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의 시기리야는 바위 왕궁으로 불리며 이스라엘의 마사다와 더불어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닮은 점이 있어 자주 비교되곤 한다. 수도인 콜롬보에서 약 5시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세계유네스코 문화유산이자 세계 10대 불가사의에 포함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스리랑카 여행 중 최고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탐험가인 마르코 폴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스리랑카를 뽑았을 만큼 스리랑카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곳이다. 예전엔 태국을 경유하는 코스가 유일했지만 2012년부터는 우리나라 모 항공사가 몰디브를 경유, 콜롬보에 취항해서 지금은 쉽게 여행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패키지 상품도 많이 나와 있을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다.

시기리야를 여행 하려면 일단 많은 난관을 이겨내야 한다. 1200개가 넘는 바위에 고정된 나선형 철재 계단은 아찔할 정도로 고소공포를 느끼게 한다. 처음에는 계단이 대나무로 만들어졌으나 영국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철재로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이 길에서 끌어주고 밀어주는 직업을 가진 남자들이 있어 5달러만 주면 고단한 몸을 지탱해주고 보호해 준다.

시기리야를 오를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왜 하필 위험천만한 곳에 바위 궁전을 만들었을까 푸념하게 된다. 카샤파 왕조 역사를 알면서도 공연히 불평을 하게 된다.

역사에 의하면 5세기 싱할라 왕조에는 두 왕자가 있었다. 한 명은 천민 출신의 왕자, 또 한 명은 왕족 출신 왕자. 왕권을 두고 싱할라 왕국은 긴장감이 흐르고 어수선했다.

결국 여러 가지로 불리한 조건에 있던 천민 출신의 카샤파 왕자가 정통성에 우의를 점하는 왕족 출신인 목갈라나 왕자를 제치고 부왕을 살해, 카샤파 1세로 왕위에 등극해 버렸다.

동생 목갈라나 왕자는 서둘러 가까운 인도로 망명하게 된다. 그러나 왕위 쟁탈의 목적을 이루었음에도 카샤파 왕은 동생 목갈라나 왕자의 보복이 두려워 동생의 공격으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곳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곳은 수도승들이 거주하는 험난한 절벽 바위 꼭대기였다.

10여년이 흐르고 카샤파 1세는 동생과의 치열한 전투를 피할 수 없었는데 결국 수세에 몰린 그는 자신을 죽이러 오는 동생의 군대 앞에서 단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존심을 지켰다.

겨우 20년밖에 안되는 카샤파 왕조의 최후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카샤파 왕이 죽고 시기리야 요새는 목갈라나 왕자의 뜻에 의해 왕궁에서 수도승의 수도처로 원상 복귀 됐다.

스리랑카를 여행하면 한번쯤은 꼭 돌아볼만한 아름다운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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