 다지기 바쁠 광경이 망막에 어렴풋이 맺혔다.

주민들 도움을 받았지만 운전기사는 명함의 주소를 찾아가려면 몇 블록이나 더 가야한다고 투덜거렸다. 이곳저곳 돌아 다녔으니 추가 요금을 내라는 뉘앙스도 담겼다. 나는 돌아갈 차비 외엔 더 가진 게 없다고, 흥정한대로 줄 수밖에 없다고 우겼다. 내 얘기를 들은 그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룸 미러에 훤히 비쳤다. 느긋하게 앉아 있기가 민망스러워서 주머니를 죄다 뒤져 꺼낸 코인 몇 개를 손바닥에 얹어 흥정한 금액과 함께 건넸다. 곁눈질로 그걸 흘겨 본 그가 지폐만 와락 빼앗아 갔다. 비록 육십 년 넘은 낡은 차를 몰긴 하지만 자존심만은 다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다. 잠시의 에피소드에서 쿠바노라면 누구나, 어떤 어려움 앞에서나 주눅 들지 않지만 누군가 도움을 청할 때 선뜻 달려와 손 내밀어 주길 마다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의식주 해결이야 빠듯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밝게 노래하고 춤 출 수 있는 건 그들만의 고결한 재산이다. 올드카에 넘쳐 나는 자긍심이면 세상 어디라도 가지 못할 곳이 없지 싶다. 낡은 풍경화를 배경 삼아 달리는 형형색색의 올드카, 만나는 쿠바인들마다 춤추며 노래하고 싶어 어깨 움찔거리는 까닭을 알 것 같다. <끝>

그동안 '김득진의 쿠바 여행'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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