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 가봐야 별 것 없을 것… 살고 있는 이곳이 천국이지요”

연제식 신부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서 농사짓고 시 쓰고 그림 그리고 작곡하고 합창단 지휘하는 ‘괴짜신부’

“농사나 예술활동 모두 ‘놀이’ 삼아 하니 참 재미있더라”… 수녀 출신 누님과 살아온 30년 세월

첫 ‘귀농 사목자’로, 시인으로, 화가로, 작곡가로, 합창단지휘자로바쁘게살아가는‘도사신부’가 “천당 가봐야 별것 없을 것입니다. 지금살고 있는 이곳이 천국이지요”라며 자신있게 말하는 곳- 충북 괴산군 연풍면 은티중리 4길40번지 ‘은티마을’을 찾아 나섰다.

한국천주교회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성 황석두 루카(1813~1866) 탄생 200주년을 맞는2014년 연풍순교성지(연풍면 삼풍리)에 우뚝하게 세워진 연풍성당에서 3㎞, 만추의산골짜기사잇길을돌며 도착한 곳엔 예상치 못한밀영密營이발길을막아선다.

마르고작은 키에 두 뼘은됨직한은백의수염을날리며

연제식(72) 신부가맞아준다.

오랜만의 만남인데도 어색함이 없는 것은 단풍들기 시작하는 나무들과 만개한 꽃처럼 주홍빛깔로 풍성하게 매달린 감나무를 배경으로 연 신부의 맑은 웃음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아서였을 것이다. 우선 ‘은티경당’이라 이르는 가운데 건물로 들어서니 옷깃을 여며야 할 만큼의 정갈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주님을 모시는 제단(사진)이 마련돼 있었다. 사제 연제식 신부가 매일 아침 7시면 미사를 드리는 곳이다.

옆의 건물은 사제관(7평)으로 연 신부가 혼자 거처하는 곳이고, 이곳을 돌아 나오면 외부인들도 맞고 그림도 그리는 30평짜리 본채가 있다. 곳곳에 연 신부의 그림이 걸려있다. 고집스럽게 산만을 그리는 그의 근래 작품들이 수년 전에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르게 청록색채를 많이 써서 힘이 넘치고 깊은 맛을 준다.

모든 게 경이로워 세 채로 나뉘어 세워진 목조건물들 사이를 서성거려 보았다. 모두가 일반 건물 형태를 벗어난 모양새여서 예사롭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직감할 수 있다. 연 신부와 목공예를 하다 충남 청양에서 암투병중이라는 동생 제덕(67)씨, 이웃에서 형제처럼 가까이 지내는 김용국(국악인)씨와 직접 지은 집들이란다. 품고 있는 땅이 4000평, 그중 유기농 밭 작물을 경작하는 농토는 200평인데 쌀을 빼놓고 모든 반찬거리는 자급자족이란다.

멀리 월악산봉이 바라다 보이는 이곳에서 연 신부는 사촌누님인 연제숙 루시아(78)씨와 함께 산다. 연 신부가 정착하기 전에 이미 누님이 구입해 놓은 이 땅에 들어와 둥지를 튼 지도 어언 20년이 된다. 누님과 함께 산 지는 30년이다. 동국대 국문과를 나와 매괴여중 국어교사로 20년간의 수녀생활을 한 누님은 연 신부를 그림자처럼 가장 가까이서 보좌한다.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제일 편하면서도 제일 불편한 관계’라면서 마주 보며 크게 웃는다. 연 신부는 ‘자아自我를 버리고 무아無我를 만들어 준 스승’이라며 한술 더 뜨지만, 누님은 그런 동생을 보는 것이 마냥 기쁜 듯 환한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건물 사이 한 켠 반듯한 돌에는 ‘최선의 하느님은 최선의 길로 이끄신다’는 연 신부의 좌우명이 쓰여져 있다. 본인이 마지막 사목활동을 했던 충주연수본당 머릿돌에도 새겨 넣은 글귀란다. 92년 연수본당을 짓느라 수년간 고생을 해서인지 연 신부는 목에 종양이 생겼다. 그 때 상한 목 때문에 20년이 지난 지금도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당시 정진석 청주교구장이 이런 연 신부를 위해 이 은티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목을 추스르도록 ‘귀농 사목자’로 발령을 냈다. 70세 은퇴를 훨씬 앞둔 연 신부에게 베푼 큰 배려였다.

이미 가톨릭대 재학 중 작곡공부를 했고, 사제가 된 직후 홍익대대학원에서 정식으로 동양화를 전공하는 등 예능에 정진했던 연 신부는 은티마을에 들어오면서 시작詩作활동에도 정열을 쏟았다.


