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입고 갓을 쓴 미즈노 랜타로(왼쪽)과 정복을 입고 있는 미즈노 랜타로
경성 방직 주식 회사의 국산품 애용 선전 광고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소요 와중에서의 조선 산업

●전조선의 실업가들의 모임



▷야마가미 “조선의 산업을 개발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좀 구체적으로 들었으면 합니다.”



▷마츠무라 “만세소요가 있은 직후 전 조선이 온통 배일사상에 젖어 있었으므로, 각 산업에 종사하던 일본인들은 직접·간접, 유형·무형의 압박을 받게 되어 안심하고 일에 열중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경비력이 미치지 않는 벽지에서는 농장·광산·어장·상점 할 것 없이 모두 문을 닫고, 일본 또는 일본인 집단지역으로 철수해 이동해 오는 자 조차 나오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방에서 산업을 조장시키는 행정이 배일 장벽에 가로막혀 권업정령(勸業政令)이 철저히 침투되지 않아, 지방행정 당국은 그저 수수방관한 상태에서 광란이 진정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달리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한글판 신문이 일본산업인·일본자본·일본상품 등을 한반도에서 추방해야한다고 왕왕 독필을 휘둘러 불쾌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를 양성했던 것도 바로 이때였습니다.

조선인의 향학심이 발흥하게 된 근본적 원인도 조선인의 손으로 조선 사업을 세울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수단으로 학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조선인만으로 결성된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나타났고, 이 단체들이 힘을 합쳐 일본인 기업에 대항하려는 기세를 보였습니다. 또 곳곳에서는 일본인 상품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전라남도에서는 다도해 항운(航運)을 둘러싸고 조선인과 일본인 선박회사가 극단적인 경쟁을 벌이다가 함께 도산하는 사례조차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도처에서 나타났으며 조선 산업계에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숨 막히는 듯한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렇게 살벌한 분위기가 팽배해지자 일본인 사이에서는 이렇게 지독하고 집요한 배일사상을 박멸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안심하고 일을 할 수가 없다. 도대체 총독부가 조선인들을 다루는 태도가 너무나 연약하기 짝이 없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를 지경이다. 이와 같은 비상시에는 강력한 탄압정책을 취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강경론이 반동적으로 대두되었습니다.

1920년 10월 12일 경성 공회당에서 개최되었던 전조선 일본인 실업유지 간담회는 이런 일본인들의 대표적 모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회는 최초로 진남포의 토미다기사쿠(富田儀作), 평양의 마츠이토로(松井藤次郞), 경성의 미노베준기치(米濃部俊吉), 쿠기모토토지로(釘本藤次郞)와 같이 유력한 사업인 들이 모여 협의한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진남포의 니시자키츠루타로(西崎鶴太郞), 평양의 오하시츠네죠(大橋恒臟), 부산의 오이케다다스게(大池忠助), 가시이겐타로(香推源太郞), 인천의 하기다니(萩谷籌夫), 가라이에이타로(加來菅太郞), 경성의 후로시로(吉城菅堂), 등과 같은 인물들이 가입하여 발기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근래 조선 전국 각지를 통해 조선인의 사상이 현저하게 변화하여, 일반 행정에 주는 영향은 물론 실업계의 진운(進運)까지 저해하는 일이 많아졌으므로 각 지방의 실정을 상세히 파악한 상태에서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융화방법에 대해 협의하고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전조선에서 126명의 유지를 모아 3일간에 걸쳐 비분강개(悲憤慷慨)의 기세를 올려 가며 치열한 논의를 거듭한 끝에 다음과 같은 결의를 하고 당국에 이를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당국에 대한 희망사항



1. 인심이 흉악한 지방에 은밀히 수비병을 배치해 주었으면 함.

2. 상벌 기준을 명확히 함으로써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식별하는데 유감이 없도록 해 주기바람.

3. 치안유지에 대한 경비 기관의 충실은 물론 수보다도 질에 중점을 두고 경비 능률을 증진시켜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조선어를 해득할 수 있는 일본인 경관을 가능한 한 많이 배치시킬 것.

4. 조선인의 사상을 선도하고 산업을 개발하고자 하는 일본인의 이주를 용이하게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주었으면 함.

5. 전항(前項) 달성을 위한 방법으로 조선 전국의 철도망을 속히 완성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유효한 수단이 될 것으로 사료됨.

6. 산업개발에 주력하여 기업경영을 용이하게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일본인 경영인들에 대한 보호를 요함.

7. 조선인 교화에는 무엇보다 종교의 힘이 클 것이라 인정되므로 포교활동에 대해서는 충분한 편의와 보호를 요함.

8. 경제시설에 관해 중요한 제령(制令)을 발포함에 있어 가능한 한 이에 상응하는 민간기관의 의견을 참조해 줄 것.

9. 각지에 있는 조선인 청년회의 실상 및 활동을 보면 왕왕 그 궤도를 일탈하는 경향이 있다고 인정되므로 철저한 취체를 강구할 것



●자영 요건

1. 재선(在鮮)일본인 모두가 스스로의 품성을 향상하기 위해 힘쓰고, 또한 조선인의 사상을 선도하기 위해 노력한다.

2. 재선일본인 유지들이 협력하여 사회사업 활동에 열심히 참여함으로써 조선인들을 위한 자선·구제·감화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3. 조선 실정을 일본에 있는 식자들에게 잘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언제나 기회 있을 때마다 편리한 방법을 동원하여 조선에서의 일본의 통치정책을 일본 식자들에게 이해시키도록 한다.

4. 조선통치에 필요한 경비가 부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중앙 정부 및 참정기관의 협조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5. 본회는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수시로 개회할 수 있도록 한다.



▷마츠무라 “이를 통해 당시 일본인 실업가의 고충과 조선인들의 사상의 악화정도가 능히 추측되리라 생각합니다. 치안유지와 민심 안정이 산업개발의 전제요건이기도 하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논의는 너무나 신경과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그 중에는 자기 발등에 떨어진 급한 문제에만 급급하여 대국을 볼 여유를 상실한 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이 때 임석하셨던 미즈노 정무총감은

‘구주대전(歐洲大戰)이후, 피통치 민족들 사이에 사상적인 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이로 인해 많든 적든 식민지를 가지고 있는 모든 열강들이 심히 곤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민족 통치는 백년 후에야 그 공을 기약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일본인들도 섬나라 근성을 버리고 조선을 여러 각도에서 조사, 관찰하고 국가를 위해서는 좀 어려운 일이 있다 하더라도 인내해야 할 것이다. 통치방침은 이미 병합 조서(詔書)에서 분명히 밝힌 바, 조서를 실현에 옮기기 위해 정책을 펴는데, 시세의 변천에 순응하여 실시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무단, 문화통치의 구별이 무의미하게 되었고, 위압정치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좋은 정책이라 할 수 없다. 연기가 밖으로 방출될 수 있도록 연통을 터주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조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산업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 중앙정부의 재정적 원조는 물론 일본자본의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관민이 서로 일치하여 성심성의껏 조선 개발을 위해 진력해야 할 것이고, 병합의 정신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는 도배들은 단호히 탄압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으로 정무총감께서 직접 성심을 다해 신시정(新施政)의 취지 및 정신에 대해 설명해 주셨기 때문에 이를 들은 일동은 총감각하의 열성과 정치가 정신에 감동하여 당국의 의도를 충분히 납득했고, 관민이 일치하여 난국을 돌파할 각오를 확고히 한 후 해산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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