내가 신부다 신부다 할 때는/네가 신부냐 신부냐 하더니/신부이기를 포기하니까/신부님 신부님 하더라

-‘신부’ 전문. <별나라 가는 길>에서.
본인의 시에 그림과 자필을 넣은 시화집 <별나라 가는 길>, <상하의 나라에서 쓰는 편지>와 수상집<저 새소리>를 출간했다. 시화집엔 구도자의 일관된 기도문 같은 시에서 벗어난 시편도 여러 편 담겨 있다. 일하듯 그림을 그렸으며 개인전만도 20회나 가졌다. 주로 나무와 산을 그렸는데도 제각각의 모습과 색깔들이 격년으로 갖는 개인전을 할 만한 수준이어서 전시 때마다 1점당 100만원에 모두 팔리고, 그 팔린 돈은 몽땅 성당 유치원 설립기금이거나 멕시코 수녀원을 위한 기금 등 수도원이나 수녀원 등을 위한 자선성금으로 전달된다.

농사와 시와 그림으로만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2011년 2월, 충주 천주교 신자들 30여명으로 구성된 ‘살렘 코라스’를 창단, 지도신부가 된다. 이 해 11월에 첫 공연으로 한국 순교자 칸타타 1편으로 ‘아, 땀의 순교자 최양업 사제여!’를 충주문화회관대공연장에서 가졌다. 1000명의 관객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이를 시발로 다음 해는 ‘아, 피의 순교자 김대건 사제여!’를 공연했다. 살렘 코라스는 열렬한 기대 속에 매년 공연을 이어나가 올해 1월엔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칸타타 ‘조선으로 가리라’가 공연됐다. 올 연말엔 김수환 추기경 칸타타 ‘그래도 사랑하라’가, 내년엔 도산 안창호칸타타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창단 이후 이제껏 정기공연 78회의 칸타타 모두가 연 신부가 작곡하고 지휘한 공연들이였다. 연 신부의 이같은 공연에는 언제나 충주의 여성문화운동가이자 소설가이자 시낭송가인 이덕자(65)씨의 각본과 연출이 뒷받침돼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들은 매주 월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충주 야현신협 3층 강당에 모여 연습을 한다. 칸타타란 바로크시대 성행했던 성악곡의 한 형식이지만, 이들의 칸타타는 영상과 노래와 춤과 해설이 있는 독특한 형식을 빌어 호응도를 높이고 있다.

-오기 전에는 산채 같은 곳에서 척박한 땅을 일구며 원시적으로 살고 계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예쁜 집을 짓고 사목활동을 하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분의 능력 안에서 땀과 세월이 빚어놓는 놀라운 성과들이지요. 오는 사람들마다 이곳의 풍광과 목조건물들이 잘 어울린다고들 합니다.”

-이곳 일과는 대략 어떻게 되는지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면 국선도를 40분간 하는데 이것이 건강비결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7시에 경당에서 미사를 드리지요. 주일이면 오전 11시에 주일미사를 해요. 매일 이웃에 기거하시는 수녀님 다섯 분과 동네노인 두 분,그리고 누님과 함께 미사를 올리지요. 7평 경당이 아홉 사람 미사를 드리기에는 꼭 맞는 공간이지요. 이렇게 기쁜 생활을 계속하면 100세까지 사는 건 문제 없을 겁니다.”

-농사와 그림 그리기와 시 쓰기와 작곡과 합창단 지휘와 사목활동 모두가 많은 시간과 몰입을 요구하는 것들인데 무리 없이 소화가 가능한가요?
“어떤 일이건 어떤 마음으로 맞아들이고 행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나는 모든 것을 놀이삼아 재미로 하고 있습니다. 최소의 에너지로 살고 있어요. 밥맛없으면 먹지 않으면 되지요. 의료혜택을 받지 않고 살자는 것이 내 주관이에요. 농사도 재미로 짓고 그림도, 음악도, 시도 다 재미로 해요. 싫어지면 하지 않으면 되지요. 농사나 예술이나 해보면 다 재미나는 일이지요.”

-그림은 주로 나무와 산만을 주제로 하고 계시던데요.
“실은 예수님을 그리고 싶고 그리운데 영 나타나주지를 않으셔서 산을 그리고 산을 그리워하며 삽니다.”

-이웃 동네도 없는 외딴 이 곳에 오래 살다보니 적적하거나 이웃이 없어 힘드신 일은 없으신지요.
“없어요. 천국에 간다고 별 것이 있겠어요? 살고 있는 이곳이 천당이에요. 늘 모든 것에 감사하고 모든 일들이 새롭지요.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지요. 심심하지도 바쁘지도 않아요. 그때 그때 맞춰서 하고 싶은 일 하면 되고요. 달빛이 방안 깊숙이 들어오고 별빛도 사철 빛나지요.”

-즐기시는 음식은…
“삼겹살과 맥주요.”

-가족관계는…
“유서 깊은 감곡성당이 있는 음성 감곡에서 대장간을 하는 아버지와, 수녀가 소원이셨던 어머니 사이에서 9남매 중 일곱째였어요. 어머니의 뜻에 따라 누님 네 분이 수녀가 되셨지요. 아버지는 돈을 잘 벌었고 그림을 잘 그리셨어요. 어머니는 노래와 춤을 잘 하셨어요. 이런 예술적인 가족분위기가 나를 그림과 음악에 관심 갖게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림은 대신신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했고, 작곡은 대학 때 독학으로 했어요.”

-수염을 기르는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는지요.
“내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젖이 부족하자 누님들이 감곡성당을 지으시던 불란서인 가밀로 신부님이 기르시던 양젖을 짜서 7,8개월이나 갖다 먹였답니다. 부모님이 독실한 천주교신자였기에 가밀로 신부님이 6.25 때 아버지에게 공소장을, 어머니에게 교리교사를 하라하셨답니다. 그래서 난리 통에도 아버지와 형님이 공소를 지키셨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처럼 집안을 돌보아주시던 그 가밀로 신부님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신부님이 수염을 기르고 계셨는데 연수본당 신부 때 그 신부님을 닮고 싶은 생각에 기르기 시작했어요.”

-불편하지는 않습니까?
“매일 면도하는 것 보다는 덜 불편하지요”

-사제서품을 받은 후 청주 부강본당신부를 잠시 하신 후 파푸아뉴기니 선교를 떠나셨는데 그 낯선 이국선교에 나선 특별한 까닭이 있는지요.
“교구청에서 처음으로 파푸아뉴기니 선교를 위해 사제파견을 한다기에 자원을 했어요. 이 나라에 함께 간 네 분의 한국 신부님들 중 하나였습니다. 5년간 열심히 사목활동을 했지요. 젊은 시절 잊을 수 없는 추억이지요.”

-충주 지현본당과 연수본당에서 10년이 넘도록 사목활동을 하셨는데, 이때의 신도들이 ‘영혼이 자유로운 신부’라거나 ‘청빈을 몸소 실천하는 사제’라고 하더군요. 불교 등 다른 종교에도 애정을 갖고 있어 ‘도사 신부’라거나 ‘괴짜 신부’라고도 하더군요.
“뭐라 하든 주님을 향한 일념엔 변함이 없어요. 가는 곳마다 할 일이 많았지요. 지현성당에서는 유치원을 개설했고, 연수본당을 신축하면서 참 많은 분들의 도움과 사랑을 받았지요. 그때의 인연들이 아직도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가요?
“처음 들어와서는 감당하기 힘들만큼 많았었어요. 그러나 요즘에는 그렇지는 않아요. 그래도 특별히 목적이 있어서 찾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고민이 있는 분들이 상담을 하고 싶어서 오시는데 미사도 드리고 고해성사도 보시고… 오실 때보다 마음이 가벼워져서 나가시는 것을 보지요.”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일은 있는지요.
“지금 이렇게 하고 있거나 해야 되는 일들이 내 일입니다. 놀이 삼아서 재미로 하는 것이니 지치지도 않아요.”

-20세 때인 1967년에 쓰신 시 ‘기도’를 보았습니다. 이미 50년 전의 ‘연제식 사제의 맹세’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기도’를 쓴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그 기도처럼 살고자 합니다. 살아있는 한 어디에서도…”

글 /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시인


기 도

연제식 레오



주여.

당신께 사랑과 미소를 드립니다.

오늘은 주의 날이니 주 위해 살겠습니다

성인 사제가 되려는 단 하나의 목적에

모든 저의 생명과 연신과 시간을 걸었습니다.

항상 최고의 희망이 저의 앞에 있으며

최대의 행복과 보람이 제 길에 펼쳐져 있습니다

저는 너무 약하지만 당시께 의지하면

아무 무서운 것도 강한 것도 제겐 없겠나이다

당신을 잊었을 때 전 죽은 것이요,

당신 없이 그 누구를 사랑할 때 전 멸망할 것이오니

오직 당신과 함께 있으며

당신을 사랑하며 그 사랑 안에서 모든 영혼을 사랑하면

전 천국의 소유자며 사랑의 정복자가 되겠나이다

오늘 겸손하고 순명하고 신부된 후 특히 고해성사를

매우 기꺼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어느 때나 즐겨줄 것이며

항상 양순할 것을 약속합니다.

오늘은 주께서 강복한 날이니

기쁨과 평화가 계속될 것이며

입가엔 거짓 없는 미소가 흐르게 해 주십시오

나의 전 생명은 당신이요,

나의 죽음은 당신 없음이니

언제나 당신의 품에 안겨 영원히 살겠나이다. 아멘.





연제식延濟植 레오 신부는…

* 1947년 충북 음성군 감곡면 오향리 출생

* 1976년 광주가톨릭대학 졸업

*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사제 수품

* 1979년홍익대학교대학원졸업

* 1979년 청주 부강본당 신부

* 1981년 파푸아뉴기니 선교

* 1986년 청주 미원본당 신부

* 1988년 충주 지현본당 신부

* 1992년 충주 연수본당 신부

* 1999년 귀농사목자로 연풍면 은티마을 정착

* 2011년 살렘코러스 합창단 창단

* 칸타타 ‘아땀의 순교자 최양업 사제여!’ 첫 공연

2018년현재까지7년간 매년 정기공연.

2013년부터 현재까지 28회초청공연.



개인작품전20회

시화집 <별나라 가는 길>

<상하의 나라에서 쓰는편지>

은티마을에 있는 경당.
은티마을에 있는 경당.

 



수상집 <저 새소리>

367-880괴산군 연풍면 은티중리4길 40번지<은티마을>

☏043)833-4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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